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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이슈 ― 정의를 위한 주장》(숀 페이, 돌베개, 398쪽, 23000원):
트랜스젠더 차별을 개인 경험을 넘어 사회적 맥락 속에서 분석한 책

지난 2월 말에 고 변희수 하사 1주기를 기리며 반가운 책이 번역·출간됐다. 영국의 트랜스젠더 여성이자 저널리스트 숀 페이의 《트랜스젠더 이슈 ― 정의를 위한 주장》이다. 영국에서도 2021년 9월에 출간된 비교적 최근 책이다.

이 책은 트랜스젠더의 개인적 회고록이 아니다. 저자는 “특히 트랜스 여성에게 개인적 글이나 회고록을 쓰라는 압박이 있으며 그런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 하고 말한다.

저자는 트랜스젠더 차별을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저널리스트답게 여러 취재와 인터뷰, 조사를 바탕으로 세심하고 풍부하고 분석적으로 썼다. 영국의 사례가 많지만 한국의 트랜스젠더 차별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트랜스젠더 이슈 ― 정의를 위한 주장》 숀 페이, 돌베개, 398쪽, 23000원

저자는 자신이 백인 중산층 트랜스 여성이라는 점을 의식하며 글을 썼다. 그래서 인종차별로 더 취약한 처지로 내몰리는 유색인·난민 트랜스젠더, 오늘날 공격의 대상이 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성 노동’으로 내몰리는 트랜스젠더(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들은 ‘성 노동’에서 불비례하게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의 경험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렇다고 해서 흔히 억압의 정도를 비교하며 도덕주의로 나아가는 ‘특권 이론’에 타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억압과 차별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이 책의 주된 관심사는 현재와 같은 사회가 트랜스인들의 삶을 불가피하게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때는 오직 트랜스인들에 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힘과 가진 것을 빼앗기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자 한다.(강조는 서평자)”

예컨대 2장 ‘옳은 몸, 그른 몸’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의료 서비스가 트랜스젠더에게 얼마나 권위적이고, 턱없이 부족한지 생생하게 다룬다. (물론, 영국의 NHS는 의료적 성전환에 국가 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보다 진일보한 제도다.) 나아가 NHS의 민간 시장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이윤 동기가 강화되는 것이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 환자 모두에 이롭지 않음을 지적한다. 또, 트랜스젠더 의료 쟁점을 단지 당사자만이 아니라 낙태권을 포함한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위한 광범한 투쟁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며 정치적 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단지 개인 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며, 국가적 폭력(경찰력, 감옥, 이주민 강제 수용소)을 다룬 5장 ‘국가’도 급진적이고 탁월하다. 저자는 감옥과 이주민 강제 수용소 제도 자체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해 안타깝게 생을 달리한 트랜스젠더 김기홍·변희수 ⓒ이미진

진정한 트랜스 이슈

저자는 의도적으로 책 제목을 ‘트랜스젠더 이슈’라고 지었다. 흔히 미디어에서 다루는 트랜스젠더 이슈란, ‘트랜스 여성이 여성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느냐’를 둘러싼 논쟁 따위로 협소하게 국한되곤 한다. 반면, 저자는 오늘날 트랜스젠더들이 나날이 마주하는 사회적·물질적 문제들, 진정한 ‘트랜스젠더 이슈’를 보여 주고자 한다.

저자는 반자본주의 관점에서 자유주의적 대안들에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우리의 목표는 “트랜스젠더 해방”이어야 한다. “‘트랜스젠더 권리’ 혹은 ‘트랜스젠더 평등권’ 같은 비교적 소박한 목표로는 부족”하다. “자본주의적이자 가부장적이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모멸하는 이 세상에서 평등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주류 미디어에서 트랜스젠더들의 ‘가시성’을 지향하자는 전략, 기업들의 다양성 프로젝트, 트랜스 혐오를 해결한다며 경찰력 강화에 협력하는 것, 의회 로비 전략 등을 언급하며 이런 정치가 대다수 평범한 트랜스젠더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 효과가 없(었)거나 오히려 문제적이라고 지적한다.

“[핑크워싱의 동기가 문제적이더라도] LGBTQ+ 단체가 일부 트랜스 직원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도록 그 동기를 성공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면 순이익이 아닐까? 문제는 일부 일터에서 일어나는 그날그날의 향상이 이로울 수는 있어도 단편적이고 고립되어 있으며 개별 고용주의 방향성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수준에서 보는 더 큰 그림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가장 취약한 계층의 트랜스인에게는 문제가 지속된다.

“회사의 다양성 프로젝트는 강력하고 튼튼한 노동조합 운동이나 충분한 예산을 갖춘 복지국가와 달리 트렌스젠더 노동자, 아니, 사실상 모든 노동자의 안전과 존엄성,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

LGBT 운동 안에서 LGB와 T 사이의 긴장, 분리주의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도 각각 한 챕터를 할애해 다룬다. 이 논쟁은 한국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으므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다.

저자가 트랜스젠더 다수가 노동계급이고 트랜스젠더 내에도 계급적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 부분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트랜스젠더 차별과 계급 문제를 분리하는 접근법을 비판한다. 3장 ‘계급 투쟁’은 이런 접근법을 가진 주류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다만, 저자는 트랜스젠더 해방 전략에서 노동계급의 구실과 잠재력을 충분히 다루고 있진 않다. 계급은 여러 차별받는 집단이 가장 광범하고 강력하게 연대할 수 있는 원천이자, 차별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뿌리 뽑을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이런 분석이 더해진다면, 저자가 이 책을 쓰는 원동력이었다고 말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우리의 공통된 희망”에 엔진을 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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