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영국 ‘실세’ 총리 수석보좌관 해임 — 정부 실패 덮는 편리한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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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의 수석 보좌관 도미닉 커밍스가 무언극의 악당처럼 총리 관저에서 쫓겨났다. 끔찍한 한 해에 몇 안 되는 즐거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총리 관저 내의 개인적 알력에 관한 모든 가십거리는 잊자. 정치 평론가 로버트 페스톤이 보수 주간지 〈스펙테이터〉에 쓰기를, 커밍스가 쫓겨나기 전 “보수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내년에 존슨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귀청이 떨어질 만큼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보수당 정부가 그토록 비판받는 이유, 즉 팬데믹 대처에 미흡했던 것의 책임은 몇몇 개인에 있기보단 집단적이었다.
올 봄 이동 제한령을 미루고 요양원에 노인과 병자를 방치하는 살인적인 조처는 영국 정부의 결정이었다.
최근의 헛발질들도 마찬가지로 살인적일 텐데, 여기에도 여러 명의 손때가 묻어 있다.
“서킷브레이커” 이동 제한령[전국적 단기 이동 제한령]을 내리기를 거부하고, 휴업 수당 계획을 폐지하려 했던 자가 바로 그토록 과대평가 받았던 재무장관 리시 수낙이다. 정부의 팬데믹 대처 실패에는 일관된 패턴이 있다. 보수당이 계속해서 신자유주의를 고수하다가 벌어진 일이란 것이다.
보수당 정부는 집착적으로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깎고,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시장화하고, 믿지 못할 사기업에게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와 추적 등을 맡겼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의 전성기 이후로 이 모든 것은 보수당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커밍스는 이동 제한령을 위반하고 고향 집을 방문한다며 400여 킬로미터를 돌아다니면서 이 난장판에 한몫했다.
커밍스는 이동 제한령을 보란 듯이 어기고도 살아 남아서 개인적인 권세를 가증스럽게 과시했다. 그러나 커밍스가 그 자리에 없었던들 보수당이 훨씬 더 잘했을 것이라고 볼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수완가
커밍스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기민한 정치적 수완가다. 그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 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 찬성표를 이끌어 내고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는 데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그가 동원한 방법은 똑같았다. 영국 민족주의로 물들인 가짜 반(反)기득권 행세로 유권자들을 양극화시켰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식 정치의 일종이다. 극우 정치인 나이절 퍼라지는 영국판 트럼프인 척하길 좋아하지만, 커밍스는 훨씬 더 효과적으로 막후에서 트럼프주의를 실천했다. 지난해 총선 전에 커밍스가 존슨을 움직여 의회, 사법부와 대결하게 하고 보수당에서 친(親)유럽연합 세력을 제거하게 한 것을 떠올려 보라.
커밍스의 문제는 그의 무자비함이 80석 차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촉발한 거대한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점이다. 거의 틀림없이 그는 오만방자함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샀을 것이다. 이미 정부가 실패하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그래서 커밍스는 편리한 희생양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는 어떤 상황인가? 지난 13일 총리 관저에서 퇴출된 후 커밍스와 그의 동료 리 케인은 보수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존슨의 “우유부단함”을 불평했다.
찰스 무어는 같은 신문에 이렇게 적었다. “도미닉 커밍스가 보리스 존슨 정부의 핵심 인물이 됐던 이유는 무엇인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그가 정부를 떠나야 했는가?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곧 판명 날 것이다. 현재 자가 격리중인 존슨은 아마도 다음 주쯤 총리직 취임 이래 가장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영국이 2020년 말에 유럽단일시장에서 탈퇴하면서 유럽연합과 무역협정을 맺으려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존슨은 샌드위치 신세다. 유럽연합은 영국을 경제적 위성국으로 남겨놓기 위해 자신의 우위를 무자비하게 활용하려 한다. 다른 한 편에는 미국이 있다.
곧 취임할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 조 바이든은 브렉시트에 적대적이다. 노딜 브렉시트[향후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합의하지 못한 채 유럽연합을 탈퇴]가 가져올 경제적 혼란을 두려워하는 재무장관 수낙과 영국 기업들은 존슨에게 유럽연합에 고개를 숙이라고 열심히 압력을 넣고 있다.
커밍스 해임이 이 협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상충되는 해석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유로워진 존슨이 협상을 타결할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존슨이 보수당 내 브렉시트 지지세력과 척지느니 노딜 브렉시트를 택할 것이라 말한다.
누가 옳든 상황은 보수당에게 더 어려워질 것이다. 커밍스가 있든 없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