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회장 이동걸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조정 사업장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하게 요구했다. 부도 위기에 처한 쌍용자동차, 대한항공과의 인수합병이 추진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노조들을 향해 “기업 회생에 적극 동참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특히 쌍용차 노조에게는 회사가 흑자를 낼 때까지 일체의 쟁의를 하지 않고, 단체협약 유효 기간을 연장(1년에서 3년으로)하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통첩했다. 헌법에 보장된 쟁의권을 포기하고 개악된 노조법(단체협약 기간 연장)을 현장에 적용하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정부 지원은 “단 1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쌍용차의 무상급 노조는 10년 동안 쟁의를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경제 공황이 깊어지면서 올해 구조조정 문제가 더 심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관장하는 주무 기관(국책은행)인 산업은행장이 작심하고 고약한 신년 메시지를 발표한 것이다. 이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잠자코 추가적인 희생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이자, 더 나아가 앞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어떤 성격일지 예고하는 것이다. 일자리 보호에 대한 정부 책임은 관심사도 아닌 듯하다.
이동걸은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호에 “국민의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고 했다. 기업주 살리기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 노동자들은 마치 국민의 일부가 아닌 듯이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노동자) 고통분담은 필수 불가결하다”고 강조한다. 노동자들을 희생시켜 기업주를 살리고 경제 회복을 노려보겠다는 것이다.
이동걸은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요구와 저항도 비난했다. “인력 감축, 임금 삭감이 필요할 수 있다. 고용 안정으로 못 박아 놓으면 구조조정은 어렵다,” “구조조정 기업에서 파업을 하고 생산 차질을 빚는 자해 행위를 많이 해 왔다. 정부와 산업은행을 협박해 뭔가 해 보자는 시도는 앞으로 용납될 수 없다.”
이런 말들이 가리키는 바는 첫째, 문재인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고용(노동) 친화적”이기는커녕 ‘경제 논리’를 최우선 삼아 노동자들을 고통에 몰아넣을 것임을 보여 준다. 임금 삭감 등의 양보 압박도 노동자들의 거듭된 생활고와 조건 악화만 낳을 뿐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둘째, 경제 위기 시기에 구조조정은 단지 특정 단위 사업장 노사만의 문제가 아님도 보여 준다. 정부(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는 구조조정의 내용, 노동자 조건 등에 관한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고 관장하며 기업주들의 이해관계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강제적 조처들도 동원될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과 고통 전가에 맞서려면 문재인 정부에 정면 도전하며 항의를 확대해야 한다. 사용자들뿐 아니라 정부에게도 일자리 보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부도·파산 기업의 경우 국가가 그 기업을 인수·운영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