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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종식되는가?

롭 호브먼은 끝없는 경제·사회 위기, 시장 급락, 금융 재앙을 낳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이윤율 하락을 반전시키는 데에 실패한 신자유주의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2016년 6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연구소는 ‘신자유주의는 과잉판매됐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여태껏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자들 사이에서만 쓰였을 뿐, 옹호하는 자들 사이에서는 완전히 금기어였기에 국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옹호를 주도해 온 IMF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보고서의 내용은 IMF가 오랫동안 경제가 더 취약한 국가들에 강요하고 권장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단을 가차없이 고발하는 것이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전 세계에 걸쳐 경제적 불평등의 증가, 반복되는 경제 위기(특히 금융 위기)로 이어졌고 낮은 경제성장률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4년 후, UN무역개발회의(UNCTAD)는 이와 비슷하지만 코로나19의 위협으로 인한 경제 붕괴의 규모에 좀더 초점을 맞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경제 붕괴에 대한 대응으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추진된다면 이 전례 없는 세계경제 생산량 하락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이며 수억 명이 직장을 잃고 끔찍한 가난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는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체제의 야만을 드러냈다 올해 4월 미국 뉴욕 거리의 노숙인 ⓒ출처 Anthony Quintano

케인스주의

신자유주의 경제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토록 지배적이게 됐는가?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에 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다음의 것들을 그 중심적인 요소로 포함시키는 듯하다. 가장 중요하게는, 시장이 희소한 자원을 분배하는 최상의 방식이라는 신념이다. 정부 독점 혹은 어떤 형태의 독점도 자원의 부적절한 분배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사용을 낳는다. 그러므로 국가는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하고, 공적 소유 산업은 민영화돼야 하며, 노동시장을 “해방시키기” 위해 노동조합은 그 힘이 약화되거나 어쩌면 제거돼야 한다. 국가가 뒤로 물러난다는 것은 또한 무역장벽을 없애고, 산업 “보호”용 보조금을 줄이거나 없애고, 금융 규제를 풀어 이윤을 낳을 수 있는 곳이라면 돈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전에는 (자본주의 자체는 신뢰하더라도) 대불황으로 이어진 1930년대와 같은 종류의 위기를 방지하도록 ‘자본주의는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대체로 받아들여졌는데, 1980년대에 들어 신자유주의적 관점이 이를 대체하고 우세해졌다. 1950년대 영국 노동당 대표 휴 게이츠켈과 보수당 재무장관 래브 버틀러의 이름을 따 ‘버츠켈리즘’으로 알려진 이런 개입주의적 사회민주주의 컨센서스의 경제 정설은 케인스주의였다.

케인스주의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름을 딴 것으로 완전고용과 경제 성장을 유지하려면 시장 자체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관점을 말한다. [그 관점에 따르면]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자본주의 경제는 낮은 임금이나 투자할 부에 대한 “야성적 충동”의 변화, 혹은 그 둘 다로 인한 경제적 수요 결핍, 즉 (과소)소비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경제가 하락할 때 소비를 부양해 수요 부족을 메워야 한다.

UN무역개발회의 보고서의 저자를 비롯해,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의 워싱턴 컨센서스에 비판적인 많은 사람들이 1980년대 케인스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전환을 단지 당시 정책결정자들의 유감스러운 사고방식 변화 탓으로 본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관념론적 분석이다. 당시 케인스주의 컨센서스는 1970년대 위기와 하락하는 경제성장률, 높은 물가상승률 때문에 부자와 권력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것이 1979년 영국에서 [보수당 총리] 마거릿 대처가 권력을 잡은 배경이다.

뇌물

대처는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정책을 열렬히 지지했는데, 프리드먼의 한심할 정도로 단순한 시각대로라면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과도한 화폐 발행 탓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화폐 공급은 엄격한 목표 설정에 의해 통제돼야 하며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에서 독립적인 중앙은행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추후에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정치인들은 선거기간에 유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폐 공급이라는 뇌물을 바치려는 유혹에 언제나 이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처와 그의 생각을 대신해 주던 자들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의 사상을 추종했다. 하이에크는 광적인 반공주의자로 경제학자라고 칭할만한 자는 아니었으나 당시 권력자들의 시대정신에 부합했다. 특히 그는 개인만이 당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봤다. 그러므로 어떤 영역에서도 정부가 자원을 할당해서는 사람들의 수요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 대처가 한 유명한 말 “사회란 없다”는 이런 하이에크의 사상에서 온 것이다.

하이에크의 사상은 1980년대 [미국 공화당] 레이건 정부의 국무장관 진 커크패트릭 부류의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여타 지역에서의 독재가 신자유주의 경제 어젠다에 부합하는 한 이를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됐다.

하이에크의 사상은, 1973년 칠레에서 군사 쿠테타를 벌였고 대처의 절친한 친구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했다. 이들이 주장하기로는,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는 더 고차원적인 형태의 민주주의, 즉 아옌데 정부의 (온건했던) 재분배 정책이라는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 시장”이라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데에 기여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과도한” 정부 지출로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를 잃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진실과 정반대이다.

진정으로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만들어 내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은 착취를 통해 부를 훔치는 부자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게임의 목적은 민간 부문에서 높은 이윤율을 회복하려는 것이었고, 이는 착취 증대를 의미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약화시켜 임금 삭감을 밀어붙이고, 법인세를 낮추고, 금융 시장을 자유롭게 해서 대자본들이 이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의 부상 뒤에는 일정한 논리가 존재했다. 1970년대 세계경제에 만연했던 불안정을 촉발시킨 것은 바로 이윤율 하락이었고,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황금기”로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더 높은 이윤율뿐이었다. 또한 동구권을 형성했던 국가자본주의 국가들의 몰락도 신자유주의가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출

국가자본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자유 시장 자본주의 형태로 돌아선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관을 여지없이 입증한 것 아닐까? (대처를 살짝 비틀어서 인용하자면) 서방 자본주의를 주름잡은 그 경제 체제 외에는 실행 가능한 다른 대안은 정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관점은 후에 중국 국가자본주의 경제의 비상한 성장으로 반박됐지만 말이다.

영국에서 신자유주의 컨센서스가 확립되는 데에는 두 가지가 더 필요했다. 하나는 노동조합과 대결해 그 힘을 굴복시키는 것이었다. 대처 내각의 전략가 니컬러스 리들리가 고안한 각개격파 전술을 이용해 대처는 노동조합의 주요 부문과 강력한 노동자 단체들을 하나씩 상대하기로 계획했고, 노동자들이 부문을 뛰어넘어 연대하는 일을 피하려고 했다.

1980년대 내내 주요한 전투가 이어졌다. 먼저 철강 노동자, 그다음으로는 광원, 그리고 인쇄 노동자, 마지막으로 선원 노동자들 순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특히 광원들이 대처를 패배시킬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노동조합 핵심 지도자들과, 특히 노동당 당수였던 닐 키녹과 영국노총(TUC) 위원장 노먼 윌리스가 광원들을 주저앉혔다. 미국에서는 레이건이 이와 비슷하게 항공 관제사들의 조합(PATCO)과 전투를 벌였고 [승리를 거둬] 파괴적인 효과를 냈다.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컨센서스로 확립되는 데에 필요했던 둘째 요소는 노동당 지도부의 공조였다. 이는 토니 블레어가 당 대표가 되고 총리가 되면서 결정적으로 완성됐다.

많은 이들이 정확히 지적하듯, 블레어는 마거릿 대처의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 신자유주의가 핵심적으로 목표했던 것처럼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게 된 것은 1998년 노동당 정부 하에서야 가능했다. [당시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은 또한 민자유치사업(PFI)과 민관협력사업(PPP)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조치를 진두지휘한 자였다. 민간 시장을 공교육에 끌어들여 국립 학교가 [민간 경영 기법을 도입한] 아카데미로 전환된 것도 토니 블레어 정부 하에서 이뤄졌다.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이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컨센서스를 확립하는 데에서 비슷한 구실을 했다. 비록 미국 민주당은 공공연한 친기업 정당이었기에 설득이 훨씬 덜 필요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늘 그렇듯이, 신자유주의 교리는 결코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았다.

통화주의는 1980년대에 인기를 누렸고, 통화주의 추구는 1980년 파운드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졌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영국 제조업의 파괴와 300만 명이 넘는 실업자를 낳는 데 크게 일조했다. 그러나 통화주의는 화폐 공급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실질 물가상승률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일절 없음이 드러나며 불신의 대상이 됐다.

최근에 들어서는 [통화주의는] 전적으로 폐기됐는데 중앙은행들이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양의 돈을 찍어내는 소위 양적 완화에서 이를 볼 수 있다. 물론 오늘날에도 머지 않아 인플레이션의 망령이 다시금 떠오를 것이라며 경고하는 통화주의자들을 찾을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스의 한 거리에 긴축을 강요하는 IMF를 비난하는 글귀가 써 있다 ⓒ출처 Europe says OXI (페이스북)

부채

신자유주의는 끊임없이 공공지출과 국가부채를 제한하라고 압박해 왔다.

이것이 바로 정부의 1년 예산에서 적자가 3퍼센트를 넘어선 안 되고, 전체 정부 부채가 연간 총생산의 60퍼센트를 넘어선 안 된다고 유럽연합이 재정준칙을 규정했던 배경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민간 부분 부채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민간 부채는 실로 1980년대 레이건 붐의 동력이었지만, 2008년 금융 붕괴 후 회복이 지지부진한 결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국공영 부문이 다양한 형태로 민영화됐음에도 정작 경제 총지출 중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아이러니이게도 이렇게 유지된 정부 지출이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 속에서 반복된 경기 하락과 위기를 어느 정도 상쇄해 왔다.

또한 유럽연합은 내부적으로 더욱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에 몰두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연합 전역에 유럽중앙은행의 유로화 통제력을 앞세워 가혹한 경제 긴축을 강요했다. 소위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 IMF]를 통해 추진된 이런 정책은 파산한 그리스 경제를 재앙적인 경기 후퇴로 이끌었다. 게다가 유럽연합은 이민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담장을 높였을 뿐 아니라 관세도 도입해 유럽 외부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유럽 경제를 보호하려 했다.

주지하다시피 이것은 골치 아픈 브렉시트 회담에서 현재 주요 문제 중 하나다. 이전까지는 영국 정부가 기꺼이 유럽연합 외부에 부과했던 관세가 이제는 영국 경제를 겨냥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윤율

여러모로 놀라운 점은 신자유주의가 40년 동안 임금을 삭감하고 착취율을 끌어올리고, 비효율적이고 이윤이 낮은 기업을 정리하고, 국유 부문을 대폭 줄여 왔음에도 실물경제의 이윤율은 아직도 체제를 안정시킬 수준만큼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점점 더 많은 돈이 직접 투자보다 금융 투기에 흘러들어갔다. 이미 부유한 자들의 부가 어마어마하게 늘었고, 불평등이 크게 증대했다.

게다가 이는 금융 위기를 여러 번 낳았고, 그중에 최악이었던 2008년 위기는 전체 금융 체제와 세계경제를 무너트릴 수 있는 위협이었다. 2008년 이후 취한 긴급 조치가 그러한 붕괴를 멈췄을지는 모르지만 세계경제는 [코로나로 인한] 대규모 봉쇄조치가 불러온 대규모 경기 후퇴 이전인 2019년 말, 2020년 초에 이미 다시금 불황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지난 10년 넘게 큰 고통을 준 긴축 정책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컨센서스가 코로나 봉쇄 탓에 강제적으로 약화되는 것을 환영해야 한다.

그러나 UN무역개발회의 최근 보고서가 제안하는 케인스주의 대안은 그 자체로 낡아빠진 것이다. 그런 대안은 자본주의 하에서 경제 수요를 촉진하고, 임금 인상과 정부 지출 증가로 경제 성장을 자극할 손쉬운 방법이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더 높은 임금은 이윤을 줄일 것이다. 그리고 정부 지출 증가는 얼마 가지 않아 정부가 돈을 빌리는 금융 시장의 압력을 키울 것이다.

일자리·[공공] 서비스·안전과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긴급한 계획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려면 신자유주의뿐 아니라 언제나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 그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