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속 논쟁:
기후 위기를 막으려면 채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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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하기 싫으면 탈육식하라”
〈한겨레〉 10월 5일치 오피니언란에 실린 한 칼럼의 제목이다. 이 칼럼의 필자는 같은 메시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9월 21일 서울 혜화동에서 열린 ‘기후위기 비상행동’에도 참여했다. 이 밖에도 채식 운동가들과 동물보호 활동가 수십 명이 이날 집회와 행진에 참가했다.
오늘날 뉴스와 다큐멘터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장형 축산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축산업 자본가들을 제외하면) 많지 않을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학대당하는 동물을 보거나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전염병 때문에 살처분되는 가축들을 보면 역겨움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런 이유로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선택을 문제삼을 수는 없다.
다만 채식을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여겨 이를 운동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중 일부는 위의 구호를 보며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고 또 다른 일부는 반발감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을 꾸짖는 듯한 구호에 언짢음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채식을 기후 위기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오늘날 국제 기후 운동 내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다. 권위 있는 연구 기관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14년에 낸 보고서에서 농업과 산림, 그 밖의 토지 이용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4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IPCC는 올해 8월 ‘기후변화와 토지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는데, 세계식량농업기구의 2013년 발표를 인용해 전 세계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를 제출한 107명의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저지하려면 붉은 고기를 적게 먹고 통곡물과 채소, 과일 위주의 식물성 식단을 먹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올해 초 저명한 국제학술지 〈랜싯〉에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표준 식물성 식단’이 실리기도 했다. 이는 〈랜싯〉에 2년간 실린 연구 결과 357건을 바탕으로 ‘이트-랜싯(EAT-lancet) 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다. 이 위원회는 국가별 식단도 분석했는데 한국 등 동북아시아 나라들에서는 붉은 고기를 표준 식물성 식단보다 약 네 곱절이나 먹는다고 보고했다. 즉 다 같이 고기 섭취량을 4분의 1로 줄이거나, 전 국민의 4분의 3은 채식을 하라는 얘기다.
심지어 맥도날드가 채식 버거를 내놓고, 테스코, 막스앤스펜서 등 다국적 식품 기업들이 앞다퉈 채식 상품을 늘리는 등 오늘날 채식은 건강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권장되고 있다.
정말로 채식을 하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기후 위기를 막으려면 우리 모두 채식을 해야 할까?
자본주의와 농업
먼저 큰 틀에서 살펴보면 축산업을 포함한 현대 자본주의 농업이 갈수록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점점 더 많은 곡물이 가축 사료와 바이오 연료로 사용되고 있다.
2011년 미국에서 소비된 옥수수의 44.7퍼센트가 에탄올 생산에 투입됐다. 사료용은 42.7퍼센트, 식품은 12.3퍼센트를 차지했다.(《나라경제》 2012년 10월호) 농업과 토지 이용 과정에서 배출되는 메탄 가스는 이산화탄소에 비해 그 배출량은 (아직) 적지만 이산화탄소에 비해 23배나 강력한 온실효과를 낸다. 다만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 동안 대기 중에 남는 반면, 메탄 가스는 수십 년 안에 분해된다고 알려져 있다.
둘째, 농지 확장은 산림 파괴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2000~2012년 사이에 사라진 열대 우림의 71퍼센트가 농지 확장으로 인한 것이었다.
셋째, 현대 농업 전체가 화석연료 사용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비료, 농약 등 농작물을 기르는 단계에서뿐 아니라 이를 수확하고 포장해 배송하는 과정 전체가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세계식량농업기구와 IPCC의 보고에서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 과정을 대부분 포함한 것이다. 소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이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비해 많다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육류 소비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고, 축산업 중에서 소가 가장 큰 온실가스 배출원인 것도 사실이다. 소고기 생산은 축산업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전체 배출량의 14.5퍼센트) 중 41퍼센트를 차지한다. 우유 생산에서 20퍼센트가 배출된다. 다만 그 양은 좀더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는 브라질 등 남아메리카의 소고기 생산이 전체 소고기 생산 부문의 31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이는 이산화탄소 10억 톤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 지역의 소고기 생산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 경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소가 사료를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메탄이 있다. 이는 이 지역의 소고기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30퍼센트를 차지한다. 따라서 단순히 계산하면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되는 남아메리카의 소들이 배출하는 메탄 가스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0.55퍼센트가량이다.
둘째, 소를 키우기 위해 숲을 제거하고 토지를 사용하는 과정, 소의 배설물을 비료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소고기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23~40퍼센트를 차지한다.(전체의 0.73, 0.42퍼센트)
이곳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에는 단지 소를 없애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현존 기술을 보급하는 것만으로도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18퍼센트가량 줄일 수 있다. 그 기술을 도입하면 이윤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기업주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토지 이용 방법을 바꾸거나 몇 가지 작물을 활용해 토지의 온실가스 흡수량을 늘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의 사용 여부는 각국 정부와 시장에 내맡겨져 있다.
실제로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은 지역에 따라 큰 편차가 있다. OECD 나라들에서 키우는 젖소는 전 세계 젖소의 20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이 젖소들이 생산하는 우유는 전 세계 우유 생산량의 73퍼센트나 된다. 따라서 같은 양의 우유를 얻기 위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도 평균보다 크게 적다. 세계식량농업기구는 사료를 개선하고 분뇨 처리 방식을 바꾸는 등 몇 가지 간단한 조처들만으로도 우유 생산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4~5퍼센트가량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료인 곡물을 키우는 데 투입되는 합성비료와 농약, 각종 설비에 투입되는 연료, 포장재 등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등을 고려하면 훨씬 많은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브라질
물론 축산업을 포함한 농업 부문에서 단지 특정 기술을 도입해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일 것이다. 이는 농·축산업 부문에 비해 훨씬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전력 생산이나 수송 분야에서 배출량을 줄이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술적 대안은 이미 존재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를 선택할 권력을 가진 지배자들(정부의 고위 관료들과 기업주들)이 이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핵심 문제다. 한 세기 넘도록 어마어마한 자본을 화석연료에 투입해 세계 경제에 막대한 권력을 행사해 온 화석연료 연관 기업들(석유, 자동차, 농화학, 유통 등)이 이런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우리 식단을 바꾸는 것으로는 이들에게서 권력을 뺏을 수 없다. 요컨대 우리가 채식을 한다고 자본주의가 화석연료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채식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편함과 비용을 감내하는 일이지만 자본주의 체제는커녕 한 지역의 축산업에 끼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지만 육류 소비량과 화석연료 소비량은 계속 늘고 있다.
오늘날 육류 소비가 크게 늘고 이를 위해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게 된 데에는 화석연료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가 폭탄을 생산하려고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화학공장들은 전후 농화학 기업들에게 헐값에 넘겨졌다. 카길과 몬산토 같은 농업·농화학 기업들이 세계 식량 생산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 배경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합성비료와 농약, 플라스틱, 항생제, 유전자변형종자 등은 축산업과 농업의 형태를 세계적 수준에서 크게 바꿔놨다. 선진국의 규제를 피해 남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로 생산지를 옮긴 농화학·축산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삼림 파괴를 일으켰고, 자본 이전을 핑계로 삼은 선진국에서의 규제 완화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공장형 축산을 촉진했다. 투입 비용 대비 이윤이 모든 것에 앞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 따른 결과다.
따라서 체제와 그 논리에 맞선 저항을 건설하는 것만이 기후 위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9월 20~27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수백만 명의 기후변화 시위는 희망을 힐끗 보여 줬다. 영국의 멸종저항 시위대는 10월 7일부터 다시 런던 도심 점거 시위에 나섰다.
반면 채식을 대안으로 삼는 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효과적인 수단도 불가피한 선택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는 운동의 초점을 진정한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와 그 지배자들에 맞선 투쟁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식생활로 향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면 바꿔야 할 것은 자본주의 체제와 권력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이 된다. 이는 저항의 힘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사회 변화에 필요한 잠재력을 가진 노동계급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더 근본적인 문제에 도전해야 한다. 가속하는 기후 위기를 멈추려면 자본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원리로 작동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 이 기사는 마틴 엠슨 등이 쓴 《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 A Revolutionary Response to Environmental Crisis》를 많이 참고했다.
* 일부 수치(남아메리카에서 소를 키우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가 잘못돼 2022년 5월 6일 정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