서평 《보건의료 빅데이터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정책이 낳을 암울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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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에스(IMS)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회사가 2013년 한국에서 벌어진 대형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는데도 말이다. 한국 아이엠에스 헬스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특정 프로그램을 설치한 국내의 약국과 병원을 이용한 환자들의 처방전 정보를 사 모아서 국외로 빼돌렸다. 4399만 명의 정보다. 2013년 12월 그 프로그램을 보급한 약학정보원을 압수수색했고 2015년 7월 관련자들이 기소됐다.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저자 애덤 태너는 탐사 보도 전문 기자로 아이엠에스를 비롯한 보건의료 빅데이터 업체들이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이것이 대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매우 세밀하게 폭로한다. 일부 독자들은 주로 미국 기업들과 상황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며 따라가는 과정에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빅데이터 활성화 정책이 낳을 미래를 얼핏 보여 준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1950년대에 세워진 아이엠에스의 고객은 제약회사들이다. 환자가 아니다.
애덤 태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의료 정보의 모순을 꼬집는다.(이 책의 원제는 ‘우리의 몸, 우리의 데이터’다) 환자는 자기 의료 정보를 들여다보기 어렵다. 친절한 설명 따위 달려 있지도 않다. 심지어 한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길 때 환자들은 직접 자기 진료 기록을 들고 가야 한다. 응급 상황이 벌어져 어떤 병원에 실려가도 내가 다니던 병원이 아니라면 의사는 나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나마 전 국민의 처방 정보를 정부가 관리하는 한국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국가가 담당하는 영역이 극도로 적은 미국은 완전히 개판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 건강 정보기술 조정 위원회가 2015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몇몇 보건의료 제공자와 건강 정보통신 개발자는 건강과 보건의료 서비스 개선에 활용할 여지가 제한되도록, 의도적으로 전자 건강 정보의 교환이나 사용을 방해하고 있다.” 환자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다.
구글은 이 난장판을 해결해 돈을 벌고 싶었던 듯하다. 구글은 2008년 구글 헬스라는 의무 기록 은행을 발표했는데 당시 미국에 200여 개의 개인 기록 시스템이 존재하고 대부분 특정 회사나 특정 의료 시스템과 연계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2011년 구글은 이를 통합하려던 사업을 포기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비슷한 사업을 이끌던 숀 놀런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돈이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고 아무도 변화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돈 되는 투자처 찾기
반면, 제약회사들은 아이엠에스 같은 기업들의 도움을 받아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약을 판매할지 판단할 수 있다. 오늘날 아이엠에스는 전 세계 병원과 약국, 최근에는 환자들의 개인정보까지 광범하게 축적하고 있다. 물론 판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자다. 어떤 약을 개발하고 어떤 약에 대한 투자를 줄일지도 판단할 수 있다. 그 기준은 이윤이다.
만약 어떤 약의 효과가 양호한 편인데도 의사들이 잘 처방하지 않으려 한다면, 혹은 약국에서 잘 판매하려 하지 않는다면(대부분 저렴해서 충분한 수익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경우다) 제약회사는 투자를 줄일 것이다. 에이즈 치료제처럼 생명 유지에 직접 영향을 주는 약품이라면 환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약을 구하려 할 것이고 제약회사들은 약값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고 싶을 것이다. 빅데이터는 그 한계치가 어디인지 알려 줄 수 있다.(당연히 애당초 비용 지불 능력이 없는 빈곤층과 아프리카에 있는 수백만 명의 에이즈 환자는 그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이들은 고려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아이엠에스는 제약회사의 판촉 활동을 돕기 위해 의사들의 처방 패턴을 분석해 왔다. 초기에는 영업사원을 통해(한국도 최근까지 이런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전산화가 보편화된 이후에는 병원과 약국의 광범한 처방 데이터를 직접 얻어내는 방식을 통해 그렇게 해 왔다. 물론 전산화로 그 효율과 규모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다른 많은 기업들이 그렇듯 아이엠에스와 제약회사는 공생 관계지만 정보를 쥐고 있는 업체가 유리한 경우가 많다.
“어느 제약업계 회의에서 첫 발제자인 글락소 웰컴의 대표는 아이엠에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글락소가 두번째로 큰 제약회사라고 청중들에게 말했다. 두번째 발제자인 머크의 대표 역시 아이엠에스의 자료를 인용해서 머크가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라고 주장했다. 그 다음 순서로 발제에 나선 후퍼는 자신이 그 아이엠에스라고 소개했다.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어쨌든 이 모든 과정에서 환자들의 권리 따위는 쟁점도 아니었다. 오히려 제약회사들의 ‘권리’에 이바지했을 뿐이다. “아이엠에스의 최고경영자를 지낸 아리 부스빕은 2015년에 길리어드의 C형 간염 치료제를 이용한 표준 치료에 8만 4000달러(약 1억 원)의 약값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내는 데 데이터가 크게 기여한 사실을 사례로 꼽았다.”
〈조선일보〉가 세계 10대 제약사의 2018년 매출 실적을 비교·분석한 결과, 10개 제약사가 지난해 거둔 총매출은 약 475조 원이나 됐다. 삼성이 반도체 다음으로 뛰어들려 하는 사업 분야로 제약업계를 선택한 까닭이다.
저자는 2007년 로이터 통신에 일할 당시 회사가 소유한 수천만 명의 환자 병력과 보험 청구 데이터베이스를 보고 깜짝 놀란 사실을 회상한다. “2012년에 [로이터와 톰슨사가 합병한 회사인] 톰슨 로이터는 의약 부문 사업을 12억 5000만 달러(약 1조 4620억 원)를 받고 트루벤 헬스 애널리틱스에 [매각했다.] 2016년에는 아이비엠의 왓슨 의료 사업부가 이 회사를 26억 달러(약 3조 900억 원)를 주고 매입했다.”
일각에서는 ‘옵트-아웃’(개인 정보 활용을 거절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개인 정보 보호는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업이 정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근본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보험사 약관에 쓰여 있는 깨알 같은 글씨를 혹여 읽는다 해도, 내 정보가 어디에 이용되는지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 정보가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이용되는지 아니면 고작 광고에 이용될 뿐인지도 봐야 한다. 질병과 약품 연구에 치료 정보가 활용되는 것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빅데이터 연구 결과 특정 약품의 부작용이 증명돼 생산을 중단시킨 사례가 있다.
문제는 이 책에 소개된 미국처럼,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대중의 보건의료를 쥐락펴락하는 현실이다. 마땅히 정부가 공적으로 통제하라고 요구해야 하지만 그조차 ‘자본주의’ 정부이기에 궁극적인 대안은 못 된다. 되레 정부가 통제하고 있던 데이터를 민간 자본가들에게 넘겨 버리기도 한다.
마침 문재인은 빅데이터 활성화 대책과 함께 삼성이 대규모 공장을 짓고 한참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는 바이오헬스 사업에 연간 4조 원씩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의 건강을 지킬 능력을 약화시키고 그 통제력을 자본가들에게 쥐어 주는 일이다. ‘혁신 기업’이라 불리는 제약업체와 정보기업들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치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문재인 정부가 그리는 장밋빛 미래가 왜 이재용과 자본가들만을 위한 ‘혁신’인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