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을 키우는 억압과 자본주의적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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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교육부와 국민의힘이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관련 당정협의회를 열어 학교폭력 징계 기록 보존 기간을 연장하고, 대입 수능 위주 전형에도 반영하기로 사실상 확정했다. 최근에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이 학교폭력 가해자인 아들을 비호한 전력이 드러나 사회적 공분이 일자 서둘러 처벌 강화를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학교폭력이 사람들의 공분을 사는 일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거의 매년 학교폭력 사건이 터진다. 올해는 유명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유력한 1위 후보가 학교폭력 가해 논란으로 하차하기도 했다.
‘학교폭력은 미세먼지처럼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교 내 괴롭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널리 퍼져 있는 소외의 전형이 되고 있다.
학생들의 학교 생활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마주하는 상황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학생들은 공부할 내용과 과정에 전혀 영향력을 미칠 수 없고,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시간을 박탈당하고, 경쟁 관계에 내몰려 동료와 소외된다.
같은 연령의 학생 수십 명을 한 공간에 강제로 밀어 넣고, 세대가 다른 성인을 관리자로 두는 학교의 생태는 매우 폭력적인 조건이다(육군훈련소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는 학생들 사이에 돌봄이나 연대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다툼을 부른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신분이 없는 사회라지만 계급에 따라 삶의 평균치가 결정되듯이, 교실에서는 ‘일진’과 ‘찐따’ 그리고 그냥 평범한 애들로 위계가 만들어진다.
거기에 치열한 입시 경쟁은 학생의 소외를 심화시킨다. 학생 대부분은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에 빠지고, 일부 학생들은 다른 학생을 쥐고 흔드는 것으로 거짓 자존감을 얻으려고 한다.
게다가 오랫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학생들의 개인주의가 강해졌다. 같은 반이어도, “쟤는 내 친구 아닌데요” 하고 대답하는 데서 보듯이 학생들의 관계는 파편화돼 있다.
학생들은 방과 후에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학원을 돌다가 집에 가고, 같은 반 학생의 학부모들도 대부분 완전히 남이다. 친구는 단짝이나 소그룹으로 이뤄지는데, 단짝을 못 찾거나 소그룹에 끼지 못하면 왕따가 되며, 소그룹에 끼더라도 그 안에서 평등하지 못해 괴로움을 겪기 일쑤다. 이를 벗어나려고 스스로 ‘아싸’[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학교폭력은 자본주의에 의한 대중 소외와 기성체제의 폭력·억압을 반영하는 것이다.
처벌 강화로는 해결되지 못한다
정순신 사건으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자,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중대한 학교폭력에 대한 징계 기록 보존 기간을 늘리고, 수능 위주 전형에도 학교폭력 징계를 더 확실히 반영하겠다고 한다. 또, 취업 때까지도 이 기록을 보존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이미 재작년에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징계 기록을 졸업과 함께 삭제하도록 하는 현행 규정을 개정하고 기록 보존을 최장 10년까지 늘리는 법안을 상정한 바 있다.
피해자는 자살 시도까지 하고 제때 진학하지 못했는데, 가해자는 부모의 지위를 이용해 상위 유명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박탈감과 분노는 당연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처벌 강화’는 학교폭력의 대책이 못 돼 왔다.
2011년에도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사회 문제로 부각된 바 있다.
당시에도 정부는 교육부 장관이었던 이주호를 중심으로 처벌 강화 기조와 학생부 기재를 대안으로 내놨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형태를 바꾸었을 뿐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학교 현장에서 담임교사들은 일 년만 사건이 터지지 않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한다. 폭력 사태로 드러나지 않는, 유치원·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괴롭힘·따돌림 현상도 광범하다.
정부는 교육부가 매년 실시하는 실태 조사를 근거로 학교폭력이 줄었다고 주장하지만, 실태 조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그나마도 2022년에는 다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소외를 강화시키는 요인인 입시를 폐지하기는커녕 해결의 도구로 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이미 근본적, 교육적 대책이 거세되고 처벌 수위 논쟁만 무성해 온 학교폭력 처리 과정을 더 왜곡할 것이다.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정순신 같은 권력자들은 학교폭력 사건 처리에 더욱 자신의 권력과 인맥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려 할 것이 뻔하다.
최근 학교폭력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주최한 강민정 국회교육위 소속 의원(민주당)은 기존의 학교폭력 처리 과정이 가해자에게서 성찰의 기회를 뺏고 있으며, 응보적 관점에서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처벌을 강화할 게 아니라, 학교폭력을 공동체 회복이라는 교육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미 이런 자생적 노력들이 있지만 열악한 조건 속에서 좌절을 겪고 있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교사의 교육 외 업무 감축, 상담교사 증원 등 학교의 전반적인 환경들을 개선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나아가 교육 전반을 압박하는 입시 경쟁을 철폐해야 공동체적, 교육적 노력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다.
한편 학교폭력은 폭력적인 자본주의가 낳은, 이 체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야만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