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부도·매각 위기:
일자리 보호를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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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가 2017년 1분기부터 최근까지 1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7월 27일 쌍용차가 공시한 내용을 보면, 올해 2분기 영업손실은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7월에 갚았어야 할 산업은행 채권 900억 원은 만기 연장으로 간신히 넘겼지만, 앞으로 매달 돌아오는 어음이 또 줄이어 있다. 산업은행은 8월에 쌍용차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일일 점검에 들어갔다.
쌍용차의 회생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삼정회계법인은 지난 5월 쌍용차의 “계속기업으로서 존속”에 의문을 제기했다. 업계에서는 연말까지 기업의 존폐 여부가 결판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쌍용차의 소유주인 마힌드라가 새로운 투자자 찾기에 나섰지만, 이 또한 전혀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힌드라는 투자자가 원하면 “지분을 넘길 수 있다”며 사실상 매각 추진 의사를 밝히고, 중국(지리자동차, 비야디, 체리자동차), 베트남(빈페스트) 등의 자동차 업체들을 접촉하고 있다.
그런데 주요 경제지들을 보면, 이 기업들은 대체로 쌍용차에 대한 투자·인수에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경제와 자동차산업이 침체한 상황에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신규 자금 지원에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장 이동걸은 쌍용차 사측의 거듭된 지원 요청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무조건 돈을 넣기는 굉장히 어렵다. 나중에 누가 책임질 건가.”
정부에 손 내밀지 말고 시장에서 답을 구하라는 얘기인데, 정부가 사실상 쌍용차 매각 추진 방향으로 기울어 있음을 보여 준다.
노동자에게 떠넘겨지는 고통
쌍용차 노동자들은 또다시 불어닥친 위기 앞에서 2009년 대량해고의 비극이 재현될 수 있다는 불안에 처했다. 사용자든, 정부든 누구도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이번에도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게 하려 한다.
쌍용차가 1998년 대우그룹에 매각될 때도, 1999년 대우그룹 부도로 워크아웃에 돌입했을 때도, 2004년 다시 상하이차에 매각될 때도, 2009년 법정관리에 돌입하고 또다시 2011년 마힌드라에 매각될 때도 그랬다.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임금이 깎였다. 극심한 생활고와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다 일부는 가정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고, 일부는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택했다.
이것은 세 가지를 보여 준다. 첫째, 쌍용차를 거쳐간 자본은 물론, 역대 정부들도 애먼 노동자에게 위기의 책임을 떠넘겼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의 법정관리인(혹은 주채권자)으로서 대량해고와 임금 삭감을 밀어붙이고 매각을 추진한 당사자였다.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수천 명의 일자리 위기를 나 몰라라 하면서, 되레 노동자들에게 더한층의 희생(임금 삭감 등 회사의 “자구 노력” 협조)을 주문하고 있다.
둘째, 노동자들에게 강요된 ‘양보와 희생’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했다.
사용자 측은 위기 때마다 이번만 참고 희생하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고통은 노동자들이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위기가 닥쳤다. 경제 위기가 반복되고, 점점 더 길어지고 깊어지는 동안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고통의 시간과 무게도 커졌다.
셋째,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진정으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노동자들의 필요를 종속시키지 말아야 한다.
국가가 일자리를 책임져야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반대하면, 기업주와 정부, 언론들은 어김없이 비난을 쏟아 낸다. ‘다 같이 공멸하자는 것이냐’면서 말이다.
이런 압력에 굴복해 2009년에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가 ‘노동자도 회사 살리기에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무급휴직,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을 일부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지금 쌍용차 노조(상급단체가 없는) 지도부가 추구하는 방향도 이와 같다. 일자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임금·복지의 대폭 삭감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이런 양보는 결코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지난 20여 년간 경험한 것은 고통의 반복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는가? 회사가 어려워도 일자리를 지킬 방법이 있는가?
회사가 파산하거나 매각될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은 정부에게 국유화를 요구하며 싸울 수 있다. 기업주가 회사를 운영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쌍용차를 소유·운영하는 영구 국유화만이 일자리를 지킬 유일한 방법이다.
국가 소유가 더 진보이거나 정부가 노동친화적이어서 국유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자리 보호라는 노동자들의 즉각적인 필요를 위한 방안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우선, 국가만이 그만한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가 아니라면, 쌍용차 같은 기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고용을 보장할 주체는 없다. 선뜻 쌍용차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자본도 없거니와, 그렇게 나선다 해도 사기업주나 투기자본은 노동자들의 일자리에는 관심이 없다.
정부는 지금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살리려고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돈을 기업주들이 아니라, 경제 위기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을 받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그런 정치적 책임 제기에 더 취약하다. 정부는 경제 위기에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제기하면서 투쟁하는 것은 쌍용차 일자리 문제를 국가 차원의 정치 이슈로 부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고용을 지키는 ‘바람직한’ 매각?
그런데 노동운동 내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국유화 요구가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망해 가는 기업을 국유화한다고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 정부의 재정이 화수분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7월 열린 쌍용차범대위 내부 토론회에서도 일부가 비슷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정부가 쌍용차 매각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국유화 요구는 현실성이 없고, 차라리 매각 과정에 노동조합이 개입해 고용 승계나 ‘먹튀’ 방치책을 요구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시장 경쟁력이나 정부의 부담을 고려하자는 ‘현실적’ 타협론을 피해야 노동자가 산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가 장기침체인 상황에서는 그런 시장 논리와 노동자들의 필요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조화를 꾀하다 보면 오히려 노동자 희생을 수용하는 쪽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그 점에서 노조가 매각 과정에 개입하는 것도 대안이 되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고용을 지키는 ‘바람직한 매각’을 주장하지만, 경제 위기 하에서 추진되는 매각은 필수적으로 노동자 희생을 동반한다. 시장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비용 절감, 효율성 제고가 매각 성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경험만 보더라도, 매각은 대대적인 인력 감축, 임금 삭감, 노동조건 악화 등을 낳았다. 대량해고가 벌어진 법정관리 기간도 매각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을 뿐이다.
상하이차, 마힌드라 등 해외 자본이 쌍용차를 인수한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매각이라는 과정 자체가 투자자가 돈벌이를 할 수 있도록 구조조정하는 것을 전제한다.
노조가 매각 과정에 참여하더라도, 어떻게든 새로운 자본을 유치하려면 시장 경쟁력이라는 협상의 최우선 논리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양보 압박만 받기 십상일 것이다.
투쟁의 비전
일부 사람들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오랜 좌절감에 시달려 왔고 금속노조가 소수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유화 같은 요구를 내걸기 어려우니 못마땅해도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물론, 정부가 국유화를 추진하도록 만들려면 노동자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투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보호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이 2009년의 패배를 회복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곳의 활동가들이 국유화를 요구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일자리 보호를 위한 대안이 있음을 보여 주면서 투쟁과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 희망을 일궈 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와 매각 등에 직면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구조조정 문제를 단위 사업장 차원의 대응으로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부도·파산 기업 노동자의 일자리를 정부가 책임지라고 요구하면서 노동운동 전체 차원에서 대정부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래야 실의에 빠진 노동자들에게 경제 침체기에 기업이 망해도 싸워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제안한
노조의 경영 참가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강동훈
노동조합이 부도 기업을 인수해 자주관리 하거나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대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금이야말로 노동자가 (회사를) 살릴 때라고 본다”며 경영 참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비정규직 고용문제까지 보장한다는 것을 전제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대신 그 상당분을 출자하거나 퇴직금을 시급한 개발비에 투입해 비전을 함께 만들고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지난 7월에 열린 쌍용차범대위 내부 토론회에서도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대안 모델로 제시했다.
물론, 노동자들은 기업에 일부 자금을 출자하거나 주식을 배당 받는 방식으로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 협동조합 형태로 기업을 공동 소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조조정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기업을 협동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려고 애써도, 결국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기업의 운영에 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료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경쟁 논리 속에 결국 노조의 의사 결정권이 박탈당하거나 기업이 파산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경영 참여를 보장한다는 독일에서도 ‘공동결정제도’는 노동조건의 대폭 악화를 막지 못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대기업 감독이사회에 노사 양측이 절반씩 참여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지만, 사측이 추천하는 의장이 두 표를 행사함으로써 주요 결정을 거부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특히 독일의 기업주들은 공동결정제도가 “합의를 통한 구조조정, 고양된 기업 내 평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노조가 스스로 조건 악화를 받아들이고 계급 투쟁을 약화시키는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는 것이다. 경영 참가를 통해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국제노동기구(ILO)가 설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의사 결정 참여”를 통해 “자본과 위정자들”을 제어하겠다는 경영 참여 제안은 현실에서 정반대의 효과를 낳는다. 회사의 경영 책임을 노동자가 함께 짊어짐으로써 일자리·노동조건 방어와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다.
노동자가 경영 책임을 나눠 맡는 게 아니라 시장 논리에 정면 도전하며 투쟁을 심화시켜야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삶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