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 세속주의,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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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탈라트 아흐메드는 인도 출신 영국 거주 사회주의자로, 2005년 여름 ‘다함께’가 주최한 반자본주의 포럼 ‘전쟁과 변혁의 시대’에서 이슬람과 문화·예술과 인종에 대해 연설했다. 이 글은 그 중 ‘이슬람주의, 세속주의, 사회주의’라는 주제로 행한 연설을 녹취한 것이다.
[2001년부터] 지난 4년 간 이슬람에 대한 악마화가 진행돼 왔습니다. [2005년] 7 · 7 런던 테러 이후 영국에서는 무슬림들에게 자살폭탄테러범, 광신도, 야만인, 미개인 등의 수식어가 반사적으로 따라붙었습니다. 당연히 이 수식어는 미국과 영국 군대에 맞서고 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저항세력에게도 똑같이 적용됐습니다. 즉, 이것은 이슬람의 테러와 문명이 충돌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에는 서구의 유력한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즉, 무슬림들은 광신적이고 편협한 종교를 믿는 미치광이들, 광신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폭탄 테러는 이슬람과 그 경전의 편협함에서 비롯한 것이고, 이것을 그 밖의 어떤 것과도 연관지을 필요가 없다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블레어는 무슬림 지역사회가 그들의 가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최근 무슬림 지역사회의 모스크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7 · 7 런던 테러가 발생한지 4일 뒤, 노팅엄에서 한 무슬림이 살해당했습니다. 또 모든 무슬림들, 즉 갈색 피부를 가진 이라면 누구든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런던 남부에서는 사복경찰이 브라질 청년을 쏴 죽인 것입니다!
좌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우익 언론과 정치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게다가 영국의 자유주의 언론인 〈가디언〉의 폴리 토인비는 급진 좌파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동조자”와 다름없다고 비난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평범한 사람들을 겨냥한 폭탄 테러에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이번 런던 테러에서 희생된 한 아프리카계 여성은 제가 사는 해크니에 거주하는, 대학 병원의 응급실에서 일하던 청소부였습니다. 또 다른 남성 희생자 중에는 2003년 2월 15일 런던 반전 시위에 참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시 지하철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들은 완전히 불타버려 오직 손목의 밴드를 통해서만 식별이 가능했는데, 그 밴드에는 ‘빈곤을 역사의 유물로 만들자’는 표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무슬림들을 혐오하거나 자국을 위해 전쟁을 수행한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폭탄 테러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는 또한 무슬림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 즉 무슬림들이 공공 장소에서 줄지어 협박당하고 비난받는 것에 분명히 반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혐오스럽고 역겹고 수치스런 일입니다. 1999년 런던 중심부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려 한 사람을 살해한 폭탄 테러범이 기독교도란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폭탄 테러범은 나찌였습니다. 또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크로아티아 가톨릭 신자들이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한 것에 대해 교황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유력한 관점은, 이슬람이 굉장히 획일적인 종교이자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이슬람이 야만적 행위들을 지지하는 것에서 보듯 매우 독특하고 여느 종교들과는 다르다는 믿음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이슬람은 다른 여러 종교들처럼 모순적 사상으로 가득 차 있고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은 종교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눈에는 눈”이라는 말은 그 후진성과 야만성을 보여 줍니다. 영국에서는 여성 성직자 문제나 동성애자 결혼 등의 문제 때문에 성공회가 분열됐습니다. 또 기독교인 가운데 해방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국 정부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매섭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슬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이슬람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같은 군부 독재자의 종교인 동시에 전 세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믿는 종교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불행하고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일종의 위안을 가져다 주는 신념이 바로 종교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종교가 단지 사람들의 아편[마르크스 시대에 진통제로 널리 쓰였다]일 뿐 아니라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자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라고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의미 없는 세계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종교 사상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슬람은 결코 획일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여느 종교처럼 이슬람도 사회적 위기들로 신음하던 특정 사회에서 출현했고 따라서 그 사회를 구성한 사회 세력 간의 모순과 혼란이 반영돼 있습니다. 이슬람은 7세기경 아라비아에서 출현했습니다. 당시 아라비아는 파벌 간 갈등과 부족 간 다툼으로 갈갈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폭력과 억압은 그러한 사회들의 고유한 특징입니다. 예언자 무하마드의 군대는 무자비한 폭력에 기초해서 통치했고 정당한 것처럼 보이는 사회 질서들을 강요했습니다. 아라비아 반도 전역에 이슬람이 퍼졌을 때, 무하마드는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법칙을 규정했습니다. 이 법칙에서는 움마(신자들의 공동체)의 기치 아래서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 법칙들은 다른 사회 세력들에게 제 각각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에 맞서 저항할 권리는 없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거나 학대해선 안 되지만 동시에 여성이 남성의 권위에 도전할 권리도 없습니다.
이슬람 역사를 통틀어 이런 식의 모순과 해석은 계속 있어 왔고 경쟁하는 파벌들은 자신만이 무하마드의 가르침에 걸맞는 후계자임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런 갈등은 다수의 수니파와 소수의 시아파로 이슬람의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지난 약 2백50여 년에 걸친 이슬람의 역사는 이슬람 경전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둘러싸고 경쟁 그룹들끼리 잔인무도하게 투쟁한 역사였습니다.
1757년[영국의 동인도회사가 벵골 지역을 장악한 해] 이래로 서구 열강이 무슬림 세계와 그 밖의 지역을 체계적으로 지배하는 체제가 갖추어졌습니다. 인도, 걸프지역,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 북아프리카 등이 그 예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식민지들이 속속 독립하기 시작했고 이들 지역에 살던 무슬림들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정의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사뭇 달랐습니다. 중동은 극단적인 빈곤과 풍요가 공존했습니다. 석유에서 얻은 이익은 대중을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셸, 핼리버튼과 같은 석유기업들과 그 나라 지배자들이 이윤을 얻었습니다. 이 자들은 농민, 노동자, 이주노동자, 노예를 착취하고 학대하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한가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에 골프 코스, 별 다섯 개짜리 호텔, 카지노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이집트처럼 일체의 자유선거가 부정되거나 모든 형태의 민주주의가 부정되거나, 민주주의가 있다 해도 미국식 민주주의 ―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처럼 미국이 선택한 관료들이 통치하는 ― 만이 존재합니다.
토착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종교적으로 경건하고, 계급이나 지위에 따른 차별이 전혀 없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대표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섹스와 알콜 소비, 복장에 대한 종교적 계율을 거리낌없이 무시합니다.
이런 토착 지배계급 뒤에는 어마어마한 세력이 숨어 있는데, 그것은 다들 알다시피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입니다.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쿠웨이트, 파키스탄 등의 정권들은 붕괴해 버릴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같은 운명일 것입니다.
영국의 무슬림들은 자신을 무슬림으로 생각하며 다른 지역의 무슬림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들과 동일한 시각에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이슬람 지배자들을 서방 제국주의의 꼭두각시들로 여깁니다.
이슬람과 이슬람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슬람은 기독교 · 불교처럼 10억 명이 넘는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입니다. 반면,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에 대한 특정한 해석에 근거한 정치 신념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슬람주의를 근본주의나 정치적 이슬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슬람주의자입니다. 근본주의자가 아니라 이슬람 부흥주의자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근본주의는 현대 세계를 거부하는 것, 그리고 일종의 전통주의와 사회적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이슬람주의 운동에 이런 요소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된 성격은 아닙니다.
그들의 부흥주의는 국가와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것을 뜻할 수 있는, 일종의 쇄신입니다. 이것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무장 투쟁에서 핵심적 구실을 하는 이유입니다. 또 이슬람주의 학생들이 1979년에 이란에서 아시아 최대의 라디오 방송국을 폐쇄하고 미 대사관을 점거했던 이유이고, 이란의 무자헤딘이 1979∼1982년에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을 지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슬람주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동에서 이슬람주의 운동의 성격을 살펴봐야 합니다. 다양한 이슬람주의 운동의 기저에 있는 사회 세력들을 보면 그들이 결코 동일하거나 동질적인 운동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회적 기반은 크게 네 가지 사회 집단들 ― 이슬람 경전을 해석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가르치는 ― 로 나뉩니다.
첫째, 옛 착취자들의 이슬람주의는 전통적인 특권층으로 자본주의 현대화 과정에서 자신들의 지위와 부를 잃게 된 것에 불만을 가진 자들의 이슬람주의입니다. 대개 지주거나 전통 상인인 이들은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이슬람 사원에 재정을 지원하고 성직자들에 의지했습니다. 1960년대에 알제리와 이란에서 이들은 토지개혁에 반대했습니다.
둘째, 새 착취자들의 이슬람주의가 있습니다. 이들은 몇몇 경제적 수단들을 손에 넣은 자본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은 자본주의 현대화 과정에서 성공했지만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있는 전통적 부르주아들에 의해 여전히 주변부로 밀려나 있습니다. 이란에서 이들은 경제 정책이 샤[이란 국왕의 칭호] 주변의 전통적 부르주아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상인 출신의 호메이니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배계급 내에서 소수이고 중요한 계급 세력은 아닙니다.
셋째, 빈민들의 이슬람주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혼란과 불확실성, 빈곤을 불러 왔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은 직업을 갖지 못한 채 두터운 실업자층을 형성합니다. 낯설고 이질적인 도시에서 이들에게 익숙한 것이라곤 이슬람 사원뿐입니다. 이슬람주의는 현대화나 토지개혁에서 이익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습니다. 알제리에서는 1980년대 경제위기 때문에 국가 관료제를 경영하는 서구화한 엘리트들과 대중 사이의 격차가 급증할 때 이슬람주의가 성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중간계급의 이슬람주의가 있습니다. 이 계급은 활동가들을 배출하는 진정한 토대를 제공합니다. 7 · 7 런던 테러의 주역들은 대학에서 교육받고, 철저히 서구화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적들에 맞서 부상과 투옥, 죽음을 무릅쓸 만큼 투철한 간부들을 제공하는 계급입니다. 탈레반은 과학도 출신들이 많았고 9 · 11 테러의 주역들도 이에 해당합니다.
사실, 쁘띠부르주아야말로 이슬람주의자들의 힘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계급적 기반입니다. 이들은 이슬람주의의 기반일 뿐 아니라 파시스트 조직 ― 인도의 RSS와 쉬브세나 ― 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여성과 좌파, 세속주의에 적대적이기 때문에, 좌파의 일부가 이슬람주의자들을 파시스트로 오인하기도 합니다. 일부 좌파가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자 조직에 적대적인 것은 파시스트만이 아닙니다. 제3세계 민족주의자들, 마오주의자들, 페론주의자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쁘띠부르주아 계급은 오직 역사상 특정 시기, 즉 그들이 특별한 구실을 할 수 있을 때만 파시스트로 변모합니다. 그 구실이란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때 쁘띠부르주아를 동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이용해 자본가들과 한편이 될 준비가 돼 있는 폭력 집단으로 변모해서 노동자 조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트로츠키는 중간계급이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세계적 위기의 시기에 자본가 계급을 구원해 줄 존재가 자신들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국가기구와 제국주의에 반대합니다. 좌파들이 이들에게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인다면 그들은 이슬람주의 운동이 자본주의적 이해관계 때문에 어떻게 동요할 수 있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기반의 모순된 성격은 이슬람주의자들이 왜 일관되게 사회 변화를 성취할 수 없는지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진실은, 이슬람주의 운동의 계급적 기반, 즉 교육받은 중간 계급들, 쁘띠부르주아는 그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흡수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회 변화를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운동이 그런 예입니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세속 정당인 와프드당이 영국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데 실패하자 그에 대한 환멸을 배경으로 1930∼40년대에 성장했습니다. 간부층은 주로 공무원과 학생 출신이었고 그밖에 도시 노동계급과 농민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전체 회원은 약 5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조직의 지도자였던 바나는 이집트 왕가 주변의 인물들과 협력하려 했고 와프드당의 우익들은 무슬림형제단을 노동자와 학생 사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던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할 세력으로 여기게 됩니다. 무슬림형제단은 사회 개혁을 공공연히 약속하는 종교 언어를 사용함으로써만 공산주의자들과 경쟁할 수 있었고 이것은 와프드당의 우익들보다 훨씬 왼쪽으로 나아간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 초래됐고, 1950년대 초 심각한 위기가 파업과 집회를 촉발시켰고 팔레스타인에서의 군사적 충돌, 수에즈 운하 지역에서의 게릴라 전투 등이 이집트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1956년 나세르가 정권을 잡았을 때, 무슬림형제단의 일부는 그를 지지했고, 나머지는 그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나세르는 운동을 파괴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했기 때문에 무슬림형제단의 이런 정치적 실수와 내부 분열은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의 지도부들은 투옥되거나 처형당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나 사고가 아닙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한 쁘띠부르주아지가 초래한 결과입니다. 이집트에서 정치적 · 경제적 위기가 심화했을 때, 무슬림형제단에는 이슬람의 가치들과 자신들의 급진적 요소들 ― 진정한 사회 변화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무장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 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옛 지배계급과 거래하기 위해 위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경험은 정치적 이슬람의 전반적 프로젝트에서 빗나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핵심에 가까웠습니다.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운동은 아마도 그들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했지만 엄청난 패배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들 가운데 일부는 그 지역을 지배했던 좌파 전통 ― 특히 아랍민족주의 ― 의 실패와 밀접히 연관돼 있었습니다.
알제리의 사례가 그것을 보여 줍니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이 이끈 민족해방운동이 프랑스를 축출했습니다. 그리고 독립 이후 FLN이 계속 권력을 장악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점차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내내 지속된 내전[이 내전으로 10만 명이 죽었다]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내전은 1992년에 ‘이슬람구국전선(ISF)’이 성장해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가 선거를 무효화하면서 촉발됐습니다. ‘이슬람구국전선’은 선거를 통한 국가 권력 장악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FLN이 지배하는 국가에 의해 차단되자 급진 이슬람주의 경향들은 무장 봉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강력한 좌파 전통, 즉 공산당의 실수도 이슬람주의자들의 성장에 일조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집트공산당은 국가가 이슬람주의자들을 탄압할 때 국가를 지지해 왔습니다. 그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이 파시스트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좌파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을 모종의 사회주의자나 혁명가 또는 진보적 세력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란에서는 1979년에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주요 좌파 정당이었던 투데당이 호메이니를 지지했고 그들은 호메이니가 모종의 사회주의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호메이니가 파시스트라고 비난하는 다른 좌파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이 둘 모두 틀렸습니다. 그렇다면 좌파는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첫째, 이슬람주의자들은 동질적 집단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사회 부문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계급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둘째, 이슬람 교리를 여느 종교와 다른 특별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모든 종교에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셋째,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비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 좌파들이 이러한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것은 완전히 재앙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일부 좌파들은 이슬람을 완전히 악마화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국가가 소녀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표했을 때 프랑스의 일부 좌파는 이를 지지했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반전 시위대가 무슬림 시위대와 그 나머지 시위대로 분열한 것입니다. 이것은 프랑스 좌파들이 누군가 여기 강연장 벽에 붙은 포스터의 인물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봤을 때, 그를 곧 이슬람 테러리스트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도 일부 좌파는 이와 똑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좌파와 반전 운동의 다수는 이러한 사람들이 전쟁, 제국주의, 억압에 맞선 투쟁에서 우리의 동맹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해 왔습니다.
그들은 세속적 좌파나 사회주의자를 자극하는 것과 똑같은 일들에 의해 자극을 받습니다. 그것은 전쟁, 제국주의, 빈곤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함께 행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천사가 지금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는지 아닌지 따위에 대해 서로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웃음) 우리가 기본적으로 똑같은 적에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발언
저는 무슬림들이 모두 똑같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지배자들과 대중매체들이 흔히 무슬림에 붙이는 [정치적] 딱지들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슬림들 사이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로 연결될 가능성을 무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분이 파키스탄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무슬림들이 서로를 비판하는지 지적해 주셨습니다. 일례로, 카라치 같은 곳에서는 일부 수니파 무슬림들이 시아파 모스크들에 폭탄을 던집니다.
어떤 이슬람주의자들은 파키스탄의 한 주를 통치하는데, 이들의 가르침은 파키스탄 내 다른 무슬림들의 가르침과 많이 다릅니다.
한편에는 무샤라프 대통령과 타협하는 이슬람주의 집단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무샤라프에 맞서 싸우는 집단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나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등 아래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무슬림형제단 내에 갈등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곧 있을 선거에서 무슬림형제단은 다른 정당이나 무바라크에 저항하는 운동과 연합해서 선거에 뛰어들 것입니다.
무슬림형제단 안에는 무슬림형제단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여러 입장이 혼재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무슬림형제단이 사회주의자나 심지어 무신론자 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도 무바라크에 저항하는 운동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무슬림형제단 내에는 그 반대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좌파를 불신하며 사회주의자들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에 저항하는 사람,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는 사람,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동맹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습니다.
따라서 이집트 좌파들이 무슬림형제단과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실수일 것입니다. 하지만 무슬림형제단과 동맹을 맺더라도 좌파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해야 합니다.
정치적 독립성을 지킨다는 것은 먼저 이슬람주의자들을 파시스트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동시에 이슬람이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제가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유럽 좌파들이 어떻게 해야 무슬림들과 함께할 수 있을지에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영국 반전 운동의 성공은 좌파들이 무슬림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이슬람을 우리의 적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영국무슬림협회(MAB)는 무슬림에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좌파들이 무슬림을 가장 잘 방어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이 억압받는 자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는 레닌의 말을 기억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이 영국에서 무슬림들을, 그리고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속죄양 삼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우리가 되도록 가장 크고, 아주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반전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그 안에서 무슬림들을 방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