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전국노동자대회:
수만 명이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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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22 전국노동자대회’가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렸다. 중간중간 굵은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9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해 이 일대를 가득 메웠다.
올해 전국노동자대회는 157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로 인해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노가 커지는 상황에서 열렸다. 정부가 고물가·고금리 정책으로 대중의 생계비 위기를 부채질하고, 노동 개악, 민영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등을 시도하는 것도 커다란 불만을 사고 있다.
이날 대회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역력했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중대재해로, 물가 폭등으로, 대출이자 폭등으로, 손배·가압류로 노동자 민중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이대로는 못 참겠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
공무원노조 소속 119 소방대원들은 이태원 참사 당일 벌어진 아비규환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신발이 어디로 갔는지 무릎이 까지는지도 모르고, 바지에 소변을 지리면서도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 아직도 소방대원들은 경찰 조사에 끌려 다닙니다.” 노동자들은 정부의 꼬리 자르기와 책임 전가를 규탄했다.
건설, 파리바게뜨, 학교급식 등 노동자들은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우리도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고 외쳤다. 잇따른 산재 사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구멍 숭숭 뚫린 중대재해처벌법마저 개악하려 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급식실 환경 개선을 위해 11월 25일 하루 파업을 한다고 밝혔다.
농촌진흥청(정부기관)의 공무직인 김금숙 지부장은 “비정규직이라고 단 1원의 수당도 받지 못하”는 차별 실태를 고발했다. “반노동으로 폭주하는 윤석열 정부의 막장 열차를 막아야 합니다!”
“막장 열차”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강하게 성토했다. 철도, 의료, 발전 등 공공서비스와 복지를 망치고 있다는 정당한 제기였다.
전국택배노조 김태완 수석부위원장은 정부의 노조 탄압(구속영장 남발, 택배 파업 대체인력 투입을 위한 법 개악 추진)을 규탄했다. “노조 탄압, 전쟁 위기, 민생 파탄, 반민주 역행, 노동 개악. 윤석열은 도대체 누구의 대통령입니까?”
노동자들은 윤석열 퇴진 주장에 관심을 보였다. 〈노동자 연대〉와 민중민주당이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리플릿을 조합원들에게 나눠 줬다.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리플릿을 반포한 좌파는 이 두 단체밖에 없었다. 〈노동자 연대〉는 리플릿에서 “민주노총이 윤석열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 연대〉 리플릿을 주변에 직접 나눠 주겠다고 하고, 또 “퇴진!”을 외치며 반겼다. 기층 선진 부위의 분위기는 민주노총 지도부처럼 퇴진 요구에 선을 긋지는 않는 듯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조직쟁의실장은 공개 안내 방송을 통해 〈노동자 연대〉와 민중민주당에 리플릿 반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고, 조합원들에게는 리플릿을 받지 말라고 단속했다.
‘민주노총 중집이 성폭력 2차 가해단체에 대해 연대 중단을 결정했다’는 점을 의견 표명 제지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민주노총 중집은 제대로 된 진상조사도 하지 않고 이런 관료적 결정을 내렸다), 실은 민주노총 집행부가 운동의 방향을 둘러싸고 중차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윤석열 퇴진을 지지하는 급진적 의견이 조합원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다.
노동자연대 회원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연단 앞에서 당당히 항의했다.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무시하는 겁니까!,” “민주적 기본권 침해하지 마세요!,” “나도 민주노총 조합원인데, 지금 나가라는 겁니까!”
민주노총 집행부의 리플릿 반포 제지 방송 뒤에도 적잖은 노동자들이 리플릿을 잘 받았고 열심히 읽는 모습도 눈에 많이 띠었다. 기층에서 자라는 윤석열 퇴진 정서를 민주노총 지도부가 거스르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윤석열 퇴진 요구로 수렴시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이태원 참사 문제에서 윤석열의 사과만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선거 “심판”을 강조했다. “노동자·민중을 적으로 돌린 윤석열 정부를 심판합시다. 중단된 정치세력화에 다시 시동을 겁시다.” 1년 반 뒤인 2024년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진보대연합 후보들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자는 것이다.
윤석열의 당면한 공격들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고, 윤석열 퇴진 집회가 만만치 않은 규모로 주말마다 열리는 상황에서, 2년 후 총선 심판론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조합원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그러다가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윤석열은 탄압을 강화하며 반격에 나설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440호 ‘이렇게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그게 그거다?’)
한편, 전국노동자대회에 이어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이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민 추모 촛불’(이하 시민 촛불)이 열렸다. 시민 촛불에는 4000여 명이 참가했다.
연단에 선 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 대표들과 민주노총 위원장,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윤석열에게 철저한 진상조사, 총리를 비롯한 각료 해임 등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한 철도 노동자는 말했다. “윤석열 퇴진 구호를 당장 내걸기보다는 윤석열이 책임지라고 하는 정도에서 투쟁을 시작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이 집회에 참가했어요.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윤석열 얘기는 별로 없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하니,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같은 시각 대통령실 인근에서는 윤석열 퇴진 촛불(관련 기사: 본지 440호 ‘궂은비에도 수천 명이 윤석열 퇴진을 외치다’)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