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좌파 활동가 초청 강연:
팬데믹 3년 차, 세계경제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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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월 20일 노동자연대가 온라인으로 주최한 ‘해외 좌파 활동가 초청 강연: 팬데믹 3년 차, 세계경제와 정치(영상보기)’를 글로 옮긴 것이다.
먼저 코로나 팬데믹이 자본주의의 장기적 위기를 더욱 가속하는 구실을 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장기 위기는 경제가 비교적 침체된 상태와 금융 불안정이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포함합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상황을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으로 일컬었습니다.
이 위기의 또 다른 측면은 제국주의 간 갈등이 고조되는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국제적 헤게모니가 쇠락하고, 중국이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지역 수준에서도 미국에 도전하는 여러 강국들이 등장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이 위기는 생태 위기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자본주의가 초래한 기후 변화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태 위기의 일부분이 바로 팬데믹입니다. 팬데믹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전염되면서 발생했는데, 이 과정은 자본주의가 자연을 상품화하고, 이윤 목표에 맞게 재조직하고, 자연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팬데믹과 함께 자본주의는 급격하게 침체하며 장기 불황의 최신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지금은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약하고 불안정한 회복입니다. 세계은행도 올해 세계경제 성장이 전년보다 더 미약할 것이고 팬데믹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불충분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장기적 이윤율 위기
그래프1을 보며 말씀드리겠지만 이런 자본주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오랜 이윤율 하락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급격한 팽창기가 오히려 이윤율 하락을 예고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윤은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얻어지는데 그 이윤을 얻기 위해 자본가가 먼저 투자해야 하는 자본의 양은 갈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프1에서 나타나듯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호황기는 그 다음 시기의 이윤율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이윤율은 1980년대 초에 저점을 찍었죠. 그 뒤 이윤율이 소폭이나마 회복된 것은 노동자들을 더욱더 쥐어짠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전후 시기 수준으로 이윤율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에는 이런 이윤율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비효율적이고 수익성 낮은 자본이 대규모로 파괴되는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지적했습니다.
근래에는 그런 자본의 파괴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비효율적 자본의 청산이 어려워진 이유는 주요 기업들이 너무나 몸집이 커지고, 금융 시스템에 깊숙이 통합되고, 국가와의 유착도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들은 위기가 온전히 진행되기 전에 경제에 개입해 이를 막아야 할 유인이 커졌습니다.
그런 이유로 1970~1980년대에 본격화된 이윤율 위기가 여태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프2를 보시면 그렇게 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곳에서는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려면 갈수록 신용과 빚에 의존해야 하게 됐습니다.
마르크스는 신용의 팽창이 경제를 한계 너머로 밀어붙이는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또한 온갖 사기와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에는 여러 차례 금융 버블이 나타났고, 그 근저에는 신용의 ‘메가 버블’이 존재했습니다. 미약한 성장과 금융 불안정으로 특징지어지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 금융 위기 때부터는 이런 상황이 단지 미국, 유럽,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 나머지 지역으로 점점 확산돼 나갔습니다.
세계 2위 경제인 중국에서도 이처럼 위기로 나아가는 자본주의의 경향들이 작동해 왔습니다.
1990년대부터 중국 경제는 노동자들에 대한 엄청난 착취율과 수출 시장 확보를 통해 급성장했습니다. 중국은 전후 시기의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축적했습니다.
결국 중국에서도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수출 시장도 점점 수축됐고, 임금도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수익성 없는 자본이 대량으로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2008년 이후 중국도 국내에서 거대한 신용 팽창을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로 헝다 그룹의 파산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신용 주도의 불안한 성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세계적인 성장세의 약화와 불안정성 증대의 또 다른 측면은 그래프3에서 볼 수 있듯이 좀비 기업의 비중이 증가한 것입니다.
신용이 값쌌기 때문에, 즉 금리가 낮았기 때문에 딱히 수익을 내지 않고, 투자도 하지 않고, 단지 더 빚을 내서 기존의 빚을 돌려막기 하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 각국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국가는 경제에 개입해서 파산 위기 기업들을 구제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다음의 위기 요인을 스스로 마련하는 셈입니다.
국가 개입의 증대
2008년에도 국가 개입과 은행 구제 등이 엄청난 규모로 이뤄졌지만, 2020년에는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국가가 경제에 개입했습니다. 그래프4를 보시면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는데요, 미국의 경우에는 GDP의 4분의 1이었습니다. 전시를 제외하면 가장 큰 규모의 경제 개입입니다.
직접적 개입뿐 아니라 중앙은행을 통한 개입도 있었습니다. 그래프5를 보시면 그 결과 금리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2008년에 각국 중앙은행은 거의 0퍼센트에 가깝게 금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다 팬데믹 직전까지 금리를 조금씩 올렸지만 팬데믹이 닥치자 다시 0퍼센트로 떨어뜨렸습니다.
이런 저금리 정책은 경기를 부양시킬 수도 있지만 그 대가로 금융 불안정은 더 커지게 됩니다. 부채에 대한 의존성도 더 커지죠.
제 요지는 세계 경제가 갈수록 국가 개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바이든, 영국의 보리스 존슨 같은 국가 지도자들이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문제를 국가를 이용해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국가 개입으로의 선회는 단지 자본주의 경제 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경쟁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미국에게 중국의 부상은 국가를 동원해서 경제를 조직하며 미국에 도전하는 라이벌이 등장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주요국들도 어느 정도 중국을 모방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리고 바이든은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도 국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의사를 아주 확실하게 내비쳤습니다.
‘위기 관리’와 ‘경쟁국과의 경쟁’이라는 목적으로 국가를 이용하는 것은 결코 사회주의로의 전환이 아닙니다. 이런 국가 개입으로의 선회가 보여 주는 바는 1980~1990년대의 신자유주의 기조가 사회의 극소수를 부유하게 해주기는 했지만 결국 체제의 위기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배계급은 시장자본주의에서 국가자본주의로 살짝 한 걸음 움직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인플레이션과 계급투쟁
그러는 동안 이 체제 하에서 노동자들은 계속 고통받고 있습니다.
2008~2009년 이후로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거센 공격을 받았습니다. 영국에서도 이것이 특히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영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실질임금이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위기가 닥치자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 인종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은 인플레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더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인플레의 몇 가지 원인을 짚어 보려 합니다.
팬데믹 이전에 자본주의는 매우 타이트하고 길게 확장된 공급 사슬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에너지 공급망은 지정학적 단층선을 가로질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팬데믹이 닥치면서 공급 사슬이 일대 혼란에 빠졌습니다.
지난해 가을 들어서 세계적 수요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자 공산품, 원자재, 에너지의 품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아니면 스스로 그만둔 후 아직 복귀하지 않아서 노동력 부족 현상도 나타났죠.
이런 것들이 세계적 인플레를 추동하는 주요 요인들입니다. 공급 사슬이 다시 재건되고 노동자들이 일터로 복귀하면 결국 인플레가 멈출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은 몇 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임금 인상을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인플레의 심화는 지배계급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예전 같았으면, 인플레가 나타나면 지배자들은 금리를 인상시켜서 인플레를 통제하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렸듯이 자본주의는 저금리에 이미 중독된 상태입니다. 금리를 너무 빨리 인상시켰다가는 경제 전체를 불황에 빠뜨릴 위험이 있습니다. 금융 시스템의 규모가 워낙 커졌고 기업들의 부채 의존도도 너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이 이런 식으로 오늘날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배계급에게 또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인플레 때문에 계급투쟁이 격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데서는 현재로서는 아직 소규모의 투쟁들만 벌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투쟁들이고, 우리는 이런 것들이 더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인플레의 영향은 단지 비교적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들만 느끼는 게 아닙니다. 2011년 아랍 혁명을 촉발한 중요한 요인 하나는 바로 빵 가격이 급등한 것이었습니다. 2019년에 세계 곳곳에서 투쟁이 벌어졌던 것도 부분적으로는 교통비나 에너지 가격 등이 인상돼서였습니다. 그리고 2011년과 2019년의 세계적 혁명 또는 투쟁 물결은 모두 극도의 불평등과 부패, 불안정 등을 배경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배경은 오늘날에도 상존합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반란도 부분적으로는 에너지 가격 인상에 따른 것입니다.
위기 시기의 정치
마지막으로 이 시기의 정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1980~1990년대의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구식 정치는 오늘날의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장기적 위기, 단기적으로는 팬데믹 위기로 인해 그런 기존 주류 정치는 완전히 신뢰를 상실했고, 지금은 새로운 정치들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스펙트럼의 오른쪽에 있는 정치는 영국의 보리스 존슨, 미국의 트럼프 같은 자들이 대변합니다. 이들은 우파 중에서 신자유주의적 상식 일부를 폐기할 태세가 돼 있는 이단아들로, 이들의 정치는 흔히 국가 개입주의를 인종차별주의, 애국주의와 결합시키기도 합니다.
이들은 일부 기성 지배계급 성원들과 충돌하기도 하는데 그 때문에 정치가 더 한층 불안정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보리스 존슨 총리가 향후 2주 이내에 사임할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한편, 급진좌파 쪽을 보면 미국의 샌더스나 영국의 제러미 코빈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나 그리스의 시리자 같은 사례도 있죠. 이들은 기존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권력을 장악하려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좌파 개혁주의 정치 세력은 사회주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구실도 하지만, 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장기 위기의 맥락에서 급진좌파들은 급속도로 부상하기도 하지만 금세 엄중한 시험대에 서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시리자는 2015년 집권에 성공했지만 결국 체제와 타협하면서 지지자들을 배신했고 신속히 정권을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스페인 포데모스도 기성 정치 질서 바깥에서 급성장했다가 지금은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샌더스나 영국의 코빈은 권력을 잡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와 국가 자체에 도전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좌파 개혁주의에 고무받는 사람들과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면서도 더욱 급진적인 정치를 우리는 주장해야 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부를 창조하는 노동자 계급이 이 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노동 계급의 규모는 이미 20억 명을 넘어섰습니다.
다행히도 오늘날 상당수의 젊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며 왜 계속 이런 위기를 낳는지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많은 수가 자본주의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고 사회주의에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투쟁을 통해서만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또 인간의 필요에 기반해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발제자의 정리
활발한 질문 감사합니다. 최대한 답변해 보겠습니다.
먼저 신자유주의가 죽었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지금은 1980~1990년대 상황과 다르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렇다고 해서 1950년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의 어떤 요소들은 남겠지만, 또 어떤 요소들은 없어지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은 분명 계속될 것입니다. 자본가들과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유지하려는 시도도 계속될 것입니다. 팬데믹 시기에는 엄청난 액수의 정부 돈이 민간 자본을 살리는 데 투입됐는데, 영국의 사례처럼 부패한 정경 유착을 통해서 그 돈이 지급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국가가 경제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 자체가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물론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국가는 일정하게 경제에 개입했습니다. 다만 지금은 훨씬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죠.
단지 기업만이 아니라 고용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개입합니다. 예컨대 영국의 보리스 존슨은 보수 우익이지만 그의 정부는 팬데믹 동안 무급휴직 제도를 통해 전체 노동력의 30퍼센트에 이르는 고용을 지원했습니다.
존슨이 왜 총리직에서 조만간 쫓겨날지 대해서 조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영국의 1차 록다운 시기 동안 보리스 존슨이 총리 관저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존슨은 ‘그게 방역 수칙 위반인 줄 몰랐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수칙을 만든 게 그 자신인데도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의 분노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이 쫓겨나게 된 것은 또한, 그가 신자유주의의 요소들을 포기하면서 이런저런 임기응변으로 위기에 대처해 온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리스 존슨 정부 내각에는 대처주의자들, 아주 강경한 신자유주의 우파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그는 영국의 옛 제조업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노동당에 투표하던 사람들에게서도 상당한 득표를 했습니다.
즉, 그의 정치 기반이 굉장히 불안정한 조합을 이루고 있는데, 지금 상황은 위기가 깊어지면서 불안정한 요소가 곪아 터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공식 정치에서 좌파적 대안이 굉장히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코빈의 도전이 패배하고 나서 영국 노동당은 오른쪽으로 아주 멀리 이동했습니다.
우리는 노동계급 자신의 투쟁에 집중해야 하고 노동당 왼쪽에서 발전하고 있는 새로운 급진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국 같은 상황에서 좌파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국가 개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질문해 주셨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순수한 국가자본주의 사회로도 갈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이후의 소련처럼 말이죠.
하지만 현재로서는 세계시장이 개별 국가에 가하는 압력 때문에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들이 순수한 국가자본주의로까지 나아갈 가능성에는 여전히 여러 제약이 존재합니다.
계속되는 국가 개입이 경제의 정체를 불러온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왜 수익성도 없는 기업을 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느냐고 문제 제기합니다.
이 문제를 두고 지배계급 내에서도 국가 개입을 어디까지 끌고 나갈 수 있겠느냐 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논쟁에서 이들이 마주한 선택지는 장기화된 정체, 아니면 급격한 침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것도 그다지 탐탁치 않기 때문에 지배계급 내에서 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떤 분이 미국의 구인난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그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른바 “대(大)퇴직 물결” 현상에 대해 여러 논쟁이 있습니다.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도 이른바 “대(大)퇴직 물결”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의 분석인즉,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려 주기 전에는 ‘일 안 하겠다’ 하며 사실상 전국적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 말이 사실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진즉 퇴직하거나 이직했을 사람들이 [팬데믹이 촉발한 급격한 경제 위기 속에서] 일을 그만두지 않고 버티다가 가을 무렵에 경기가 좀 풀리니까 그때 가서 일을 그만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비슷한 일자리로 이직할 것입니다.
특정 부문에서 일시적으로 인력 부족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 상황만으로 노동자들의 처지를 크게 개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투쟁이 필요할 것입니다.
팬데믹을 둘러싼 사람들의 정당한 분노를 이용하려 드는 우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질문해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두 가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인종차별적 우파들이 록다운이나 백신 같은 조처에 대한 반대를 통해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정치 위기가 심화할수록 인종차별적 선동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보리스 존슨은 영국 해군을 영국-프랑스 해협으로 파견해서 이주민과 난민을 단속하겠다며 자신의 정치 위기를 타개하려 합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저희는 이런 우파의 준동을 막으려고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백신 접종 의무화나 백신패스 등에 찬성하게 되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강력하고 더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백신에 두려움을 품는 보통 사람들에게 백신을 강제 접종시키려는 국가의 움직임에 가담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노동계급 대중에게 우리가 왜 백신을 접종받았고 왜 그들도 접종을 받아야 하는지 설득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질문이 좀 나왔는데요, 그에 대해서도 답변을 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우리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중국을 공격하는 것에 반대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과 영국, 호주, 뉴질랜드는 핵잠수함이 남중국해를 순찰하도록 하는 협약에 서명했습니다. 저는 영국 사회주의자이므로 영국 정부의 이런 공격 행위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주의적 대안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든 자본과 국가 사이에는 상호 의존성이 있습니다. 중국도 국가자본주의와 시장자본주의가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돼 있는 체제입니다.
게다가 중국이 오늘날 억압받는 국가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중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2위이고 군사력 규모도 세계적으로 손꼽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투쟁들, 예를 들어 홍콩의 민주주의 항쟁을 지지하고 또 중국 본토에서 벌어지는 착취에 저항하는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도 지지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칠레에 관한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가 대통령이 된 것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품는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그는 칠레에서 벌어진 투쟁들에 힘입어 당선된 거니까요.
그러나 보리치가 제시하는 정치·경제 공약들은 사실 상당히 온건합니다. 그를 선출한 노동자들의 염원이 실현되려면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처럼 칠레 좌파 대통령의 사례도 다른 급진 좌파들과 비슷하게 급속히 권력에 오르지만 금세 시험대에 오르는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개혁주의 좌파 프로젝트가 실패할 때마다 국제 좌파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다른 프로젝트로 눈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시리자가 위기에 처하자 포데모스에 희망을 걸고, 포데모스가 위기에 처하니 제러미 코빈에게 희망을 걸고, 그러다가 이제는 칠레로 옮겨간 것이죠.
우리는 이런 정치가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이런 좌파 개혁주의에 영감을 받는 많은 세력들과 함께 투쟁하면서도, 이들을 더욱 명확한 반자본주의 정치로 끌어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에서 우리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하고 있는 일이고, 또 한국의 노동자연대 동지들이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비전에 공감하신다면 여러분도 노동자연대에 가입하시기를 권유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