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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으로 위험한 화약고가 된 대만해협

최근 대만해협의 긴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대만 국방장관 추궈정은 현 상황이 “내가 군에 들어온 뒤 지난 40년 동안 가장 엄혹하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이 긴장은 위험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10월 1~5일 중국 전투기와 폭격기 등 150여 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했다. 특히, 10월 4일에는 무려 56대가 진입했다. 대만 전투기도 연일 대응 출격했고, 대만의 미사일방어시스템도 가동됐다.

이때 대만 동쪽과 남쪽 해상에서는 미국·영국·일본·캐나다 해군 등이 참가하는 대규모 연합훈련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훈련에는 항공모함이 3척이나 동원됐다. 중국 군용기들은 이 훈련을 겨냥해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연합 훈련을 위해 서태평양에 집결한 미·영·일 등의 해군 함정들 ⓒ출처 영국 해군

7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바이든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군 특수부대와 해병대가 대만에서 최소 1년 이상 군사 훈련을 위한 비밀 작전을 수행해 왔다고 보도했다.

대만을 자국의 일부로 간주해 온 중국 정부로선, 대만에 (아무리 적은 숫자라도) 미군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려 시진핑 정부에 경고를 보냈다.

이런 갈등은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얼마나 악화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

엄혹

대만 문제를 놓고 시진핑 정부의 언사는 계속 강경해지고 있다. 10월 9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수호하려는 중국 인민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 강한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대만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반면 대만의 차이잉원 정부는 “중화민국[대만의 국호]은 독립적인 주권 국가로,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 하고 응수했다.

대만 총통 차이잉원은 미국 외교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대만의 자유민주주의가 “이데올로기 충돌의 최전선”에 있으며, “대만이 무너진다면 그 결과는 지역 평화와 민주주의 동맹 시스템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차이잉원은 중국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주의 동맹’을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에 호응하면서, 자국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대만해협의 긴장이 이렇게 높아져 온 것은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공세와 관련 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적대하면서 중국의 도전을 꺾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 점은 미국의 대만 정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앞서 전임 트럼프 정부는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을 크게 늘리는 등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대만과의 관계를 심화시켰다.

바이든 정부도 이런 방향에서 트럼프 정부와 다르지 않다. 바이든은 정부 관리들에게 대만 정부 관리들과의 접촉을 장려하는 지침을 내렸다. 그리고 1979년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대만 대표를 초대했다.

또한 미국과 대만은 중단됐던 무역투자기본협정 협상도 재개하기로 했다.

미국이 영국, 호주와 새로운 군사동맹체 오커스(AUKUS)를 결성하기로 한 것도 중국을 자극했다. 미국과 영국은 오커스를 결성하면서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래에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은 미군과 함께 대만 인근 바다에서 중국군을 감시하게 될 것이다.

오커스

일본도 대만 문제에 적극 관여하려 한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동맹이고, 대중국 정책에서도 중요한 파트너다.

지난 5월 자민당 외교부회의 대만정책검토프로젝트팀은 대만 유사시에 대비하려면 ‘법적 정비’를 서둘러 마쳐야 한다고 했다. 대만 위기를 대비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일본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현재 국내총생산의 1퍼센트 수준인 방위비를 2퍼센트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공세에 중국도 반격하고 있다.

당장 대만 문제에서 중국 시진핑 정부는 미국에 줄기차게 경고해 왔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군용기 출동 같은 무력 시위로 미국 등의 군사 행동을 견제해 왔다.

지난 7월 중국 외교부장 왕이는 미국 국무부 부장관 웬디 셔먼에게 미국이 절대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을 제시했다. 거기에 대만 문제가 포함돼 있었다.

물론 최근 미국과 중국은 고위급 회담을 가졌고, 바이든과 시진핑의 연말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리고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과 중국 양측은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군사와 경제 모두에서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다. 패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강자와 신흥 강자 사이의 적대는 쉽사리 해소되지 않고 한동안 계속 악화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지금 당장 대만해협에서 서로 전쟁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결코 상대방보다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 한다.

당장 바이든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으로 미국이 약해졌다고 중국이 ‘오판’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중국도 대만 문제에서 밀릴 때 받을 국내외적 타격을 의식한다.

이렇게 상대방을 겨냥한 군사 행동으로 계속 대립하다 보면 돌발 변수가 튀어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대만 국방장관도 “민감한 대만해협 전반에서 ‘오폭’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과거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런 사건이 종종 일어났다. 1999년에는 미군이 세르비아를 폭격하다가 현지 중국 대사관을 ‘실수’로 폭격했고, 2001년에는 미군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중국 남부 하이난섬에서 공중 충돌한 일도 있었다.

과거의 사건들은 크게 번지지 않고 수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경쟁 양상은 그때와는 매우 달라져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대만해협에서 위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 파장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대만해협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갈등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의 대만 정책은 대만해협에 엄청난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 맞선다고 해서 중국을 진보적으로 채색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대만을 차지한다면, 이는 중국 제국주의의 대외적 힘이 강화되는 것일 뿐이다.

대만해협 불안정을 키우는 미국과 중국 두 제국주의 모두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