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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위험에도 계속되는 금리 인상, 왜?

인플레이션은 전반적으로 상품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왜 발생했을까?

본지에서 강동훈 기자(431호 기사 ‘물가 상승과 생계비 위기’)나 조셉 추나라(426호 기사 ‘세계경제 전망①’)가 밝혔듯이, 팬데믹 이후 공급망 교란, 제국주의적 갈등 격화와 전쟁, 기후 위기와 기상 이변 그리고 물자 부족을 이용한 기업들의 가격 인상 등을 꼽을 수 있다.

뉴욕연준은행이 밝힌 ‘글로벌 공급사슬 압력 지수’(운송이나 항만의 지체나 물류의 상태를 나타내는 지수)는 지난 6월 말 1.84로,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더 높다. 여전히 공급 측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류 언론들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보복 소비’나 ‘고임금’ 또는 ‘저축률 증가’를 지목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원인을 감추려는 악의적 의도가 포함된 것이다. 코로나19로 무너진 공급망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갑이 두둑한 노동자들이 소비를 늘렸지만 물건이 없어 가격이 오른다는 주장 말이다.

구매 포기? 필수적인 먹거리 가격이 크게 올라서 대중의 생활고가 깊어지고 있다 ⓒ이재환

그러나 코로나19로 실직하거나 무급휴가를 받은 노동자들, 정상 근무를 하더라도 임금이 삭감됐던 노동자들이 ‘고임금’으로 ‘보복 소비’에 나섰다는 주장은 다른 세상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일부 주류 언론들도 ‘보복 소비’ 같은 것은 없다고 실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금리 인상이 과연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미국 월가에서도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금리를 올리면 수요는 억제되지만, 인플레이션의 주된 요인은 공급 측면에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오히려 확전될 조짐이고, 유럽의 기상 이변과 중국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전히 생산과 물류가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런데도 9월 2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이 매우 강경하게 금리를 올릴 것이며 그 과정에서 가계나 기업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매파적 발언을 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즉,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인플레이션은 꼭 잡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파월의 발언은 금융 시장의 기대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지난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8.5퍼센트 인상을 기록해 6월 상승률과 비슷해지자, 인플레이션이 이제 정점에 도달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조금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 경제성장률이 올해 1분기와 2분기에 마이너스를 기록해 ‘공식적으로는’ 경기 침체가 시작됐지만, 미국 실업률이 매우 낮아 완전고용에 가깝다는 점을 근거로 경기 침체가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찮게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완전고용에다가 금리 인상이 완화되면 경기가 급속히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파월이 재차 매파적 발언을 하자, 세계경제가 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전 세계 금융시장에 퍼졌다.

이처럼 인플레이션 억제에 집착하는 연준을 보면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은 실질임금을 삭감해 노동자들의 호주머니를 합법적으로 터는 것인데, 왜 연준은 기를 쓰고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할까 하는 의문 말이다.

물론 인플레이션은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은 맞지만, 생활수준 하락으로 인한 노동자 저항을 촉발시켜 결과적으로는 체제를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들도 이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은 체제의 작동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비효율적인 자본과 생산과정이 시장에서 소멸하기는커녕 보존된다. 이는 자본의 구조조정을 더 어렵게 만들고 불안정한 부채가 누적되면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

이처럼 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을지 회의감은 커지고 있지만,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금리 인상은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먼저, 개발도상국들에서는 통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자본 유출, 생활 물가 급등, 주식·채권 가격 폭락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1970년대 말에도 미 연준 의장 폴 볼커가 금리를 대폭 인상하자 멕시코 등 개도국에서 부채 위기가 벌어졌다. 최근에 벌어진 스리랑카의 국가 부도 위기 같은 일들이 여러 나라로 번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금리 상승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인한 대중적 분노는 개발도상국들의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킬 것이다.

둘째, 금리가 급등해 경기가 침체하면서 올해 3분기부터는 기업 이윤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2분기에는 가격 인상 효과 덕분에 기업 실적이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금융 시장은 기업 실적에 대한 기대치를 대폭 낮춰 잡고 있다. 또 월마트 같은 거대 유통기업이나 ‘FAANG’으로 알려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고용 감축을 추진 중이다.

셋째,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의 두 기둥 중 하나인 중국에도 경기 침체 위기가 덮치고 있다. 중국 헝다 그룹에 이어 다른 부동산 기업들도 수익성 하락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매출 1위를 기록한 부동산 기업 비구이위안(碧桂園, 컨트리가든)은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지난해보다 98퍼센트나 줄기도 했다. 부동산 기업의 부도가 은행 위기로 번질 수도 있는데, 지난 7월 허난성 정저우 시의 농촌 은행들에서 예금인출 금지 사태가 벌어진 게 그 사례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최근에도 코로나 확산을 막는다며 2100만 명이 사는 청두 시를 봉쇄했다. 전면 봉쇄 정책 때문에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목표치 5.5퍼센트에 훨씬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세계경제 침체는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입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국 경제의 둔화는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한국의 무역수지가 지난 8월에 적자를 기록했는데, 5개월 연속 적자는 14년 만이다. 2008년의 미국 발 세계경제 위기 때는 중국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 덕분에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 조짐은 급등하는 환율(원화의 평가절하)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도 이윤을 지키려고 노동자들을 공격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주들의 이런 움직임에 적극 동조할 것이다.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의 침체는 노동자들의 불만이나 분노 또는 투쟁 의지 같은 계급의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 재계에서는 ‘겨울이 오고 있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 겨울이 얼마나 추울지는 모르지만 꽤 길게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계급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