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악하고 이중적인 윤석열의 “법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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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툭하면 “법치주의” 운운하며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한다. 특히 노동자 투쟁 등 저항을 억압할 때 “법과 원칙”을 앞세운다.
윤석열은 화물연대 파업이 벌어지자 “법을 지키지 않으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법치주의가 확립된다”며 탄압을 지시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때 윤석열은 “노사를 불문하고 산업현장에서 법치주의는 엄정하게 확립돼야 한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윤석열의 법치는 “노사를 불문”하지 않는다. 저 말을 하고 윤석열은 경찰 투입을 준비시켰다.
반면, 윤석열의 “법과 원칙”은 기업주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다.
윤석열은 법무부 장관 한동훈에게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벌 규정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법령 한 줄, 규제 하나에 기업의 생사가 갈릴 수 있다”면서 “경제형벌 규정도 … 원점에서 과감하게 재검토를 해 나가야 한다” 하고 말했다.
윤석열의 “법치”는 “기업의 생사” 앞에선 뒤로 숨지만,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서면 좀비처럼 죽지 않고 되살아난다.
윤석열은 MBC 기자단의 취재 전용기 탑승 거부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국익 앞에 복종하라’는 식으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게 헌법 수호인가?
윤석열이 노동자 대중의 안전을 무시하는 것만 봐도 헌법 수호 운운이 가당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은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고 말해 놓고는, 정작 이태원 참사의 책임은 회피한다.
핵발전 관계자들에게는 “지금 여기 원전 업계는 전시다…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핵발전소 안전을 우습게 보는 자에게 이태원에서 희생된 158명은 안중에도 없을 듯하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산재 현장에서 “이건 그냥 [산재를 당한 노동자] 본인이 다친 것이고, 기본적인 수칙을 안 지켜서 이런 비참한 일이 발생한 것”이라며 사망한 노동자를 탓했다.(사람인가?)
윤석열은 국가의 억압적 기능과 대중 통제를 강화해 왔다. 저항하지 말고 정권이 정한 선을 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윤석열 “법치주의”의 실체다. 준법 운운에 위축되지 말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