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 대만을 국가로 표기: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갈등을 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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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이 점차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 국방부가 정식 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로 표기했다. 중국 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꽤나 심각하게 흔든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6월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싱가포르·뉴질랜드·몽골과 함께 대만을 “[미국과] 관계가 두터워지는 나라”로 꼽으며 이렇게 지적했다. “[이 네 나라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믿을 만하고 활용 가능한 파트너들이다.”
미국 국방부는 “편의상” 그런 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그러나 대만을 국가로 표기한 것은 중국 지배자들이 무력 사용을 불사해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행위다. 중국은 날로 격화하는 무역전쟁에서 굴복하지 않으면 미국이 심상치 않은 일을 벌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중국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까닭이다.
이번 보고서의 전체 방향도 미국의 태도를 잘 드러냈다. 보고서는 중국을 핵심 경계 대상으로 삼아, “미국의 앞날에 단연코 가장 중요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개괄한다. “중국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부상은 21세기를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다. … 중국은 정치·경제·안보 측면에서 더 팽창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마찰을 감내할 태세다.”
여기에 미국은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것일까? 미국 국방부는 “힘을 통한 평화”를 역설하며 이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맥락에서 미국은 일본·남한·오스트레일리아 등 전통적 동맹국과 관계를 강화하면서도 동맹을 추가적으로 확보해 중국을 ‘포위’하려 든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제해권을 두고 벌이는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미국은 일본·남한 등 전통적 우방국들이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는 에너지·물류 해상교통로 통제권 확보를 전략의 전제로 삼고 있다. 중국이 인도양-태평양, 더 좁게는 말레이 해협과 동·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제해권을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국방부는 이번 보고서에서도 “대만 안보를 보장하고 대만이 [중국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중국에 대응하게 하려면 … 대만[군]이 기동성 있고 독자 생존이 가능하며 효과적인 대응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은 “2008년 이래 대만에 220억 달러어치의 군사적 지원을 했다.”
반면 중국은 같은 바다에 대한 통제권을 얻으려 2000년대 들어 “진주목걸이” 전략을 추진해 왔다. 이는 남중국해에서 미군의 작전 능력을 저해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는다.
또, 냉전 이래로 대만과 군사적으로 대립해 온 중국은 (당장은 아니라도) 얼마든지 “대만의 독립을 포기하게 압박[하고] … 무력 병합도 불사”할 수 있다고 본다. 중국 지배자들이 엄연한 국가인 대만의 독립을 부정하며 ‘하나의 중국’을 “핵심 이익”으로 표방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다.(대만 문제에서 양보하면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분리 독립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두 강대국이 한 바다를 두고 ‘고래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대만이 그 사이에 낀 새우 신세가 된 배경이다.
트럼프
트럼프 정부는 반복적으로 대만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을 자극해 왔다.
트럼프는 취임하기도 전에 대만 총통 차이잉원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양국 정상이 통화한 것은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대만과 단교한 이래 37년 만의 일이었다. 트럼프는 “중국이 무역 등에서 [미국에 유리한] 협약을 맺지 않는 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해 왔다.
미군은 올해 들어서만 한 달에 한 번 꼴로 대만해협에 항공모함을 통과시키는 무력 시위를 벌였다.(중국도 5월 러시아와 합동 해상 훈련으로 맞불 시위를 했다.)
이런 일이 트럼프 정부 들어 급격히 심해지긴 했지만 낯선 일은 아니다. 전임 오바마 정부가 대중국 견제를 본격화(“아시아로의 선회”)한 이후 미국 해군이 대만해협에 출몰한 횟수가 매해 두 자릿수에 이르렀다.
미국이 정부 문서에서 대만을 국가로 표기한 것도 (두드러지는 변화지만) 트럼프 정부의 이색 행태로만 볼 수는 없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같은 일부 권력자들도 ‘대만 인정’을 오랜 과제 중 하나로 본다. 네오콘은 트럼프의 강경책으로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선회’를 실현할 수 있을 것”(〈워싱턴 포스트〉)이라 기대한다.
미국 국방부가 대만을 국가로 표기한 것은 동중국해에 긴장을 증대시킬 것이다. 가뜩이나 첨예한 미·중 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갈등이 증폭되면 해묵은 갈등이 우연한 계기로 커다란 충돌로 비화할 여지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할 수는 없다. 미국 제국주의를 견제한다는 이유로 중국의 한족 제국주의 강화에 힘을 보태서는 안 된다.(관련 기사: 본지 223호 ‘‘하나의 중국’의 실체는 한족 제국주의’)
미국은 대만 문제를 빌미로 동아시아에 위험한 긴장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는 6월 말에 아시아에 와서 이 긴장을 더 키우려 할 것이다. 트럼프의 방문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