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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왜 이리 억압적일까?

이 기사를 읽기 전에 “드라마 〈D.P.〉: 폭력과 학대를 배양하는 군대”를 읽으시오.

소수의 지배계급이 나머지 다수를 지배하려면 국가의 무력이 필요하다. 다른 지배계급의 국가들과 경쟁하고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그 국가의 무력이 바로 군대다.

계급사회에서 군대는 지배계급의 지배와 이익을 위해 국내적·국제적으로 폭력을 과시하고 행사해야 한다. 따라서 군대 조직의 내부 역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질서로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항상 긴장과 모순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사회적 존재들이다.

군대의 야만성에 직면한 사람들이 인간됨을 회복하는 길은 투쟁과 반란이다. 역사에는 왕들과 영웅들의 이야기 말고도 이런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다.

제1차세계대전은 아예 아래로부터의 혁명들로 중단됐다. 1917년 러시아의 병사들은 전쟁을 거부하고 혁명을 일으켰다. 이탈리아의 병사들도 반란을 일으켰고 영국군도 폭동을 일으켰다. 다음해 독일의 병사들은 혁명을 일으켜서 전쟁을 끝냈다.

베트남 전쟁도 미군 사병들의 항명이 제국주의 군대의 패배를 재촉했다. 1971년에만 15만 명의 미군이 탈영했다. 병영 내에서 50여 가지 지하 신문들이 읽혔고 전투나 폭격을 거부하는 일들이 부지기수였다.

상명하복 노동계급과 서민 자식들의 손에 피를 묻혀 지배계급을 지키는 군대 ⓒ출처 국방부

장기판의 졸

지배계급은 흔히 자기 손을 직접 더럽히기를 꺼려 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상 그들의 군대와 전쟁에는 노동계급과 서민의 자식들이 동원된다. 이 점에서는 징병제든 모병제든 크게 다르지 않다.

군대와 전쟁의 역사는 다수인 피지배 계급의 멀쩡한 젊은이들을 어떻게 명령에 복종하는 살인자들로 만들지 고민하고 애쓴 역사다.

전쟁 무기 개발의 역사도 다른 군복을 입은 사병들과 민간인들을 죽이는 데서 사병들이 느끼는 거부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애써 온 역사다. 모니터 화면, 열영상야간투시경, 망원조준경 등 상대에 대한 인간성을 부인하게 해 주는 여러 기계장치들은 일종의 완충장치 구실을 해서 살인에 무뎌지게 해 준다.

대다수 인간은 다른 인간을 무참히 죽이는 데 강한 거부감이 있다. 그렇다고 예외적인 개인 몇몇만 데리고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사병들은 지배계급에게 적대적인 피지배계급의 일원이기도 하다. 무기를 쥐어줬더니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따라서 군대는 서열과 상명하복을 근간으로 하고 민주주의를 철저히 멀리해야만 한다.

역사상 많은 전장들에서 사병들은 적군보다 장교를 더 증오했다. 베트남전 후반부에는 사병들이 텐트 안에 던진 수류탄에 많은 미군 장교들이 비명횡사했다. 1970년에만 이런 사건들이 209건이나 보고됐다.

이런 군대가 유지되려면 지휘관과 사병 사이는 물론이고 사병들끼리도 일상적으로 서로 압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내의 적

부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계급 질서를 유지하려면 군대는 외적뿐만 아니라 국내의 적과도 싸워야 한다. 따라서 군대는 민중 항쟁과 노동자 파업들을 공격해 왔다.

예전에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일의 대부분을 군대가 직접 했지만, 대중의 반감 때문에 경찰을 만들어 분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이 위중하면 얼마든지 군대가 직접 나설 것이다. 최근 유럽의 ‘선진 국가’인 프랑스에서도 이런 위협이 있었고 한국에서도 박근혜 퇴진 시위 때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령과 쿠데타를 기획하고 검토했었다.

시인 김남주의 시 〈학살1〉이 표현한 대로 1980년 광주에서도 군대가 무차별 학살을 저질렀다.(밤 12시 나는 보았다 /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 밤 12시 나는 보았다 /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이런 사례들을 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올해에도 미얀마에서 군대가 무자비한 학살을 벌였다. 국제엠네스티에 따르면, 7월 이란에서도 군대가 물 부족 위기에 항의하는 청년들을 사살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렇게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파괴와 지배의 행동은 더 큰 괴로움을 안겨 준다. 트라우마의 요인이 인간에 의한 것일수록 손상은 더 심각하고 더 장기적이다.

요컨대 세계적으로 군사 독재의 만행과 군대의 학살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했다. 불시에 가족이 끌려가고 고문당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면 살아남은 자들 대부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진단명 자체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의 심리적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됐다.

병사들의 심리적 고통은 죽음과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 아니다. 적대적인 상황에 대한 거부감, 살인에 대한 거부감과 죄책감이 크다. 동료를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도 강렬하다. 흔히 병사는 죽여도 저주받고, 죽이지 않아도 저주받는다.

베트남 전쟁 참전 미군의 약 18~54퍼센트가 PTSD를 겪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미군은 30~40퍼센트로 추정된다. “날마다 22명의 참전 미군들이 자살한다.”(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작전명 서핑〉(27분)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참전 후 PTSD에 시달리는 미군들의 이야기를 잘 다루고 있다.)

지지와 대안

앞서 말한 모순과 긴장은 고정된 게 아니다.

사병들의 휴대폰 사용과 같은 작은 완화 조치조차 긴장의 한 축이 작용한 것이다. 수많은 자살, 타살, 의문사 그리고 이에 대한 우리 운동의 항의와 전진이 조금씩 이뤄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도 군대는 또 다른 윤 일병과 변희수 하사, 이 중사 같은 젊은 남녀, 청춘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모른다. 드러난 것도 다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 여기에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이것은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리고 군대의 학대와 학살과 야만을 끝장내고 싶다면 전쟁과 폭격과 대량살상의 체제인 자본주의를 끝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