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살펴보는:
제국주의와 민족 자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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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좌파 내 논쟁의 중심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자결권 문제가 있다.
국제적으로 여러 좌파, 국내에서 사회진보연대 등은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고 해서 이 전쟁의 성격이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인들의 국민 방위 전쟁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이 핵심 쟁점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 중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침공에 계속 맞서 싸우고자 한다면 어찌 우리가 무기 지원에 반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즉각 철군해야 마땅하다. 푸틴이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러시아의 침공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사회주의자들은 억압받는 민족
그는 억압하는 민족의 노동자가 억압받는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하지 않고서는 지배자들의 반동적 사상과 결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으므로 혁명가들은 그런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결권
그러나 자결권의 성취가 자동으로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나 제국주의의 약화를 낳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의 ‘자결권’을 지지했다. 제2차세계대전 때 유대인들이 겪은 쇼아, 즉 홀로코스트가 그런 지지의 동기가 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건국은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1990년대에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도 자결권이라는 대의가 서방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이용돼 오히려 또 다른 억압을 낳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알바니아계 등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살던 옛 유고슬라비아는 동구권 스탈린주의 체제 붕괴 상황인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자 지배자들이 노동계급의 저항을 분열시키려고 배타적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부 갈등에 휘말렸다.
1999년 봄 나토는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을 세르비아군의 공격에서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인도주의적’ 개입에 나섰다. 나토는 세르비아를 폭격하고 알바니아계 민족주의 게릴라인 코소보해방군
당시 나토의 개입을 두고 국제적으로 좌파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나토의 폭격을 지지하지는 않아도, 코소보해방군을 나토가 무장시키는 것은 지지하는 식이었다.
나토의 개입은 여러 민족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사회를 발칸반도에 실현하기는커녕 더 많은 ‘인종
중동 쿠르드인들의 비극
자결권 문제가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과 제국주의 약화라는 더 큰 목표에 부합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사례는 중동 쿠르드인들의 비극이다.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분할하자 쿠르드인들은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튀르키예
쿠르드인들은 오랜 기간 독립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종종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예컨대 2003년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은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에 협력해 얼마간 자치권을 확보했다. 쿠르드족 민병대들은 팔루자 등지의 이라크인 저항 진압 작전에 동참하는 등 미군의 점령에 협조했다.
이런 의존은 쿠르드족 자신에게도 결국 부메랑이 됐다. 2017년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 정부가 국민투표를 통해 분리 독립을 시도했을 때, 미국은 동맹국 튀르키예의 반발을 의식하고 중동 지배 질서가 불안정해질 것을 우려해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 결국 분리 독립 시도는 미국이 후원하는 푸아드 마숨 이라크 정부의 압력으로 좌절됐다. 쿠르드 출신 정치인 바르함 살리흐가 마숨을 잇는 후임 대통령이 됐어도 지금까지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시리아 혁명에 동참했던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인들도 이슬람국가
쿠르드인들이 제국주의에 배신당하는 역사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며칠 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스웨덴과 핀란드는 자신들의 나토 가입에 튀르키예가 반대하지 않는 것의 대가로, 튀르키예 정부의 탄압을 피해 온 쿠르드족 사람들을 단속·추방하기로 약속했다.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을 지켜주는 것처럼 구는 서방 국가들이 쿠르드족의 자결권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에게 자결권이라는 대의는 패권 추구를 위한 카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제국주의자들이 그런 대의를 이용하려 한다고 해서, 자결권 투쟁의 성격이 자동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성격을 정확히 규정하려면 구체적인 맥락을 봐야 한다.
예컨대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 전쟁은 민족 해방 전쟁의 성격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그 전쟁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맞선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 투쟁으로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소련·중국의 배신적 합의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됐었는데, 범죄적이고 부패한 친미 독재 정권이 통치하던 남베트남에서 일어난 봉기가 바로 베트남 전쟁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한편, 북베트남을 지원한 소련과 중국은 당시에 서로 경쟁 관계였기에 북베트남 지도부는 이를 이용해 둘 사이에서 어느 정도 정치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구체적 맥락
그렇다면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어떠한가? 이 전쟁은 2014년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이 친서방으로 확실하게 기울면서 벌어진 충돌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때부터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군사적·경제적으로 밀접한 연관을 맺기 시작했다.
그래서 러시아의 침공 후 미국 등 서방은 엄청난 규모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이 전쟁을 통해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중국과의 대결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전쟁은 갈수록 서방과 러시아의 충돌 위험이 커지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여기서 젤렌스키는 서방 제국주의의 첨병을 자처하고 있다. 향후 우크라이나가 ‘거대한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는 젤렌스키의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민방위전이라는 성격은 제국주의 간 충돌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 이런 충돌에서 어느 한 제국주의가 강화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에게 대안일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을 지지함에도 서방의 군사 지원을 반대하는 이유다.
게다가 지금의 전황을 볼 때 서방의 지원은 러시아에 결정적인 군사적 패배를 안겨 주기보다는 지금의 교착 상태
수많은 평범한 러시아인들에게 비수를 겨누고 있는 서방 제국주의가 강화되는 것을 사실상 지지하면서 그들더러 푸틴에 맞서라고 호소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서방과
이것이 러시아에 살지 않는 우리가 러시아 내 저항을 고취시킬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