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 제한’ 합헌 판결:
이주노동자 족쇄 풀지 않는 헌재
〈노동자 연대〉 구독
12월 23일 헌법재판소가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사유·횟수 제한에 대해 재판관 7:2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장 유남석을 비롯해 문재인이 직접 임명한 재판관 3명도 모두 합헌 의견을 냈다.
이는 이주노동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약해도 된다는 인종차별적인 결정이다. 2011년에 이어 두 번째 합헌 판결이다.
올해로 시행된 지 17년째인 고용허가제는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관리·통제하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극도로 제약한다. 취업 가능 업종도 열악한 영세업체나 농축산업 등으로 제한한다. 또, 정주화를 막기 위해 연속 체류기간을 4년 10개월로 제한하고 가족 동반도 금지한다.
이 때문에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종속되고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린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임금체불과 산재도 빈발한다. 동사할 정도로 형편없는 기숙사를 제공받아도 거부할 수 없다. 폭언과 폭행, 성희롱과 성폭력을 당해도 사업장을 변경하기 어렵다.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해 자살한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인종차별
헌재는 이주노동자가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고 합헌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직이나 이직은 노동자가 사용자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고 노동조건 향상을 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다. 그런데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가뜩이나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최소한의 방어권도 무시하는 것이다.
또, 헌재는 고용허가제에서도 사업장 변경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므로 “입법재량의 범위를 벗어나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에서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하는지 입증할 책임은 이주노동자에게 있다. 한국의 법, 제도,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에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분노와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분노하고 규탄할 수밖에 없다. 출신 국가에 따라 노동자의 권리가 다를 수 없다. 한국인에 비해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3배에 이른다. [이번 판결로]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더 열악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편,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도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한이 과도하다면서도 그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을 억제하고 장기 근무를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두고 있으므로 외국인 근로자에게 직장 선택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더라도 … 잦은 사업장 변경의 우려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 등 고용허가제를 부분적으로 개선해서는 이주노동자의 실질적인 조건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고용허가제는 고쳐 쓸 수 없고, 폐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