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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을 보여 준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
민주노총은 실질적인 투쟁과 연대 확대로 뒷받침해야

‘비정규직 제로’ 약속을 배신한 문재인을 향한 항의 7월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 집회 ⓒ조승진

7월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동 파업을 벌이고 5만여 명이 서울에 모여 문재인 정부에 항의했다.

이 파업으로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 전환 같은 가짜 정규직화의 실체, 정규직화에서 제외된 노동자들이 상당수인 현실, 여전히 저임금과 차별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처지 등이 선명하게 폭로됐다.

투쟁에 나선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 노동자인 점을 봐도 성평등 정부로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알 수 있었다.

이날 공동 파업은 노동자들의 불만이 자신의 사용자들만이 아닌 정부를 향해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줬다. 특히 도로공사 요금수납원 1500명 해고 사태가 투쟁의 초점으로 부상해,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이 사실상 파산했음을 똑똑하게 보여 줬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여전히 저임금과 지긋지긋한 차별로 고통받고 있다고 분노했다. 정부는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이라고 우기지만 말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 참가자 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해 학교 급식과 돌봄 등에 타격을 주며 강력한 조직력과 잠재력을 보여 줬다.

파업에 대한 지지 분위기도 컸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불편해도 괜찮다”며 파업을 응원했다. 민주노총 파업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여 온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이번 파업에 대해서는 정부를 비판했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얻으며 투쟁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또한 이번 파업은 파업에 동참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행동도 고무하고 노조 조직화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파업 이후에도 태도가 그대로다. 청와대는 요금 수납원 대량 해고를 두고 “본인들의 선택”이라고 막말을 하더니, 국무총리도 나서 “불법” 운운하며 ‘자회사가 유일한 해법’이라는 둥 냉혹한 말만 뱉어 내고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 약속 이행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절 수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정부의 최저임금 개악으로 기본급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은데도 고작 기본급 1.8퍼센트 인상 외에는 불가하다는 태도다. 노동자들은 파업 이후 성실하게 교섭에 나서겠다던 교육부와 교육감들이 완전히 말뿐이었다며 분개하고 있다. 교육공무직본부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는 각각 청와대 앞 농성과 집회 등을 열며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최근 1단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된 부분(민간위탁)에 대한 ‘오분류 판정’ 결과도 발표됐는데, 심의한 120건 중 고작 5개만 오분류로 인정됐다. 대다수는 민간위탁 유지로 결정된 것이다.

그 며칠 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을 고작 2.87퍼센트 인상해 최저임금 공약은 공언대로 확실하게 파기해 버렸다. 이제는 노동개악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다. 장시간 노동과 임금 삭감을 불러 올 탄력근로제 단위 확대도 광범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줄 것이 분명하다.

단호한 정부

이처럼 지금 문재인 정부는 날로 심화되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켜 기업들의 수익성과 경쟁력을 지켜 주는 정책을 확고하게 추진하고 있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조차 외면하면서 말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들이 공동 파업을 통해 투쟁의 진전과 상당한 잠재력을 보여 줬지만 민주노총이 ‘사상 최대 비정규직 공동 파업’이라는 점을 내세워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국한한 점은 문제였다.

지난 2년간 이 부문의 노동자들이 수차례 파업과 대규모 항의 집회 등을 벌여 왔지만 문재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더 단호하게 공세를 퍼붓는 점을 봐도 웬만한 압력으로는 정부의 양보를 얻어 내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싸워 정부의 양보를 얻어 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0년 동안 싸워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쟁취했다. 그 과정에서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것도 투쟁 잠재력을 한층 키웠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노조들도 파업에 동참하도록 조직해 정부에 더 큰 압박을 가한다면 투쟁의 효과를 더 키울 수가 있다. 특히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크게 고무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과 분리해 7월 파업(7월 18일) 일정을 잡아, 정규직 노조들을 7월 3일 파업에 동참시키는 것을 회피해 버렸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울 쟁점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노동개악, 조선업 구조조정, 공공부문 직무급제 추진 등 굵직한 현안과 투쟁들이 있다. 이 시기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내걸고 함께 서울로 상경해 실질적인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면 노동자 전반의 자신감을 높이고 정부가 상당한 압력을 받도록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노동자들의 투쟁 동력이나 투지가 없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숱하게 벌어지는 투쟁들을 연결해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적 투쟁으로 모아 낼 기회를 자꾸 유실하는 것이 큰 약점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정부 대화 테이블에 대한 미련 거둬야

이런 일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여전히 정부와의 대화 테이블 마련에 미련을 갖고 있기에 생긴다. 민주노총은 이번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에서 대화 테이블 마련을 최우선 요구로 삼았지만, 청와대는 전혀 진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와의 대화 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강력한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부가 제대로 된 양보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부는 무기계약직 호봉제와 차별 폐지, 자회사 중단, 민간위탁 정규직화 등 핵심 요구들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할 의사가 없다. 임금 억제와 친기업 정책에 혈안인 정부가 이를 수용할 리 만무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대화로 풀자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한다는 이도 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으로 고용 안정은 해결됐으니 자회사 보완책과 정규직화 이후 임금·처우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외 없는 정규직 전환이나 자회사가 아닌 직접고용을 요구해서는 대화 자체가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회사는 ‘결국 용역회사’라고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가망 없는 정부와의 대화에 계속 미련을 갖고 추진할수록 이런 위험한 양보를 요구하는 압력만 키울 수 있다. 이는 요금 수납원 대량 해고 문제나 국립대병원 정규직화를 비롯해 여전히 자회사 전환에 반대하는 투쟁이 부상해 있는 상황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 민주노총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도로공사 요금 수납원 투쟁을 적극 지지 엄호하며 연대를 확대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동시에 노동개악 추진에 항의하는 투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 등 여러 투쟁을 연결하며 문재인 정부의 공세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을 확대해 가야 한다. 그래야 정부에 실질적인 양보를 강제할 힘을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