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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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는 더는 낯선 존재가 아니고 점점 더 많이 드러나고 있다.
방송인 풍자 씨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고, 얼마 전에는 사이클 선수 나화린 씨가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대회에 출전했다.
나화린 선수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과 변희수 하사의 용기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숨어 있기는 좀 너무 겁쟁이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저들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다’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같이 어울렸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용기 있게 나와 꿈을 펼치는 트랜스젠더들을 응원한다.
트랜스젠더는 일상에서 큰 어려움과 차별을 겪으며 살아간다.
트랜스젠더는 외모·목소리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지되는 성과 성별정체성 혹은 법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성별 이분법적인 이 사회에서 여러 편견과 법·제도적 차별에 시달린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차별은 공중 화장실 이용에서부터 직장을 구하는 문제까지 수없이 많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는 유난히 천대받고 성소수자 중에서도 보통 더 취약한 처지에 있다.
일부 우익의 트랜스젠더 공격은 이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에서도 우익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보수적 의제로 사람들을 결집하는 데 트랜스젠더를 희생양 삼고 있다.
트랜스젠더 혐오적 우파는 젠더를 인정하지 않는다. 편협하게도 그들은 생물학적 성만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트랜스젠더가 겪는 ‘성별위화감’도 단지 잘못된 심리적 상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급진적 페미니즘의 일부도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체성을 부정한다. “트랜스 야옹이”라는 모욕적 표현도 나온다.
하지만 생물학적 성과 성별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전체 인구에서 소수더라도 인류 역사 내내 존재했다. 인류 역사에는 여러 성별의 존재와 표현, 성적 지향이 인정되는 사회들이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중에는 성이 남녀 두 개 이상이라고 인정하는 부족도 있었다.
문제는 남과 여라는 두 성별로 모든 사람을 욱여넣으려는 이 사회다.
트랜스젠더들은 법적 성별 정정이나 의료적 트랜지션(성전환)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성전환 수술은 트랜스젠더 개인에게 신체적·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법원이 법적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흔히 성전환 수술을 요구하는 것은 큰 문제다. UN은 법적 성별 정정에서 성전환 수술을 요구하는 것은 “고문”과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본다.
이런 엄격한 요건은 끊임없는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비급여인 성전환 수술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법적 성별을 정정하지 못하면 원하는 직장을 구하는 데에서 큰 곤란을 겪고, 그럼 다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다.
청소년들은 더욱 취약한 처지에 있다. 최근 〈서울신문〉 기자들이 쓴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 대답해도 듣지 않는 학교를 떠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를 보면 청소년 트랜스젠더 5명 중 1명꼴로 학업을 중단한다(평균의 27배). 가족과 학교 내에서 맞닥뜨리는 편견과 차별로 일상을 영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트랜스젠더에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들은 법적 성별 정정 요건 완화와 성별정정특별법 제정, 의료적 트랜지션에 보험 적용, 주민등록번호에서 성별 표기 삭제(난수화)를 요구한다. 성중립 화장실 설치도 중요한 요구다.
이는 트랜스젠더가 일상에서 겪는 극심한 차별을 완화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 요구들이고, 유럽 일부 나라에서는 이미 시행되는 것들이다.
트랜스젠더가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트랜스젠더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