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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2년 노동운동 평가와 좌파 활동가들의 과제

ⓒ조승진

지난 2년이 참 다이내믹했던 거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 인천공항을 찾았을 때만 해도 그가 비정규직에게 환영받는 ‘비정규직의 대통령’인 거 같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최선두에서 문재인 정부에 항의한 게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정부 초기 최고치를 찍었던 최저임금 인상률은 올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청와대도 몇 번 갔지만 구치소도 갔다 와야 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친기업 반노동 본질이 점점 명확히 드러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한 평 남짓 열악한 휴게실에서 죽는 마당에, 지금 정부는 투자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에게 국유지를 50년간 장기 임대해 주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급속하게 친기업 반노동 본질을 드러낸 밑바탕에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깔려 있다. 최저임금, 노동시간단축 등에서 보듯이 자꾸 주는 척하다 뺐는 것, 알량한 개혁마저 회수하는 것, 규제완화 해서 기업들의 돈벌이 영역을 열어주려는 것은 경제가 가라앉고 있어서다.

원래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을 경사노위에 참여시켜 이른바 ‘성장 동력을 살리는 개혁’에 노동자들의 협력을 얻어 내려 했다. 격차해소 명분으로 정규직 양보 유도하기, 구조조정 명분으로 노동조건 악화하기, 탄력근로나 사업장 점거 금지 같은 노동 개악을 ‘원만하게’ 추진하려던 것이다. 그런데 두루 아다시피 이게 뜻대로 안 되고 있다.

나는 몇 달 전에 민주노총 정책연구소가 주최한 경사노위 관련 토론회에 갔었다. 그 자리에 한 교수님이 경사노위 참여 반대론자로 발표했는데, 그 1년 전에는 참여론자였던 분이다. 토론을 마치면서 사회자가 “참가론자였던 [아무개] 교수님이 이렇게 된 건 전적으로 급속히 우경화한 문재인 정부 탓인 걸로 정리하겠다” 해서 다들 웃었다.

그렇다, 문재인 정부 탓이다. 그런데 하나 더 지적해야 하는 건,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에 우리 좌파들의 기여가 있었다는 것이다. 좌파들이 모여서 자화자찬하고 자족하자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교훈을 이끌어 내고 좌파들에게 요구되는 과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기 위해서다.

좌파단체들과 활동가들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수개월 전부터 문재인 정책의 문제점을 들춰 내고,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불만에 초점을 제공함으로써,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경사노위 참여안을 통과시키지 않도록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이 활동을 위해서 좌파적으로 단결했다. 그러자 흩어져 있던 활동가들도 관심을 보였고, 세력 균형이 조금씩 좌파 쪽으로 기울었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했고, 노동자들의 투지와 자신감을 북돋는 효과를 냈다. 정부는 반노동 정책을 포장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지난해 여름 이후 올 봄까지 문재인 지지율은 반토막 났다.

물론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이후의 상황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경사노위 불참은 발목 잡히지 않고 투쟁하기 위해서인데, 민주노총 집행부는 문재인 정부에 맞선 효과적이고 전국적인 행동이 필요할 때 단호하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탄력근로제 개악안이 나왔을 때, 또 약속한 ILO 협약 비준은 안하고 개악안을 냈을 때, 또 민주노총 위원장과 간부들을 잡아 가뒀을 때, 최저임금 인상이 역대 최저치로 됐을 때 등이 그런 상황이었다.

최근 민주노총 일각에서는 상반기 투쟁에 대해 이런 언급이 나온다. “상반기에 총파업을 두 번 조직했는데 파업 규모가 너무 적어 사실상 불발됐거나 파괴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사실 위험하다. 현장 노동자들 탓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쟁 동력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었다.

최근에 노동운동은 오랫만에 활기를 회복했다. 지난 2년간 이런 변화가 뚜렷했다. 정부 통계를 봐도, 지난해와 올해 노동쟁의 건수와 근로손실일수가 크게 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부문이 투쟁에 나섰다. 구조조정 저지, 노동기본권 쟁취, 노동시간단축, 산업재해 관련 투쟁도 있었다. 비록 파업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집배원들이 노조 출범 60년 만에 처음 93 퍼센트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던 것은 노동자들이 불만이 매우 크고 투쟁할 뜻도 있음을 보여 줬다. 최근 분위기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증가로도 나타나, 이제 민주노총은 조합원이 100만 명이 넘었다. 그 중 27만 명, 즉 4분의 1이 넘는 수가 지난 2년 동안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쟁 동력 부족을 얘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곳곳에서 활력 있게 진행되는 투쟁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확대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반우파 적폐청산이나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공통점이 있다고 보면서 정부 비판을 삼가는 것도 이런 효과를 냈다.

우리 편이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자, 문재인 정부는 반토막 났던 지지율을 5월 말부터 조금씩 회복하면서 정세 주도권을 강화했고, 노동자들은 계속 투쟁하는데도 힘이 결집되지 못하고 정세의 주변으로 밀려나는 듯한 형국이 벌어졌다. 이것은 한일갈등 정국을 경과하면서 더 심화됐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하반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한일갈등을 이용해 유리한 고지에서 계속 친기업 반노동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이겨내야 한다면서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산업안전 규제를 풀고, 노동시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에서 김용균이 통곡할 일이다.

최근 노동운동 내에서는 ‘일본수출규제대책 민관정협의회’ 참여가 쟁점이 돼 있다. 정의당과 한국노총이 참가했고, 민주노총에도 참가 요청이 들어온다. 정의당은 ‘들어가서 한일관계를 빌미로 한 노동개악에 반대하자’는 입장이다. 한국노총도 그런 내용의 성명을 내며 들어갔다.

하지만 민관정협의회는 소위 국란 극복을 위해 국민적 단결을 이끌어 내는 데 목적이 있다. 노동계가 참가하면 그런 노력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IMF 경제공황 당시 금모으기 운동에서 봤듯이, 국민 단결 분위기 속에서는 정부가 노동자 희생을 정당화하기 쉽다. 그 안에 들어가서 노동개악에 반대한다는 건 극도로 모순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의 모순과 위선을 꿰뚫어야 한다. 최근 ‘조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조국의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과정은 평등하고 결과는 공정해야 한다면서 오랫동안 차별로 고통받아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공정 채용’ 절차를 강요하더니, 그들 자신은 온갖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대일 정책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위선적이다. 한국당의 친일은 노골적이지만, 문재인의 반일 투사 행세는 가식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익을 위해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을 협조하고 있다. 이 전략은 일본이 군국주의 날개를 펴는 도약대이자, 아시아 긴장의 주범이다. 최근 북한은 문재인 광복절 축사에 대해, 남한 당국자가 평화 노력을 한다는 것은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노릇”이라고 논평했다. 북한도 일관된 반제국주의는 못 되지만, 이 말 자체는 옳은 지적이다.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의 일본 대응에 협조해선 안 되고, 오히려 정부의 친제국주의 협력 노선에 정면 반대해야 한다. 중거리 미사일 한국 배치, 호르무즈 해협 파병, 군비 증강 등이 그런 것이다. 노동 문제에서뿐 아니라 이런 지정학적 문제에서도 문재인 정부에 분명한 반대를 해야 노동 문제를 둘러싸고도 효과적으로 투쟁할 수 있다.

하반기에도 중요한 노동쟁점들을 놓고 갈등이 계속될 것이다.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최저임금, 노동법 개악이 다뤄질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불만은 지속될 것이고, 구조조정과 일자리 공격이 예고되고 있다. 또, 정부는 공공부문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좌파들은 민주노총 온건파를 계속 압박해, 민관정협의회나 경사노위 산하위원회나 그 밖의 다른 사회적 대화기구에 들어가지 말고 대정부 투쟁 기조를 강화하도록 하면서, 노동자들이 좀 더 투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 2년의 경험은 민주당 정부와 협력(또는 타협)해서 사회 개혁을 이룬다는 전략이 여전히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우리 진영을 약화시킬 뿐임을 또다시 보여 줬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일자리와 임금 등 노동조건을 일관되게 방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격차 해소 명분의 양보론이나, 조건 악화의 책임을 노동자 내부로 돌리는 이간질에 반대해야 한다.

좌파단체와 활동가들이 지난 1년간의 공조를 지속시키면서 이런 과제를 수행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좌파들 사이에 수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제한적 쟁점을 둘러싸고 단결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현 시기 좌파 각각에게 요구되는 과업들을 좀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지금 노동운동은 오랫만에 활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제공하는 기회를 우리 좌파들은 잘 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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