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와 노동조건 후퇴 낳을 ‘공공부문 혁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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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10월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13년 만의 정부 예산(안) 축소를 자화자찬하며 “공공부문부터 솔선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공공부문 ‘개혁’(개악)을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해 왔다. 이는 공공부문을 시장에 내맡기고(민영화), 인력을 줄이고(구조조정), 노동자들의 조건을 낮추겠다는(임금 억제)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가가 제공해야 할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악화시킬 것이다.
정부는 7월 말 발표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서 이같은 내용의 방향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인력 감축
이에 따라 최근 350개 중앙 공공기관들은 인력 감축 계획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그 내용을 종합해 보면, 내년까지 6735명(전체 정원의 약 1.5퍼센트)을 줄이겠다는 게 골자다.
그중에서도 청소·시설관리·상담 업무를 담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대상자에 올랐다. 예컨대,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감축 대상 인원이 2000여 명인데, 다수가 무기계약직이다. 불과 2~3년 전에 자회사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 업무들이 운영에서 필수적인 점을 고려하면, 결국 도로 외주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는 현원이 정원보다 적기 때문에 그에 맞게 정원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서 얘기하면, 기존 노동자들이 정원보다도 적은 인원 때문에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시달려 왔다는 뜻이다.
가령, 235명을 감축하기로 한 코레일네트웍스의 경우 지금도 인력 부족으로 주 52시간제를 위반하는 일이 다반사다. 인천공항공사의 자회사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주 6일을 일한다.
심지어 국립대병원들도 423명을 감축하겠다고 내놨다. 팬데믹 상황에서 취약성이 드러난 공공병원과 인력을 대폭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증원된 간호 인력들을 줄이겠다고 한다. 코로나 재확산 우려가 계속되는 데도 말이다.
더구나 인력 감축 대상으로 꼽힌 6735명에는 각 지자체가 운영 중인 지방 공공기관의 감축 규모가 제외돼 있다. 최근 서울교통공사는 1000여 명 구조조정안을 제시했다.
공공부문 인력 감축은 공공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안전을 위협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심각한 실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는 취업의 문을 더 좁히는 효과를 낸다.
안전을 위협하는 민영화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은 예산 절감, 자산 매각, 민영화, 외주화 등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350개 중앙 공공기관들은 향후 5년간 22조 6000억 원 가량의 자산 매각 계획을 내놨다. 행정안전부는 부채 비율이 400퍼센트 이상인 출자·출연 기관에 대해서는 자본을 회수하고, 민간 기업들과 유사·중복·경합 중인 사업에 대해서는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한국전력이 가격을 통제하는 전기 판매 부문을 민영화 하고, 철도 차량정비 업무를 외주화하고, 의료 영리화를 추진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정부 방침에 따라 지방 공공기관들도 민영화 채비에 한창이다. 가령, 대구교통공사는 3호선을 민영화 하겠다고 밝혔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은 무인 자동운전 시스템이라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운행관리요원(총 108명)이 탑승하는데, 이들을 모두 외주화하려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역사 누수관리 업무, 5~8호선 궤도 유지·보수업무를 위탁할 계획이다. 2호선 열차의 경우 2인 승무를 1인 승무로 바꾸려고 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민영화가 당장의 재정 지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세금으로 민간 기업들의 이윤을 보전해 줘야 해서 재정 적자 줄이기 목적조차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요금은 오르고 안전 관리가 소홀해지고 공공서비스가 후퇴했다. (관련 기사: 본지 420호 ‘전력·철도·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 민간 기업들만 배부른 것이다.
한편, 한전과 발전 자회사(6곳)들은 올해 하반기에만 발전 정비 예산을 970억 원이나 감축하기로 했다. 기재부가 ‘혁신 가이드라인’에서 경상경비를 10퍼센트 줄일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발전 정비 예산 감축은 정비 횟수 감소나 정비 주기 연장(2년에서 3년으로)으로 이어지고, 이는 안전사고 위협을 키울 수 있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임금 억제와 임금체계 개악
이미 정부는 내년도 공무원 임금 인상율을 1.7퍼센트, 공무직(무기계약직)은 2.2퍼센트로 결정했다. 물가 폭등 상황을 감안하면 실질임금의 대폭 삭감이다. 그리고 이는 민간부문 등 노동시장 전반의 임금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
정부는 좀더 중장기적으로 인건비를 줄일 요량으로 공공기관경영평가(성과급과 연동)를 무기로 임금체계 개악도 압박하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 해소, ‘공정과 상생’ 운운하며 직무성과급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위선이다. 비정규직을 늘리고 그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처우를 강요해 온 것은 다름아닌 정부였다. 당장 윤석열 정부가 하는 공공기관 혁신안 자체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처우개선 대신 구조조정의 칼날을 선사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직무성과급제는 임금 격차 완화는커녕,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노동자들 간 성과(수익성) 경쟁으로 격차를 늘리는 것이다.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생계비 위기에 대응하는 임금 인상 압력을 약화시키고, 경제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인건비를 억제해 재정 지출을 줄이고, 경제 위기 대응력(기업 지원 능력)을 키우려 한다. 정작 5년간 부자들과 기업주들에겐 60조 원의 감세 혜택을 주면서 말이다.
윤석열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절감한 정부 재원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 봤듯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방안들은 죄다 공공서비스와 복지, 일자리, 임금 등을 공격하는 것으로, 평범한 노동계급 사람들의 삶을 악화시킨다.
양대노총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10월 29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연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11월 10일 하루 공동 파업을 예고했다.
윤석열 정부가 심각한 다중 위기 상황 속에서 우파적·반노동 공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20퍼센트대의 낮은 지지율에서 보듯 결코 자신만만한 상황이 못 된다. 지난 주말에는 수만 명이 참가한 윤석열 퇴진 시위도 벌어졌다.
윤석열 정부의 개악 공세에 맞선 노동자 저항이 확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