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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핵보유국들의 공동성명:
“말로만 핵군축,” 행동은 정반대

전쟁을 방지하고 군비 경쟁을 완화하자는 강대국들의 합의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또는 그런 합의로 항구적 긴장 완화와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1월 3일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5개국이 핵전쟁과 군비 경쟁을 막자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모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은 강대국이다.

이 성명에서 5대 핵보유국들은 “핵전쟁 시 승자는 아무도 없고, 핵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핵군축과 비확산 등 NPT의 의무를 이행하고, 군사적 갈등을 피하고 군비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양자 및 다자 협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만해협,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갈등이 커지는 와중에 이번 공동성명이 나왔다. 이들의 갈등이 최악의 경우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었다.

이번 성명은 강대국 지배자들이 이런 상황을 의식한 산물로 보인다. 자신들도 전쟁 위험을 통제하려고 애쓰고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공동성명을 두고 국내 언론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은 주로 공동성명이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끼칠 영향에 관심을 보였다.

‘동맹국이 공격받을 때 미국이 핵무기로 보복해 준다’는 핵우산이 약화될까 걱정한 것이다.

우파들은 중국의 군사력 강화, 북한 핵무기의 등장에 대응해 핵우산을 핵심 고리로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야 안보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에 대한 부정적 반응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는 핵전쟁의 그림자 아래에 계속 살겠다는 미친 생각이다.

실효성

한편 〈경향신문〉, 〈민중의소리〉는 공동성명의 의의를 사는 사설을 냈다. “이번 공동성명이 … 긴장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경향신문〉), 몇몇 아쉬운 점은 있지만 “공동성명을 발판으로 더 공고하고 실효성 있는 국제 사회의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민중의소리〉)는 것이다.

5대 핵강국의 공동성명이 이렇게 기대를 걸 만한 약속일까? 이 성명에는 법적 구속력조차 없는데 말이다.

2017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평화 단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의 사무총장인 베아트리스 핀은 이렇게 지적했다.

“저들[5대 핵강국]은 성명서는 번지르르하게 쓰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핵군비 경쟁을 벌이고,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며, 핵무기를 현대화하고 핵전쟁 태세를 상시 갖추려고 어마어마한 돈을 쓴다.”

이번 공동성명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동안 … [핵무기는] 침략을 억제하며, 전쟁을 방지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이는 방어용이란 핑계로 핵공격 태세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강대국 간 합의는 평화 보장 못 한다 지난해 9월 미국 플로리다주 앞바다에서 미 해군이 핵주진 잠수함 와이오밍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한 모습 ⓒ출처 미 해군

게다가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써 서명 당사국들 사이에서 다른 얘기가 나온다.

중국은 전 세계 핵무기 중 9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감축해야 하고 자국은 핵무기 현대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중국은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고 있고, 지난해에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를 우회할 수 있는 극초음속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미국은 새로운 핵군축 협상에 미·러 외에 중국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중국의 핵·미사일 전력 증강을 견제하고 자국 핵전력의 우위를 유지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중국은 이에 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조만간 새로운 핵태세검토보고서를 완성하는데,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보고서에 포함할지를 두고 미국 정가에서 논란이 거듭돼 왔다. 미국은 5대 핵강국 중 유일하게 핵무기 선제 공격 옵션을 유지하는 국가다.

그러나 현재 분위기는 “핵무기 선제 불사용”이 포함되지 않는 쪽으로 기운 듯하다. 다른 제국주의 경쟁자들을 의식해서다.

지난해 10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한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적대적 관계가 커지고, 이 두 전략적 경쟁자들이 미국의 동맹국들과 여타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에 가하는 위협이 점증하[면서] … 오늘날 “핵 선제 불사용”이 바이든의 핵태세검토보고서에 채택될 확률은 크게 떨어졌다.”

한편 이런 논란과 무관하게, 바이든 정부는 전임 오바마·트럼프 정부의 핵무기 전력 강화 계획을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제국주의적 경쟁

강대국들의 핵무기 경쟁은 정말 미친 짓이다. 인류에게 훨씬 유익한 곳에 쓰여야 할 자원과 기술이 인류 전체와 문명을 파괴할 수단을 경쟁적으로 축적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는 분명 비합리적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적 발전과 경쟁의 논리적 귀결이다.

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은 자원과 이윤을 최대한 얻으려고 무한 경쟁을 벌인다. 이런 축적 경쟁의 압력 때문에 자본가들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고, 기후 위기 같은 장기적인 위험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자국 기업들과 연계를 맺은 국가들은 자국의 힘을 입증하려고 다른 국가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더 강력한 무기를 더 많이 축적하려 한다.

따라서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들은 자본주의 국가들 간 경쟁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전쟁으로 자신들이 쌓아 온 부가 몽땅 파괴될까 봐 걱정하지만, 체제의 수혜자로서 이 정신 빠진 군비 경쟁을 멈출 생각은 하지 못한다.

역사에는 강대국들이 평화 공존을 약속하며 맺은 수많은 협정이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경쟁은 그 합의들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게 만들었다.

가령 냉전이 절정일 때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위협을 통제하려고 협정들을 맺었다. 그러나 냉전 해체 이후 자국의 패권이 약화되자, 미국은 기존 약속을 뒤집고 미사일방어체계 개발에 나섰다.

중국이 새로운 라이벌로 부상하자, 2019년 미국은 중국의 미사일에 대응하려고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폐기해 버렸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핵무기를 비롯한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자국의 이해관계를 나머지 세계에 관철시키려 해 왔다.

위선

이것이 핵무기 문제에서 거대한 위선을 낳았다.

미국은 실효성 없는 ‘핵전쟁 방지’ 공동성명으로 생색을 내면서, 정작 북한·이란 등에 대해서는 핵개발을 포기하고 NPT 조약을 준수하라고 협박해 왔다.

바이든 정부는 최근 대북 제재를 추가했고, 북핵 문제는 “NPT 체계에서 가장 큰 실패 사례”라며 다음 NPT 검토 회의에서 그 문제를 주된 안건으로 다루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정작 바이든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지원하기로 했다. 호주 핵잠수함은 핵확산과는 상관없다는 궤변을 떠들면서 말이다.

‘핵전쟁 방지’ 공동성명 발표 후 1월 5일 북한이 새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아마도 미국 등 강대국들의 위선과 위협에 대한 북한식 응답이었을 것이다.

많은 평화주의자들이 지난해 발효된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기대를 걸었다. 이 조약은 핵무기의 개발, 시험, 생산, 비축, 사용, 사용 위협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그러나 5대 핵강국들은 이 조약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한국, 일본 등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동맹국들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미·중·러 등의 전략적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는 와중에, 핵무기금지조약 발효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핵무기를 없애고 항구적 평화를 이룩하려면, 서로 경쟁하며 위험을 키우는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권력에 맞서야 한다. 그리고 불안정의 근본 배경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도전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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