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는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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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신자유주의의 관에 마지막 대못을 박았는가?
세계 곳곳의 정부들은 자국 경제를 떠받치려고 수십억 달러를 썼고, 록다운 조처와 공중 보건 대응을 조직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지출된 돈은 엄청나다.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영국에서는 고용 유지 지원금에 대한 보도가 요란했지만, 민간 기업들에 대한 지원금과 비교하면 쥐꼬리만 한 금액이다. 영국 정부는 재앙적이었던 코로나 검사와 확진자 동선 파악 시스템 운영비로 서코그룹에 370억 파운드
이렇듯 코로나19 팬데믹의 한 가지 특징은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막대한 지출을 들먹인다는 것이다.
체제를 긴급 구제하기?
하지만 정부의 정책들은 서로 모순된다.
자유시장
그 결과는 3중으로 나타났다. 막대한 공적 자금이 민간 기업으로 흘러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었으며, 국민 국가들은 더 강력한 권력으로 국민 전체를 억누르게 됐다.
이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가 표방하는 낮은 세율 및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듯이 보일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각국 정부들이 1980년대에 채택했는데,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사상과 그들이 주도한
당시에 신자유주의의 핵심 사상은, 자원을 분배하는 최선의 수단은 시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려면 자유무역, 국가보조금 폐지, 공공자산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쉬운
좌파 경제학자 그레이스 블레이클리는 지난 50년 사이에
신자유주의, “너무 과도”했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장들은
이렇듯 체제에 도박이 만연해 있었고 이는 2008년 경제 위기 때 가시화됐다. 2008년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에 커다란 타격을 입힌 일련의 주요 사건 중 최초였다.
2008년 금융 붕괴 때문에 은행이 부분적으로 국유화됐다. 이익은 사유화됐지만, 손실은 사회화됐다. 정부들은

2016년 신자유주의는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두 사건을 보며 IMF 소속 연구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이번 코로나19 위기 때는 각국 중앙은행이 2008년 위기 때보다 훨씬 더 막대한 규모로 개입했다. 이런 극적인 태도 변화가 잘 드러난 사례로, 소위 좌파로 분류되는 멕시코 정부한테 재정 적자폭이 충분히 크지 않다고 IMF가 꾸짖은 것이다!
하지만 각국 정부의 대규모 경제 개입은 신자유주의 교리에 따라 부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보도록 이뤄졌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새로운 억만장자 500명이 탄생했다.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가 낳은 결과 하나는 지난 10년 동안 금융 위기가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경제 질서에 맞선 저항과 우익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불평등과 빈곤에 맞선 고무적인 반란이 칠레에서 레바논까지, 다시 미국까지 휩쓰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급진 우파 세력이 두드러지게 부상하는 것도 목격했는데, 유럽의 극우부터, 트럼프 뒤에 모인 위험한 집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런 정치 지형에서 중국의 부상은 하나의 상수였다. 중국은 국가의 강력한 주도에 따라 경제가 크게 성장했다. 바이든은 자신의 1조 2000억 달러
드디어 사라지는 신자유주의?
몇몇 논평가들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보며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라고 봤다. 세드릭 뒤랑은 최근 《뉴 레프트 리뷰》에 쓴 글에서, 2021년은
신자유주의는 확실히 정당성을 잃었다. 시장만으로 기후 위기를 해결하거나 국가 간 또는 일국에서 두드러지게 심각해지는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논평가는 거의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은, 뒤랑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칼같은 반전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가 절정일 때조차 국민 국가들은 항상 자본의 이익을 위해 통치했다. 성향을 막론하고 각국 정부들은 체제를 안정시키고 자본주의가 번성할 여건을 최대한 보장하려고 해 왔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에 내재한 모순이다. 자유시장에서 자본이 번성할 최상의 조건을 보장하려면 때때로 국가는 에너지
이런 수치들은 국가와 자본 사이의 관계가 구조적 상호의존임을 보여 준다. 국가는 세금을 거두려면 수익성 있는 기업들이 있어야 한다. 시장은 국민 국가가 사회간접자본을 조성하고 위기를 해결해 주고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억누를 때만 작동할 수 있다. 정부가 대학 등지에서의 기술 개발에 자금을 지원하면 이후 민간 기업이 이를 가져다 쓰기도 한다.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대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기술 개발에 투자한 덕분이라고 지적한다. 애플과 구글 모두 미국 정부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대기 오염은 인명 피해가 가장 큰 환경 문제로 매년 약 4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하지만 한 최신 보고서를 보면 국제 원조의 1퍼센트만이 대기 오염을 줄이는 데 사용되는 반면, 화석연료 개발 프로젝트에는 20퍼센트나 지출된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보건에서 손을 떼고
정치와 경제
신자유주의가 일차적으로 정치 이데올로기인지 아니면 경제 전략인지를 두고 저술가
마거릿 대처가 사회의 종말, 즉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국가의 지원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집단으로서의 사회가 사라졌다고 선언한 것은 유명하다. 개인들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고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했다. 부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낙수 효과는 없었지만, 신자유주의 사상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오늘날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노력으로 난관을 극복하라고 가르친다.
신자유주의에 관해 쓴 글에서 종종
그러나
투자 기업
신자유주의는 경제를
2007년, 당시 미국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어느 대통령 후보가 당선하는 것이 경제에 가장 좋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린스펀은 이렇게 답했다.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경제와 정치는 서로 별개의 영역이며 국가의 구실은 시장이 효율적으로 번영할 여건을 만드는 것으로 한정돼야 한다. 이런 논리는 노동자들에게는 사용자들에 영향을 미칠 힘이 없고, 시장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생각을 키웠다. 물론 시장이 국가의 정치적 개입과 지원을 필요로 하는 때는 이런 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이윤율을 회복하지 못했다. 저성장과 거듭되는 금융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부들이 국가 주도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를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는 갈등
신자유주의 시대는 사멸하고 있지 않다. 코로나19 위기가 심대했기 때문에, 자본은 이윤을 보호할 조처를 국가가 취하고 재정을 지출하도록 막대한 압력을 가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실천과 단절하는 징후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가 시장의 수호자 구실을 해 온 것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다. 부자들은 40년 간의 시장 지배가 순순히 무너지도록 할 생각이 없다.

블레이클리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권위주의에는 한계가 있다. 자유를 억압하면 종종 저항을 부른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수단에서 칠레까지, 아이티에서 이라크까지 휩쓴 일련의 세계적 반란의 특징은, 억압이 커진 만큼 저항도 커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대기업과 기관들은 사회운동을 반대하기보다는 포섭하려 한다. 소프트웨어 대기업
우리가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위험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은 개혁주의
코로나19 위기는 시장을 저지할 수도, 시장에 맞설 수도 없다는 신화를 산산조각냈다. 정치가 귀환했다.
이제 선택은 정부가 한다. 정부가 은행을 구제하고 민간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정부가 그 돈을 보건과 교육에, 팬데믹 동안 갑자기 주목받은 필수 노동자들을 위해 쓰도록 만들 수 있다.
우리의 적은 신자유주의만이 아니다. 주적은 자본주의 자체이고, 국가가 신자유주의적이든 권위주의적이든 감시만능주의든 케인스주의적이든 마찬가지다. 국가의 경제 개입 자체가 진보는 아니다.
좌파의 전략은 시민적 자유를 옹호하고, 기후 변화에 맞서며, 체제의 억압과 불평등에 맞서 되도록 광범한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운동은 노동계급 대중의 투쟁성을 높이고, 연대와 전투적 노동계급 투쟁의 새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인간과 이윤을 좀 더 공정하게 중재하도록 국가를 온화하게 만들려는 일부 좌파 프로젝트의 협소한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표정만 좀 더 친근할 뿐인 또 다른 자본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세계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