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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강연:
세계화는 끝났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영국에서 열린 ‘맑시즘 2019’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세계적인 ‘반세계화’ 운동의 시작을 알린 1999년 시애틀 WTO 정상회담 반대시위 세계화는 언제나 왼쪽의 반대에 부딪혀 왔다. 극우가 지금 위기에서 정치적 수혜를 보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출처 Seattle Municipal Archives

2019년은 1989년 동유럽 혁명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해 동부와 중부 유럽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스탈린주의 정권을 쓸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여러 측면에서 그 사건의 의미를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측면에서 돌이켜 보면, 동유럽 혁명은 세계 자본주의가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세계화는 세계, 특히 유럽을 두 초강대국 진영으로 나눈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가시화했습니다. 그것은 서방 자본주의의 수장인 미국이 모든 국민 경제를 신자유주의라는 자유 시장 규범 아래 복종시키고 세계 체제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이런 통합은 사실 1980년대 초 제3세계 부채 위기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냉전 종식은 세계 자본주의를 갈라 놓은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습니다.

세계화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가장 근본적인 첫 번째 측면은 세계적 생산 네트워크의 발전입니다. 다시 말해 생산이 점점 더 초국적인 수준에서 조직된다는 것입니다. 다국적기업의 힘이 이를 가장 눈에 띄게 보여 주지만, 여러 기업의 다양한 프랜차이즈나 위탁 계약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생산이 조직된다는 점 또한 오늘날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거대한 대만 기업 폭스콘은 중국에서 100만 명 이상을 고용해 (최근 들어 캘리포니아에 본사가 있음을 강조하는) 애플 사의 제품을 최종 조립합니다. 세계적 생산 네트워크의 발전을 실감케 하는 사례입니다. 이런 변화는 제조업이 영국 같은 나라에서 쇠퇴하고 중국이나 남반구 일부 지역에서 팽창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세계화의 두 번째 측면은 국제 무역이 더 빨리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대체로 세계적 생산 네트워크가 발전한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국제 무역은 흥미롭게도 대부분 다국적기업 내에서, 즉 그 기업에 속해 있는 한 현지 기업이 또 다른 나라에 있는 현지 기업과 거래하는 식으로 이뤄지거나, 적어도 세계적 생산 네트워크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세계화의 마지막 측면은 1930년대 대공황 이전처럼 세계적으로 통합돼 있으며 유동성과 이동성이 높은 금융 시장이 다시 발전한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거대 투자은행의 경제적·정치적 힘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금융 세계화를 논할 때 골드만삭스나 JP모건을 떠올립니다. 흥미롭게도 두 거대한 초국적 은행은 1920년대에도 매우 강력했습니다.

많은 면에서 신자유주의는 이런 변화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였으며 이런 변화의 가속화를 정당화하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예컨대 제3세계 부채 위기는 여러 남반구 국가에 경제 개방을 강요하는 데 이용됐는데, 이때 신자유주의가 그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약화했지만(그 이유는 잠시 후 설명할 것입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세계화가 엄청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떠들썩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런 논의의 가장 조악한 예는 〈뉴욕 타임스〉에서 고액의 원고료를 받는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05년에 쓴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입니다. 유머 감각도 없고 몇 년 후 자기 주장이 어리석어 보일 것임을 내다보지 못한 프리드먼은 세계화가 세계를 훨씬 평등하게 할 것이고, 특히 북반구와 남반구의 극심한 격차를 줄일 것이라고 썼습니다.

이것의 좌파 버전도 있습니다. 20여 년 전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는 《제국》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제국》의 내용 또한 세계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 온 경계를 자본주의 세계화가 허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화는 언제나 정치적인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1990년대가 끝나기 직전 시애틀 시위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제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은 ‘반(反)세계화’ 운동이라는 부정확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은 사실 신자유주의적 형태를 취한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대안 세계화” 운동이라는 더 정확한 명칭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1980년대부터 우리가 겪어 온 형태의 세계화는 언제나 왼쪽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 세계화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습니다. 위기의 결정적 요소 중 하나는 2007~2008년 금융 시장 붕괴와 그 후 이어진 장기 불황입니다. 이는 세계경제에 선명한 흉터를 남겼습니다.

세계화의 한 가지 징후는 국제 금융 흐름이 중요해진다는 것입니다. 세계화에 대한 다소 천박한 논의에서, 세계화란 오로지 컴퓨터 자판을 몇 번 두드리면 국경을 넘나드는 돈 따위에 관한 것입니다. 2008년 이전에 분기별 국제 자본 흐름은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10~15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이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2008년 이래 이 수치는 5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국제 금융의 이동성이 줄어든 것입니다. 위기의 한 징후입니다.

국제 무역 성장도 둔화했습니다. 세계화의 도취감이 극에 달한 1990년대에 국제 무역 증가율은 세계 GDP 성장률의 두 배였습니다. 국제 무역이 세계 GDP보다 두 배 빨리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비율은 거의 일대일입니다. 국제 무역 증가율이 GDP 성장률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죠. 몇 달 전 〈이코노미스트〉는 제가 언급한 사례와 다른 많은 사례를 들며 ‘슬로벌라이제이션(Slobalization)’, 즉 세계화가 얼마나 느려졌는지를 다뤘습니다.

2008년 금융 시장 붕괴가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인 만큼 이런 변화는 구조적인 패턴으로 보입니다. 세계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정치적 반발

그러나 세계화의 위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화를 겨냥한 정치적 반발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극우가 이를 주도합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미국 독립기념일에 벌인 무식한 군사 행진은 그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워싱턴 한복판을 탱크로 가로지르는 것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라니. 이탈리아에는 기성 정치를 지배하는 극우 정치인이자 부총리인 마테오 살비니가 있고, 프랑스에는 파시스트인 마린 르펜이 있습니다. 르펜은 아직 프랑스 정치를 지배한다고까진 할 수 없지만 꽤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인들의 수사를 잘 들어 보면 세계화를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흔히 이주민을 적대하는 인종차별을 세계화에 대한 비판인 것처럼 내놓습니다. 트럼프 식으로 표현하면 ‘국제 엘리트’들이 이민자를 계속 들여와 우리 나라의 문화를 망치고 ‘정주’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치적 파산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상당 부분 위기의 산물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 위기의 후유증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자주 묘사되는 정치적 반발을 낳았습니다.

여기에는 일자리와 생활 수준에 대한 장기적인 압박이라는 요인이 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가장 뚜렷했고 영국에서도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2008~2009년의 장기 불황이 초래한 충격도 중요하지만 주요 지배계급이 위기를 빠져나가려고 취한 방식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자본주의의 모든 주요 부문에서 긴축을 밀어붙였습니다.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긴축이 진짜로 뜻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구축한 신자유주의는 우리를 진짜 부유하게, 어쩌면 우리가 탐욕스럽게 꿈꿔 왔던 것보다도 더 부유하게 했어. 신자유주의는 이번 위기를 촉발했지만 그 비용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 서민들이 치러야지. 일자리, 공공서비스, 교육 따위를 삭감할 거야. 평범한 사람들이 대가를 치를 테지.’ 지배계급은 그러고도 자신들이 무사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소위 ‘포퓰리즘’ 운동은 신자유주의 엘리트가 세계경제를 운영한 방식, 특히 위기의 비용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긴 것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반발입니다. 비록 ‘포퓰리즘’은 사태를 매우 부정확하게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위기는 주요 국가에서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치적 파산을 초래했습니다. 이는 체제의 핵심부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다시 세계경제에 반작용을 가합니다. 특히 세계화의 측면에서 이 반작용은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세계화 시기에 서로 경제적으로 깊숙이 얽힌 두 나라가 이제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과 관련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관세를 사랑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내부자들이 전한 여러 폭로가 있었는데요. 그중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트럼프가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고위 경제 관료들과 회의를 하는데, 트럼프는 “관세를 매겨, 관세를 매기란 말이야”라고 했고 골드만삭스 출신 경제 고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고 합니다.

결국 트럼프는 관세를 얻어냈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문제의 인물, 게리 콘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서] 사임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만이 아니라 트럼프의 몇몇 무역정책 고문들, 예컨대 트럼프가 신설한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 피터 나바로 같은 자들도 관세를 원합니다. 나바로는 자신의 목표를 분명하게 천명합니다. 나바로는 미국 기업들이 멕시코와 중국을 끼고 발전시켜 온 초국적 생산 네트워크를 미국으로 되찾아 오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나바로가 목표 달성에 성공한다면 세계화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단지 트럼프나 나바로의 별난 성향 때문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에드워드 루트왁은 스스로 ‘전략가’라고 칭하는 매우 명석한 우파 사상가입니다. 1990년대 말 세계화 시대에 루트왁은 《터보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세계화 ‘굿판’이 온통 혼란에 빠지리라 예측합니다. 꽤나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죠. 그뿐 아니라 루트왁은 “경제지리적” 충돌의 시대, 즉 주요 국가들 사이의 충돌이 주로 경제적 갈등으로 나타나는 시대가 시작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그런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 패권이 여태껏 직면한 도전자 중 가장 위협적인 상대입니다. 소련은 군사적 위협이긴 했지만(특히 핵무기를 확보한 후에는 더 그랬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어떤 면에서 소련보다 더 위협적이었지만 제2차세계대전 이래 정치적·지정학적으로 미국에 극도로 종속됐습니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한 일본과 달리 중국 지배자들은 미국의 안보 동맹에 끼는 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습니다. 중국 지배자들은 미국을 태평양 밖으로 몰아내고 싶어 합니다.

미국 패권이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는 사실은 트럼프뿐 아니라 미국 지배계급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해외로 진출한 미국 기업들은 대부분 관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중국에서 오는 공급망에 의존하는 만큼 비용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여러 중국산 수입품에 25퍼센트 관세를 매기면 그만큼 기업들의 비용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관세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 국가의 전략을 걱정합니다. 중국 국가의 핵심 전략은 “중국제조2025”입니다. 시진핑은 이 정책으로 중국 경제를 업그레이드하려 합니다. 북반구의 다국적기업들을 위한 미숙련 제조업은 이제 그만두고 기술적으로 더 발전한 고급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입니다. IT처럼 이미 확립된 부문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나 제가 이해하기 힘든 온갖 새로운 분야에서 말입니다.

이것은 미국 자본주의에 엄청난 위협입니다. 어떤 면에서 제조업 쇠퇴는 미국 자본주의에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15~20년 사이에 미국에서 등장한 가장 크고 번창하고 수익성이 높은 기업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FAANG, 즉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이었습니다. 즉, 고수익 IT 부문 기업이었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FAANG을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에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중국 기업들이 ‘불공정’ 행위를 하는 것처럼 대응합니다. 중국 기업들이 기술을 향상시키고 미국 자본주의의 힘을 감소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그 자체로 ‘불공정’하다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이 문제에서 관세 문제보다 더 광범한 지지를 받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거대한 중국 IT 기업 화웨이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지난주 일본에서 시진핑을 만나 협상 재개를 거론하며 화웨이에 건 제재를 일부 완화하겠다고 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은 이미 금지했다면서 말이죠. 그러자 트럼프는 국내에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미국 지배계급의 다수는 ‘안 돼, 안 돼, 화웨이는 위협이고 계속 강경하게 대응해야 해’ 하며 반발했습니다. 이는 화웨이가 미국 자본주의의 디지털 시스템에 너무 깊숙이 침투하면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기술을 둘러싼 더 큰 싸움을 위한 것입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경제적 지위를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만회하려고 해 왔다. 군사력을 과시하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출처 미 해군

세계화의 전성기인 1990년대와 그 직후를 돌이켜 보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논쟁했습니다. 하트와 네그리 같은 사람들은 세계화에 대한 지배적인 설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국》에서 하트와 네그리는 제국주의와 국민국가는 끝났으며 자본주의는 국가 수준을 뛰어넘었고 이제 자본주의의 정치적 형태는 모든 국경을 뛰어넘은 초국적 제국이라는 형태로만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은 ‘아니다, 제국주의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제국주의란 근본적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 간의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서로 얽히는 것입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 나라의 자본가 계급을 대표합니다. 그들은 시장과 투자 등을 위해 경제적으로 경쟁합니다. 그러나 영토, 군사적 지배력 등을 위해서도 경쟁합니다.

이제는 저뿐 아니라 이런 주장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옳았음이 입증됐다고 생각합니다. 하트와 네그리의 입장은 이제 설 자리가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조되는 지정학적 갈등이 이를 보여 줍니다.

두 나라는 군사적으로 갈등합니다. 중국은 민간 산업뿐 아니라 군사력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항공모함을 침몰시키는 미사일을 엄청나게 개발하고 있습니다. 항공모함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어디입니까? 미국입니다. 그래서 영국 국방장관에서 경질된 다음 극우 보수당 정치인 보리스 존슨의 당대표 선거 운동을 하는 개빈 윌리엄슨이 어리석었던 것입니다. 윌리엄슨은 중국 연안에 새 항공모함을 여러 척 보내어 영국이 어디로든 [군사력을 투사하러] 갈 수 있음을 보여 주자고 했습니다. 그 제안이 승인됐다면 영국 항공모함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꼴이었을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고전적인 지정학적 갈등을 벌이긴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주된 전장은 아닙니다. 현재 주된 전장은 “경제지리적” 갈등, 즉 무역 갈등이고 아까 언급했듯이 특히 기술을 둘러싼 갈등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장기적으로 패권을 유지하는 데에 심대한 구조적 모순이 존재함을 보여 줍니다.

세계화의 전망

그러면 답하기로 했지만 아직 답하지 않은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세계화는 끝났는가? 짧게 답하면 “아니오”입니다. 실제로 자본주의는 이미 한 세기도 더 전에 국경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생산과 금융 수준에서 자본이 맺은 초국적 상호의존 관계는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지 않고는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습니다. 사실 첫 번째 세계화, 즉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사이 영국 패권 하에서 진행된 세계화가 후퇴했을 때도 경제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손실이 초래됐습니다. 오늘날 그 피해는 훨씬 막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 블록이 더 공고해질 가능성은 크다고 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블록, 중국을 중심으로 한 블록이 나타날 것입니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손발을 맞춘다면(그것이 가능한지는 언제나 흥미로운 물음입니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블록도 나타날 수 있겠죠.

가장 똑똑한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 중 하나인 존 플렌더는 몇 주 전 기사에서, 지역 블록이 형성되면 가장 취약해지는 곳은 이른바 신흥국들일 것이라고 썼습니다.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남반구의 경제 대국들이 그런 사례일 것입니다. 이 나라들은 어느 블록에 속할지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두 신흥국인 아르헨티나와 터키는 최근 경제적으로 심각한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영국에게 당혹스러운 전망일 수 있습니다. 영국은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유럽연합을 떠나 유럽연합 블록에 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론회 당시 유력한 총리 후보였던] 보리스 존슨의 전략은 분명 영국 자본주의가 미국과 친하게 지내도록 하는 것이지만, 저는 온갖 이유로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영국은 꽤나 발전한 나라로 20세기를 시작했다가 줄곧 쇠락한 아르헨티나와 같은 길을 갈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세계 자본주의의 지역화가 심해진다는 것은 꽤 설득력 있는 전망입니다.

좌파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인 민족주의의 성장에 굴복하면 좌파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투표에서 [탈퇴냐 잔류냐] 어디를 찍었느냐가 아니라 서슬 퍼렇게 인종차별적이고 최근 힘을 얻고 있는 영국 민족주의와 선을 긋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유보 조항을 달더라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옹호해야만 민족주의의 성장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진정한 모습은 최근 유럽연합 내 인사 개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은 최고 직위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막 합의했는데, 늘상 유럽연합을 지배해 온 기존 신자유주의 패거리가 영국이 맡던 자리를 나눠 가졌고, 프랑스가 독일보다 약간 득을 봤습니다. 물론 결국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독일의 몫이 될 것이지만 말입니다.

유럽연합에서 가장 강력한 직책은 유럽중앙은행 총재입니다. 국제 금융 체계에서 유로화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정치인인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페미니즘을 가장한 헛소리로 치장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맨얼굴을 보고 싶다면 라가르드를 보시면 됩니다. 라가르드가 바로 그 얼굴입니다. 라가르드는 처음에 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유로존 위기 때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지냈습니다. 그리스 같은 나라를 박살 낸 삼두마차, 즉 유럽연합·IMF·유럽중앙은행 중 두 곳에 몸담았던 인물입니다. 이제 라가르드는 세 번째 마차를 탈 것입니다.

이것이 위기에 대한 유럽연합의 대응입니다. 유럽연합은 이 얼굴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민족주의에 반대한다고 해서] 이들과 엮일 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화의 위기에 맞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는 자본주의적 국제주의와 다른 것입니다. 얼핏 보기에 민족주의와 국가 간 장벽을 거부하는 가짜 사해동포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면서도, 위기의 후유증을 배경으로 성장해 이를 위협하고 있는 민족주의 또한 거부해야 합니다. 억압받고 착취받는 세상 모든 자들의 국제주의를 부활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이주민과 난민을 방어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어제 개막식 연단에는 [지중해에서 수많은] 이민자를 구조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스페인 소방관이 올라왔습니다. 그 분은 오늘날 국제주의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상징입니다. 이런 종류의 국제주의는 피억압자·피착취자들이 국경을 넘어서서 단결할 가능성을 열 것이고, 특히 북반구와 남반구의 분단을 깰 것입니다. 이 분단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리적 분단이며 여러 면에서 계급의 분단을 반영합니다.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혁명은 세계화가 지속해 온 부국과 빈국의 분단을 일소해야 할 것입니다.


토론 정리

미국과 중국에 관한 질문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 미·중 갈등이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시작됐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바마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이라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제가 기억하기로 이것은 군사력의 60퍼센트를 태평양으로 이전해서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바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라는 아시아·태평양 무역 협정을 추진해서 중국을 고립시키고 견제하려 했습니다. 중국은 그 협정에서 제외됐습니다. 중국 없는 “환태평양 동반자 관계”가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바마는 TPP에 가입하면 우리가 규칙을 만들고 중국은 거기에 따라야 할 것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습니다. 트럼프는 이 협정을 날려 버렸는데 제 생각에 이는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아무튼 오바마는 중국이 미국 패권에 제기하는 위협에 이미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질문은 미국이 중동에 매인 채 중국에 집중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중동에 신경을 쏟을수록 중국에 집중하기는 훨씬 어렵습니다. 그것이 중동에서 ‘중심축을 이동’하는 핵심 이유입니다. 사실 이 점에서 오바마와 트럼프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둘 다 중동에서 전쟁할 열의는 없습니다. 둘 모두 미국이 중동이라는 수렁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몇 주 전 트럼프가 네오콘 고문들을 무시하고 이란과의 대결을 더 밀어붙이지 않았던 것을 보십시오. 여기에는 시리아에 깊숙이 개입하기를 거부한 오바마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중동에 남아야 합니다. 중동에 걸린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태에 휘말리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두 정권이 시리아에 개입한 것이 그런 사례입니다.

이것은 미국이 세계적 제국주의 강대국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입니다. 영국도 20세기 전반에 그런 문제를 겪었습니다. 모든 곳에서 우두머리라면 모든 곳에 개입해야 하고 그러면 진정한 위협에 집중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어이쿠, 어렵구먼!”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럼 세계화에 대한 더 큰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운송이 가치를 더하는 것은 맞습니다. 한 분이 말씀하셨듯이 마르크스가 《자본론》 2권에서 이를 지적합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자신이 생산하는 상품 한 단위가 표현하는 가치를 줄이는 데에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저렴한 상품은 더 적은 가치를 표현하고 경쟁에 유리합니다. 온갖 공급 사슬과 적시 생산 체계에 관해 말하자면, 한 분이 재규어랜드로버 사의 변화와 생산 공정 단계에 따라 차들이 여러 번 해협을 왔다 갔다 한다는 흥미로운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이 모든 것은 차 한 대당 비용, 즉 가치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노동가치론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노동가치론에 대해 열을 올리며 논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집착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작동과 수익성이 노동자에게 의존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체제는 노동자를 착취하지만,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의존합니다. 조지프 추나라 동지가 비버리 실버의 책 《노동의 힘》을 언급했는데, 이 책은 훌륭한 책입니다. 장기적인 역사적 안목도 훌륭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의 재편이 노동자들을 더 강력하게 하면서 자본주의는 더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노동자의 힘을 약하게 했다는 주장은 너무 단순합니다. 국제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배치된 노동자들은 힘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주관적 요소일 때가 많습니다. 특히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이런 이점을 활용하기보다는 노동자의 이익과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의 이익을 동일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물류 노동자들의 사례가 토론에서 나왔습니다. 이탈리아 물류 노동자들도 놀라운 일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지중해에 있다는 점 때문에 공급 사슬에서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많은 수가 사하라 이남이나 북부 아프리카 출신 이주 노동자인 이들은 때때로 자기 나라의 혁명적 정치 전통에 영향을 받으며, 조직하고, 파업하고, 공급 사슬을 멈추고, 고용주에게서 양보를 받아 내는 등 성과를 냈습니다.

중국 지배계급이 기술 향상을 꾀하는 한 가지 이유는 중국 노동자들이 점차 비싸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간 중국 노동자들은 그들의 힘을 발휘했습니다. 파업이 벌어졌고 폭스콘 공장 노동자들의 저항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중국 제조업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이제 그리스 같은 나라의 수준에 근접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 노동자들이 내핍을 강요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세계화는 그저 노동자들이 짓밟히고 패배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한 분이 묘사한 변화들 때문에 기존 조직 형태가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자본의 국제적 통합에 직면해 노동계급이 꼭 내리막길만 걷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이유를 제가 계속해서 얘기했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진정한 대안은 국제주의다. 이주민·난민을 방어하는 투쟁도 그런 노력의 중요한 일부다. 8월 18일 노동허가제 쟁취 이주노동자 대회 ⓒ조승진

다음번에 위기가 벌어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적절한 질문입니다. 세계경제가 둔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계속 쌓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나고, 금리 하락이나 어마어마하게 치솟는 채권 가격으로도 나타납니다(이는 시장이 경기 둔화로 금리가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값싼 자금, 양적 완화라는 마약에 너무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이나 라가르드 같은 자들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막강한 권력을 쥐어 줘야 한다니 안타까운 일이죠. 자본주의는 중앙은행이 수행하는 일종의 금융 체계상의 조작에 필사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체제가 점점 취약해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세계 경기가 또 후퇴하면 그 수혜자는 누구일까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더군다나 신자유주의 엘리트는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더 쥐어짜는 데 성공한다 해도 정치적인 대가를 치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치적 수혜자는 누구일까요? 계속해서 극우가 수혜를 볼까요? 아니면 진정한 사회주의적 좌파가 신자유주의도 극우도 아닌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극우에게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라 할 만한 경제 정책이 없습니다. 유럽의 극우, 예컨대 유럽에서 가장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탈리아 극우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맞서 긴축을 거부하자고 떠들어 댑니다. 그러나 실천에서 그들은 굴복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을 제시할 사회주의 좌파가 부상할 수 있을까요? 궁극적으로 이런 물음은 결코 공평무사한 태도로 답할 수 있는 학문적 물음이 아닙니다. 핵심적으로 그 대답의 일부는 우리의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 위대한 아일랜드 혁명가 제임스 코널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고의 예언자는 바로 자신이 예언한 미래를 이룩하기 위해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