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거리두기 체계 개편:
겨울이 오는데 정부는 거리두기를 완화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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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1월 1일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 방안’(이하 개편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유지돼 온 방역 수칙이 2~3월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그동안 코로나19에 대해 새로 알게된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방침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11월 7일부터 개편안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개편안에는 합리적인 부분이 일부 있다. 예컨대 2주마다 평가하던 방역 상황을 매주 평가하기로 했다. 1~2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잠복기가 2주가량으로 알려졌는데, 그 이후 추세를 보면 잠복기가 대개 4~5일 정도로 2주마다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권역별 인구 등을 고려해 좀더 세밀한 기준을 세우고, 고령 환자 발생, 중환자실 여분 등을 지표로 삼은 것도 필요한 점들이다. 권역별 생활치료센터·감염병전담병원을 상시 운영하기로 한 것도 당연히 이뤄져야 할 조처다. 사실 이 점은 중국이 2월에 다른 나라들에 경고했었는데,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선진국 정부들은 이를 무시하다가 때를 놓쳐 병원 등 시설 격리가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미국·영국의 보건 당국은 가족 내 감염의 위험을 지적하며 확진자를 집에 머물게 하는 자가격리 정책을 중단하고 병원 등 격리시설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를 권고하던 것에서, 증상이 나타나면 선별진료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변경을 고려하는 것도 옳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증상 발현 후 3~5일 시점에 감염력이 최대가 되므로 집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감염 가능성을 키우는 일이 될 수 있다. 초기에 그 중요성을 간과해 보조수칙으로만 제시한 ‘마스크 착용’을 기본수칙으로 변경한 것도 필요한 조처다.
경기 활성화
그럼에도 개편안의 전체 그림은 거리두기 수준을 대폭 완화하는 데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코리아세일페스타’, ‘여행·숙박 쿠폰 배포’ 등 다시 경기 활성화에 나선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방역과 경제 활동(기업 이윤 보호하기가 그 핵심) 사이에서 다시 후자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시도일 것이다. 내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자영업자들의 민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계산도 할 법하다.
개편안은 기존에 3단계로 돼 있던 거리두기 단계를 5단계로 세분화하고 단계를 격상시키기 위한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기준을 충족했을 때에도 단계 격상을 ‘검토’ 한다고 규정해 방역당국이 격상 시기를 최대한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하루 확진자 수가 100명을 넘으면 2단계로 격상하도록 돼 있었는데, 개편안에서는 수도권의 경우 하루 확진자 수가 100명을 넘을 경우 1.5단계로 높이고, 1주일 이상 200명을 넘어야 2단계로 격상된다. 전국적으로는 300명을 넘을 때 2단계로의 격상을 검토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처럼 거리두기 수준을 완화한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정부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의 거리두기 기준이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라며 독일과 영국의 사례를 든다. 독일의 경우 올해 봄 유행 당시 방역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렇다고 치더라도 영국을 예로 들어 기준을 완화하자는 얘기는 황당하다. 영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지역별 3단계 대응 체계”는 거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확진자 수는 매일 2만여 명을 넘어서고 있다.
독일의 경우, 대부분의 병원이 공립이고 중환자실도 2만 5000개가량으로 비교적 자원에 여력이 있어 봄 유행에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유럽 전체 상황에 영향을 받아 확진자 수가 매일 1만여 명이 넘는다.
반면, 한국은 공공 의료기관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5월과 8월 유행 당시에도 ‘의료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었다. 2~3월 대구에서는 실제로 겪은 일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의 말처럼 중환자실이 문제다.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양호했던 것은 비교적 신속했던 초기 대응(메르스 경험 덕이다)과 강력한 추적 시스템(공무원 노동자들과 의료진을 혹사시킨), 그리고 권위주의적 요소 도입(마녀사냥, 신상공개, 구상권 청구 등)으로 대중의 경각심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측면이 크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에서 정부는 엉뚱하게도 중증환자 병상에 “여유”가 있다며 기준을 완화했다. 정부는 확진자 중 중증환자 비율이 3퍼센트 안팎이고, 평균 입원기간이 25일 정도이므로 현재 확보한 중환자 병상 200개면 확진자가 매일 100명씩 발생해도 25일간 대응할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놨다.
안이한 생각이다. 감염력이 높은 코로나19의 특성상 감염이 확산되는 시기에는 확진자가 꾸준히 점증하기보다 폭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8~9월 유행 당시에도 확진자 수는 가파르게 증가했고, 2~2.5단계 거리두기 조처로 증가세를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다.
바뀐 기준에 따르면 같은 일이 벌어져도 정부의 대응은 한 주 이상 늦어질 가능성이 있고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될 것이다. 개편안에서는 하루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야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할 수 있다.
이는 거리두기의 목적을 감염 예방(최소화)이 아니라 정부의 통제력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 사이에 수백 명이 중환자실에 실려가고 수만 명이 감염될 텐데 말이다. 정부는 중환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지만, (산소 치료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경증 환자들도 심한 고통과 여러 후유증을 겪는다는 사실을 정부는 간과하고 있다. 경증에서 중증으로 발전하는 환자도 있고, 폐가 치명적인 상태로 망가지기 전까지 자각 증상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선 안 된다.
기업주들은 배려하고, 개인 책임은 강화
기존의 방역 지침과 달라진 또다른 특징은 기업(노동자들에게는 직장)에 대한 방역 조처가 매우 완화된 것이다. ‘고위험’ 시설뿐 아니라 서울 강남 등에 있는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이런 사정은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기존에는 2단계에서 공공기관과 기업의 경우 전체 인원의 2분의 1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개편안에서는 이를 3분의 2로 늘렸다.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기업의 필수 경영 활동 및 공무의 경우에는 인원 제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설명도 달았다.
반면, 노동자들은 더욱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작업과정에 대한 통제권이 기업주들에게 있는 한 노동자들은 위험이 상당히 고조될 때까지도 계속 출근해야 할 수 있다. 콜센터, 물류센터는 “고위험” 사업장으로 분류하면서도 사실상 마스크 착용만으로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학교 등교 인원도 늘리고 3단계에서만 전면 원격수업을 하도록 했다. 사회복지이용시설의 경우 2.5단계까지도 운영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이에 필요한 인력, 자원 등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중환자 집중 관리로 간다지만 중환자를 돌볼 간호사 등 인력은 여전히 크게 부족하다.
정부와 기업주들의 책임은 완화하면서 평범한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곳(대중교통 등)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정부가 무상으로 마스크를 보급하지 않으면서 이런 조처를 취하면 저소득층에게 더 불리한 조처가 될 것이다. 구상권 청구를 ‘활성화’하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일부 진보 의료인의 자가격리 도입 의견 유감
정부는 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10월 27일 중앙방역대책본부 주최로 토론회도 열었는데, 이 자리에 여러 전문가들을 불러 개편안을 정당화하는 발표를 맡겼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치료의 컨트롤 타워라 할 수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기조실장을 맡고 있는 주영수 교수는 음압병실을 무리하게 늘리기보다 자가격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주영수 교수는 진보적 의사 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바 있는데, 공공병원과 인력 확충을 요구해도 모자랄 마당에 정부의 방침을 고려한 듯한 위험천만한 제안을 꺼낸 것은 무척 유감이다.
정부의 거리두기 개편이 곧장 확진자 폭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는 있다. 지난 1년 동안 거의 모든 감염병 환자가 줄었는데, 이는 그만큼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가 보편화된 덕분일 것이다. 정부의 거리두기 완화 메시지는 이런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반면, 대처는 늦어지게 할 것이다. 병실과 인력 등 확진자 폭증 상황에 전혀 대비가 돼 있지 않은 조건도 1년 동안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거리두기 완화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지원을 해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