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새로운 기후변화 운동의 등장:
체제를 바꿔 기후변화를 멈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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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국제공동행동의 날에 참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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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충격적인 논문으로 이름을 알린 젬 벤델 교수(영국 컴브리아 대학, 지속가능성과 리더십 연구소)의 지적은 앞날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묘사에 가깝다.
“우리가 마주한 증거들은 인류가 파괴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수준의 기후변화를 초래해 기아, 파괴, 이주, 질병, 전쟁을 몰고올 것임을 보여 준다 … 이런 표현들은 텔레비전이나 온라인에서나 보는 슬픈 장면들을 묘사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아, 파괴, 이주, 질병, 전쟁은 바로 우리 삶에서 벌어질 것이다. 전기가 끊기면 곧 수도도 끊길 것이다. 식량과 온기를 이웃에게 의존해야 할 것이다. 영양 결핍에 빠질 것이다. 남아야 할지 떠나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굶어 죽기도 전에 잔인하게 살해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1
9월 1일 초강력(5등급) 허리케인 도리안이 카리브해 섬나라 바하마를 덮쳤다. 섬 전체 면적의 60퍼센트가 물에 잠겼고 당연히 전기와 물도 끊겼다. 태풍이 떠난 뒤 군 헬기가 피해 지역에 도착했지만 착륙할 곳을 찾지 못해 그냥 돌아가야 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사망자만 40여 명인데 실종자가 수천 명으로 알려진 만큼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실종자의 상당수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갈 곳을 잃었다. 이재민 7만여 명 중 상당수는 돌아갈 곳이 사라져 비교적 피해가 적은 수도 나소나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하고 있다. 전형적인 기후 난민이 된 것이다.
바하마 주민들이 처한 상황은 기후변화가 불러올 더 참혹한 미래를 얼핏 보여 준다.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의 규모는 해가 거듭될수록 커지고 있다. 올해 5월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과 컬럼비아 대학 라몬트-도허티 지구관측소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 영향으로 앞으로 이 지역의 허리케인 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해 허리케인의 힘이 강해지는 한편, 허리케인의 영향을 약화시키는 윈드시어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윈드시어는 태풍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구실을 해 왔는데 기후변화 때문에 약해지고 있다. 북극 공기를 가둬 두는 구실을 하던 제트기류의 약화로 북반구에 혹한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실제로 2000년 이후 평균을 뛰어넘는 허리케인 시즌이 16차례나 있었다. 허리케인이 발생하는 시기도 6월에서 5월로 앞당겨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장기화된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과 맞물려 더 큰 비극을 낳을 수 있다. 만약 태풍이 덮친 지역이 바하마가 아니라 멕시코였다면 난민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 트럼프가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난민을 막겠다며 장벽을 치고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는 북한에 태풍이나 홍수가 닥치면, 평범한 사람들이 겪을 피해와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기후변화의 피해가 단지 가난한 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2005년), 허리케인 샌디(2012년)가 각각 미국 남동부와 북동부를 덮쳤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전기와 수도가 끊긴 폐허에서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며칠을 버텨야 했다.
한편, 지난해 세계 곳곳에서 유례없는 산불이 기승을 부렸다. 오스트레일리아와 그리스를 비롯해 스웨덴과 그린란드 등 북극권 나라들에서도 수시로 산불이 발생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자 자그마한 불씨로도 큰 불이 날 조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던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 발생 면적이 세 배 가까이 커졌다. 산불 규모가 커지면서 소방관들이 접근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브라질 보우소나루 정부의 삼림 규제 완화는 아마존에 거대한 산불이 나도록 해 전 세계인을 충격에 빠뜨렸다. 한국에서도 올해 초 강원도에서 유례없이 큰 산불이 났다. 그 피해자들은 지금도 큰 고통에 시달린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 프랑스에서는 폭염으로 1500명이 사망했다. 대부분은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었던 가난한 노인들이었다.
이처럼 기후변화가 낳는 다양한 위협은 가난한 나라들과 부국의 가난한 사람들, 하층 계급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기후 변화가 낳는 재난은 엉망으로 지어진 노동계급 거주지에서 그 위력을 몇 배나 발휘하고, 가장 나중까지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 폭염과 혹한 속에서도 일을 멈출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산재도 갈수록 늘고 있다.
허리케인, 산불, 폭염
2018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15년 파리협약의 목표를 수정하자고 제기했다. 파리협약 참가국들은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고 합의했는데 4년 만에 그 목표치를 1.5도로 낮춰야 한다고 제기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도 상승했는데 이 정도만으로도 엄청난 자연재해가 현실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1.5도를 넘기면 지구 생태계와 인류 문명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가할 것이다.
IPCC는 이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내용은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의 호소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저는 최근 IPCC 보고서 2장, 108쪽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거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하는 내용이 요약되어 있는 걸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씨 이상 오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420기가톤이었습니다. 2018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하고 67퍼센트의 확률로 추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 탄소예산 숫자는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42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배출한다면 남아 있는 420기가톤의 탄소예산이 대략 8년 반 안에 사라질 것입니다.”2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은 줄기는커녕 사상 최대 속도로 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 원인인 화석연료(석탄, 석유, 가스 등) 사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기를 만들고 자동차를 움직이고 난방을 하는 등 현재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대부분이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화석연료 사용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전기와 자동차는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로 100퍼센트 대체할 수 있다. 주택 냉난방과 농업에 필요한 에너지는 대폭 줄이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3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 지배자들이 화석연료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데 있다. 주류 언론과 지배자들은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이며 평범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소수 기업주와 정부 관료들이다. 이들은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100여 년에 걸쳐 쌓아 올린 권력과 기업 경쟁력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분투한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 유엔 기후협약이다.
그중 하나인 1997년 교토협약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고작 5퍼센트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국가였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당선 하자마자 이 협약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협약에 참여한 어느 국가도 이 협약을 지키지 않았다. 경제 위기가 시작된 직후인 2009년 코펜하겐에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마바는 아무 약속도 하지 않고 회의를 끝내 버렸다. 2015년 파리 협약은 ‘2도’라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각 나라가 알아서 줄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은 거의 갑절로 늘었다.
열대우림 보호 행동 네트워크(Rainforest Action Network)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파리협약이 체결된 2015년 12월부터 화석연료에 투자된 자본은 2016년 6120억 달러, 2017년 6460억 달러, 2018년 6540억 달러로 해마다 늘었다. 제이피모건, 웰스파고, 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들이 이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 거대 은행들의 투자도 화석연료에 대한 전체 투자 자본의 규모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4
일부 지배자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목소리를 높일 때조차 인류의 미래보다는 새로운 사업 기회(전기차 등)에 눈독을 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 간, 국가 간 경쟁을 격화시키는데, 대개 훨씬 큰 자본(따라서 권력)을 쥔 자들이 게임의 룰을 정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쏟아부은 자본을 모두 회수하고 새로운 사업에서 주도권을 확고히 할 때까지는 새로운 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첨단기기 산업을 두고 무역분쟁을 벌이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은 온실가스 배출 1~2위 국가이자 전기차 산업 1~2위 국가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재생에너지를 가장 많이 설치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격렬히 저항하는 국가들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는 근본에서 기업들간의 경쟁과 그 기업들이 기반을 둔 국가들 간의 경쟁에 의해 작동되는 체제다. 따라서 마치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눈 한 무리의 총잡이들처럼, 먼저 총을(화석연료를) 내려놓는 자가 도태될 것이라는 자명한 논리 앞에 어느 누구도 앞서서 화석연료에서 손을 떼려 하지 않는다.
IPCC는 1.5도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사실상 “체제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까닭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를
그레타 툰베리와 유럽의 청소년 시위, 영국의 ‘멸종 반란’ 시위 등은 이런 상황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해진 구호는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를’(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이다.
오는 9월 23일 유엔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들은 전 세계적인 파업과 동맹휴업, 시위를 호소했다. 이 행동을 알리는 세계기후파업사이트에는 9월 20일~27일에 117개국에서 벌어지는 2500개 기후 행동이 등록됐다.
한국에서도 9월 21일 대학로에서 이 국제 행동에 동참하는 집회(‘기후위기비상행동’)가 열린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적 운동이 한국에서도 시작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