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누가 제재의 대가를 치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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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킬 수단처럼 얘기된다. 그러나 제재는 평범한 사람들을 고통받게 하고 전쟁을 격화시킬 가능성을 키운다.
경제 제재는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는 더 평화적인 방법이기는커녕 전쟁 행위나 다름없는 짓이다. 이것이 믿기지 않는다면 프랑스 재무장관 브뤼노 르메르의 말을 유심히 들어 보라.
3월 1일 르메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대응을 논하며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는 러시아를 상대로 경제적·금융적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 경제를 붕괴시킬 것이다.”
이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러시아는 대략 1억 5000만 명이 사는 나라다. 만약 르메르가 바라는 대로 러시아 경제가 무너진다면, 이는 재앙적인 사회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될 것이다. 도시에서는 금세 먹을 것이 바닥나고 팬데믹이 한창인 가운데 의료 체계도 붕괴할 것이다. 친구이고 이웃이던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살아남으려고 서로를 저버려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사회가 처참하게 붕괴하면서 벌어질 혼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가 달러·파운드·유로화 같은 외환을 거래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여러 러시아 은행의 자산을 동결했다. 그들은 전 세계 은행들이 국제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 국제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차단시켰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공개 시장에서 무엇 하나라도 사거나 팔기가 크게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잠재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조처는 아마 러시아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일 것이다. 서방은 러시아가 보유한 모든 해외 금융 기관 자산을 동결했다. 그 결과 러시아 국가의 전체 외환 보유고의 절반이 묶였다.
평상시에 중앙은행은 외환 보유고로 자국 통화 가치의 일상적 변동을 완화시키거나 외환 보유고를 담보로 돈을 빌린다. 제재를 입안한 자들은 중앙은행의 이런 기능을 마비시켜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의 폭락과 대량 매도를 유발하고 이를 통해 러시아 국가를 파산시키려 한다.
그리고 ‘은행들이 외환에 접근하지 못하면 루블화를 달러나 파운드화로 못 바꿔 주는 것 아닌가’ 하고 러시아 사람들이 걱정하게 하고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려 한다.
그렇게 돼서 루블화가 폭락하면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급격한 경기 후퇴를 촉발할 것이다. 뱅크런(대규모 현금 인출)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미 러시아에서는 현금 인출기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그나마 남은 것을 두고 처절한 쟁탈전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루블화 폭락을 막으려면 러시아 국가는 남은 외환 보유고를 털어서 국제 시장에서 외화를 사들여야 한다. 2월 28일 러시아는 하룻밤 새 금리를 9.5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올려서 루블화를 보유하고 있을 때의 수익성을 지키려 했다.
제재를 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타격을 줘서 그로 인해 벌어지는 참사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푸틴에게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매주 급등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러시아 정치인들이나 올리가르히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테지만, 그로 인해 가난한 노동자들은 끼니를 거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루블화가 폭락한다 해도 거기서 사람들이 어떤 결론을 이끌어낼지는 장담할 수 없다.
물론 경제 붕괴는 대중이 푸틴 지배 체제에 분노를 돌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재를 서방의 공격으로 인식한 대중이 자국 지지로 결집하게 하고, 푸틴의 지배를 연장시키는 데에 일조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러시아 지배계급이 서방에 대응해야 한다는 압력은 엄청날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심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심지어 러시아 경제가 초토화된다 해도, 러시아 정권에는 기댈 수단이 있다. 바로 막강한 군사력과 핵무기다.
궁지에 몰린 푸틴은 일격을 결심할 수도 있다.
제재가 나토의 군사 개입보다 더 평화적 방안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제재는 유혈 충돌로 이어질 또 다른 길일 뿐이다.
세계 극빈층에게도 고통을 줄 제재
제재는 주로 러시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타격을 주지만 전 세계 대중에게도 타격을 줄 것이다.
3월 초, 러시아 경제 제재에 대한 반응으로 국제 금융 시장에서 원자재 가격과 식량 가격 등 상품 가격이 치솟았다. [원자재 가격 지수의 하나인] GSCI 지수는 18퍼센트 상승했고, 1970년대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료비 역시 기록적인 상승폭을 보였다. 이렇게 되면 세계 곳곳에서 생활비가 더욱 치솟고 인플레이션이 노동자 임금의 더 많은 부분을 잠식할 것이다.
러시아는 석유·가스·석탄의 주요 공급국이다. 서방은 유럽의 가스 공급에 생길 차질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산 에너지 거래는 허용하는 식으로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현재 많은 에너지 업자들은 “자가 제재”를 하며 러시아산 에너지를 피하고 있다. 러시아산은 앞으로 팔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제재는 식량 가격 또한 치솟게 할 것이다. 3월 들어 밀 가격이 거의 40퍼센트 상승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국제 밀 수출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중동·북아프라카·아시아 국가들이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곡물로 만든 끼니 말고는 먹는 게 거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분명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한 거대 투자 회사 대표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 밀이 부족해졌을 때는 ‘아랍의 봄’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빵을 구하지 못하면 아주 크게 분노할 것이다.”
지배자들의 제재와 ‘아래로부터의 제재’는 무엇이 다른가?
경제 제재는 제국주의가 오랫동안 선호해 온 무기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거의 전면적인 재정·무역 금수 조처를 가했다. 유엔안보리 이사국들은 2003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여러 해 동안 제재를 지속했다.
그 사이 이라크는 경제적으로 초토화됐다. 한때 중동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 중 하나였던 그곳에서 영양실조와 질병이 만연했다.
1998년 바그다드의 유엔인도지원조정관 데니스 핼리데이는 34년 동안 몸담았던 유엔에서 사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학살과 다를 바 없는 계획의 집행자가 되고 싶지 않다.”
서방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처럼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정권이면 어디든 주저 없이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동맹 관계에 있는 정권이 문제시될 때는 제재를 지지하기를 거부한다.
1980년대에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 고통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은 소수의 백인 지배자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조처들을 전 세계에 촉구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국제법 위반인데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제 무역 덕분에 경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흑인들은 성토했다. 서방 은행과 광산 기업들도 흑인 억압에서 득을 봤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은 경제에 타격을 입히는 제재로 자신들 또한 고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필요한 대가로 여겼다. 그러나 미국 당시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 등 세계 지도자들은 이윤을 갉아먹을 조처를 취하기를 거부했다. 제재는 자유무역을 상대로 한 범죄라고 대처는 주장했다.
좌파는 이스라엘의 인종 분리 체제에 대한 제재에도 우호적이다. 이처럼 좌파들이 제재에 우호적인 주장을 내놓을 때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요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 열강으로 나뉜 세계라는 맥락[즉,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 속에 제재를 자리매김하려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과 서방은 제재를 요구할 때 제국주의의 필요에서 출발한다.
이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에 부과하는 제재는 이 지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다. 제재가 그런 것이었다면 블라디미르 푸틴과 그가 벌이는 전쟁에 갈수록 깊은 적의를 드러내는 평범한 러시아인들을 도대체 왜 고통에 빠뜨린다는 말인가.
이 제재는 서방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을 감히 거스르면 러시아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보이콧은 어떻게 봐야 할까
러시아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노동자들의 보이콧에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영국의 부두 노동자들이 러시아 화물선 하역을 거부하면서 이런 물음이 날카롭게 제기됐다.
러시아 국가가 우크라이나를 불태우고 폐허로 만드는 데 여념이 없는 지금, 노동자들에게는 그 국가를 경제적으로 돕는 행위를 거부해야 할 여러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가 순전한 반(反)러시아 외국인 혐오로 변질될 위험 또한 존재한다.
예컨대, 지난주에 공연단 이름에 “러시아”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백조의 호수〉 공연이 취소된 것은 터무니없는 배척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와 20세기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을 공연하는 것이나 러시아 고전문학 연구를 막으려는 시도 또한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평범한 사람들은 적이 아니다. 진정한 적은 러시아의 기업주들과 정치인들이다. 이들과 평범한 러시아인들을 혼동하는 것은 푸틴의 전쟁에 맞선 저항을 약화시킬 뿐이다.
심화하는 식량 공급 대란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식량 생산에 재앙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기아를 치명적으로 악화시킬 것이라고 농업 기업주들은 경고했다.
비료를 생산하는 글로벌 화학기업 야라 인터내셔널의 CEO 스벤 토레 홀세더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재앙 위에 재앙이 덮친 격”이라 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기본 작물 수출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들이다. 두 나라는 밀 수출의 29퍼센트, 옥수수 공급의 19퍼센트, 해바라기씨유 수출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홀세더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전쟁이] 국제적 식량 위기로 나아갈 것인가의 여부는 쟁점이 아니다. 그 식량 위기가 얼마나 클지가 진짜 문제다.”
비료가 부족해지면 전 세계의 극빈 지역이 의존하는 주요 작물을 농민들이 심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홀세더는 경고했다. 그렇게 되면 향후 2년 동안,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1억 명이나 더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다.
홀세더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인구 중 특권을 누리는 일부만이 충분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세계의 식량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일부 지역에서 기아가 만연하고, 사망률이 상승하고, 무장 충돌, 이주, 폭동, 사회 불안정 등이 늘어나 지정학적 긴장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비료 생산과 유통이 교란되면 이미 1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식량 가격은 더욱 상승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혈전(血戰)이 장기화될수록 이 파괴적 갈등이 전 세계에 미치는 파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