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우익 정부가 성소수자를 경제 위기와 방역 실패의 희생양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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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부터 헝가리에서 청소년이 대상인 학교 교육 자료나 TV 프로그램 등에서 동성애와 성전환 묘사가 금지됐다. 우익 포퓰리스트 성향의 집권당인 피데츠와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이 조처가 ‘아동 보호’와 ‘소아성애 퇴치’를 위한 것이라며 동성애·트랜스젠더 혐오를 부추긴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문제를 제기하자, 오르반은 이 조처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보여 주겠다며 국민투표 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공격은 최신의 사례일 뿐이다. 헝가리 우익 집권당은 최근 몇 년 새 성소수자 공격을 강화했다. 지난해에는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헌법에서 가족의 정의를 “엄마는 여성, 아빠는 남성”이라고 명시하도록 개정해서 동성 커플의 양육권을 박탈했다. 올해 초에는 ‘전통적 성 역할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을 포함한 도서에는 별도의 고지사항을 표기하도록 명령했다.
2012년만 해도 헝가리는 유럽 49개국 중 성소수자 권리가 제도적으로 잘 보장되는 나라 순위에서 9위였다. 헝가리는 2004년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이 통과됐고, 2009년에는 동성 결합이 인정됐다. 동성 커플의 아이 입양도 가능했다.
그러나 우익 정부가 들어서며 이 순위는 꾸준히 떨어져서 지난해 28위까지 내려갔다. 이는 성소수자 권리 진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역전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역전
2008년 헝가리 사회당 정부는 혹독한 긴축 정책을 펼치며 대중의 불만을 샀다. 피데츠와 오르반은 이런 불만을 유대인 금융자본가인 조지 소로스 같은 극소수 특권층, 난민, 성소수자 탓으로 돌리며 2010년 집권했다.
2015년 유럽에 시리아 난민 위기가 불거졌을 때, 오르반은 국경에 레이저 철조망을 설치하고 난민 거부 국민투표까지 실시했다(최종 투표율 미달로 실패). 2018년 총선에서 광적인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 캠페인을 벌여 연임에 성공했다.
피데츠와 오르반은 내년 봄 선거를 앞두고 주요 타깃을 성소수자로 옮겨 왔다. 오르반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전체 인구가 997만 명인 나라에서 코로나19 사망자만 3만 명이 넘는데, 이번에도 대중의 불만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 실정을 감추고 자신들을 ‘아동과 가족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한편, 유럽연합은 자신들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기반을 손상시키는 헝가리 우익 포퓰리즘 정부를 비판해 왔는데, 반성소수자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유럽연합 주요 국가들에서도 성소수자들의 처지는 악화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동성애 혐오범죄가 증가했다. 무엇보다 독일 등 유럽연합 주요 국가들은 헝가리에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서는 한통속이다(성소수자 중 다수는 노동계급이다).
오르반의 반성소수자 정책에 맞서 헝가리인들의 저항이 크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24일 부다페스트 퍼레이드에는 역대 최대로 1만 명이 참가했다(헝가리 전체 인구 977만 명). 주최 측은 이번 행사가 “단지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적 투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반의 최근 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있다고 보도했다. 오르반이 예고한 성소수자 차별적 국민투표를 앞두고 시위가 계속될 수 있다.
오르반에 반대하는 다른 저항도 있다. 며칠 전에는 간호사 등 보건 노동자 수천 명이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런 저항들이 성장할 때 성소수자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제 불황의 고통과 불만을 진짜 책임자들에게 제대로 물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