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간호법 논란: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 부당하다

간호법이 4월 27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간호법 반대 측(‘보건복지의료연대’)이 반발하며 항의 행동을 벌였다. 5월 3일 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소속 간호조무사들이 ‘연가 투쟁’을, 대한의사협회(의협) 소속 의사들이 반나절 휴진을 하고 함께 집회를 열었다.

반대 측은 17일에도 연가 투쟁과 집단 휴진에 들어갈 것을 예고했다. 윤석열에게 간호법(과 의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압박하기 위해서다. 간호사들과 간호대생들은 5월 12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간호법 거부권 행사 반대 간호사들과 간호대생들은 5월 12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출처 대한간호협회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의 간호인력 관련 조항을 떼어내 독립된 법으로 만들었는데, 간호사의 활동 영역에 의료기관 외에도 ‘지역사회’를 추가하고 (기존 관련법들에 산재해 있던) 간호사 처우 개선 사항을 통합했다. 간호법 제정은 간호협회(간협)의 숙원 사업이었다.

간협이 주도하는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에는 보건의료노조(민주노총), 의료노련(한국노총)과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 많은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간호법 반대 측은 개원의가 주축인 의협이 주도한다. 의협, 병원협회, 민간 돌봄기관(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등) 같은 사용자 단체, 그리고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등의 직능단체가 들어 있다.

이번 법안은 2021년에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세 법안을 합쳐 만들었다. 그러나 그간 국힘은 의협과 병원협회 등의 반발을 의식해 (몇몇 의원을 제외하고는)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민주당 주도로 간호법이 통과되자 국힘은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권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은 지난달 양곡관리법에 이어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총선에 불리할까 봐 눈치를 보고 있다. 간협이 거부권 행사 시 단체 행동을 경고했고, 여론도 간호법 반대 측에 우호적이지 않다. 그러나 의협 등의 반발이 크고, 간호법 처리가 여야 간 대치 쟁점이 됐기에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거부권 행사의 법적 시한을 고려하면, 오는 16일 국무회의나 19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결정이 이뤄질 듯하다.)

하지만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는 정당성이 없다. 간호법 제정은 윤석열의 대선 공약이었다(공약집에는 안 넣었지만 국민의힘은 간협과 정책 협약 등을 했다).

간호법의 성격

고령화 대응에 필요한 지역사회 간호·돌봄 인력 확보, 감염병 대응과 치료를 위한 숙련된 간호 인력 확보 등이 간호법 제정 취지다. 애초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 조정,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가 돼) 통과된 법으로는 애초의 기대감을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할 듯하다.

간호사 처우 개선에 필요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 명시됐지만, 구체적 내용은 별로 없다. 병원급 의료기관에 교육전담 간호사 배치 의무화 등 약간의 개선책이 신설됐지만, 간호사 근무조건 개선에 필요한 인력 배치 기준과 법 위반 시 처벌 규정은 빠졌다.

또 다른 간호 인력인 간호조무사의 처우 개선책이 들어 있지 않아 아쉽다.

간호법에서 간호사 처우 개선은 대체로 선언적 수준이다. 그럼에도 간호법이 별도로 만들어진 것에 의미를 두는 간호사가 많다. 향후 법 개정이나 시행령으로 더 얻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의료인력의 다수를 차지하고, 협회나 노조로 잘 조직된 편이다. 그래서 간호법 제정이 간호사 처우 개선에 약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호법은 매우 미흡하므로, 1인당 환자 수 축소 등 실효성 높은 요구를 성취하려면 간호사 등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투쟁이 크게 성장해야 할 것이다.

1인당 환자 수 축소 등을 성취하려면 간호사 등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투쟁이 성장해야 한다 ⓒ출처 보건의료노조

갈등의 쟁점

통과된 간호법은 법안 심의 과정에서 의협 등 각 직능단체들이 반대하는 내용이 대부분 빠졌다. 새로 들어간 내용 중 남은 것이 간호사의 활동 영역을 의료기관 밖 “지역사회”로 넓힌 부분이다. 이 문구를 놓고 의협 등 여러 직능단체의 반발이 크다. 향후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확대돼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런데 간호법에 간호사의 활동 영역으로 ‘지역사회’가 명시된 것은 별 문제가 없다. 이미 간호사 7만여 명이 병원 밖 ‘지역사회’(보건소, 노인요양시설, 장애인 복지시설, 학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협은 간호법의 ‘지역사회’ 문구 때문에 장차 의사의 지도 없이 간호사가 단독 개원을 하거나 단독 진료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간호법상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현행 의료법 상의 업무 범위를 따르고 있다. 간호사가 의료기관을 단독으로 열거나 단독 진료를 하려면, 의료법이 개정돼야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 문구를 둘러싼 직능단체들 간의 갈등은 고령화 가속화 속에서 지역사회 통합의료돌봄의 활성화를 누가 주도할 것인지와 관련한 성격이 있다. 보건의료, 복지에 대한 국가의 투자 미비, 시장화된 의료, 돌봄 시스템 속에서 각 직능단체들이 업무 범위 문제를 놓고 다투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계급 등 서민층의 필요라는 면에서 보면, 노인을 위한 보건의료·돌봄서비스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양질로 제공되는가가 중요하다. 제대로 된 지역 보건 서비스라면, 다양한 보건의료직역들이 협력하는 게 필요하고, 정부의 충분한 재정 지원과 공적 인프라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인 복지는 자본주의 이윤 논리 때문에 가장 후순위로 밀린다. 정부 재정 지원 부족과 시장화 정책으로 인해 서민층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노인을 위한 의료와 돌봄에서 공공성 강화는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했다.

윤석열 정부는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며 의료와 돌봄 시장화를 더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사용자들의 반발과 정부의 복지 삭감에 맞서 노인과 서민층 복지를 확대하려면 노동계급의 투쟁이 성장해야 한다.

보건의료·노인 돌봄 서비스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 확대와 공공기관 확충이 필요하다 ⓒ이윤선

간호조무사협회의 반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간무협은 연가 투쟁을 벌이는 등 의협과 함께 간호법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서 있다.

간호조무사들이 모두 간무협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간호법을 지지하는 보건의료노조와 의료노련에도 간호조무사들이 가입해 있다. 이들은 노조 입장과 다른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보건의료노조에 확인한 바로는 간호조무사 조합원들의 입장은 개인별로 다르다고 한다.

간무협이 문제삼는 간호법 조항(지역사회에서 간호사가 간호조무사를 지도한다는 규정,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은 모두 현행 의료법의 규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럼에도 간무협은 간호법 반대 이유로 간호조무사 일자리 침해 우려와 간호조무사 양성기관 규정을 꼽고 있다.

첫째, 간무협은 간호법이 시행되면 간호조무사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고 주장한다. 지역사회에서 간호사가 간호조무사를 지도한다는 간호법 규정 때문에 요양시설 등이 간호조무사 대신 간호사를 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간호사가 간호조무사를 지도한다는 규정은 간호법에 처음 생긴 게 아니라, 의료법에 있는 조항이다. 다만, 지역사회라는 문구가 새로 간호법에 들어갔기에 이런 규정이 차후 시행령을 통해 어떤 변화를 낳을지 불확실한 면이 있다.

사실, 장기요양기관, 사회복지시설 등을 이용하는 서민층 사람들 입장에서는 간호조무사만이 아니라 간호사도 함께 채용되는 게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 부족과 민간 시설의 이윤 추구 때문에 인건비가 낮은 간호조무사만 고용한 곳이 많다.

지역사회 노인 요양기관들이 압도적으로 민간시설이고 시장 논리로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서민층 노인을 위한 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간호사든, 간호조무사든)은 다른 곳에 비해 임금과 노동조건이 더 열악하다. 국가가 공공요양기관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충분한 인력을 고용해 양질의 서비스가 가능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 갈등의 근원에는 정부와 병원들이 간호조무사제도를 통해 간호사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쉽게 무시하고, 손쉽게 간호조무사를 늘려서 값싼 대체 인력으로 활용해 온 데 있다. 의료기관과 돌봄 시설이 이윤 논리로 운영되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모두 노동조건이 열악해진다. 공공의료, 공공돌봄 시설과 인력 대폭 충원을 위해 단결된 투쟁이 있으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에 이롭다.

둘째, 간무협은 간호법에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에 관한 조항이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들어간 것에도 반대하며 2년제 전문대 간호조무학과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시험 응시 자격이 고졸로 제한된다는 간무협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2년제 전문대 간호조무학과 설치는 간협과 간무협이 2010년대 중반부터 갈등을 빚어 온 문제다. 간무협은 간호법에 이를 넣으면 간호법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간협의 거부로 이것이 포함되지 않자 간호법에 반대하고 있다.

간호조무사들이 현행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보다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어한다면, 간호사들이 이에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학력도 높고 처우가 더 나은 간호사들이 이에 반대한다면 간호조무사들이 간호사에게 반감을 갖기 쉽다. 그리 되면, 사측이나 정부의 이간질이 쉬워져 간호사의 처우 개선에도 이롭지 않을 것이다.

간호사들이 정부와 병원들이 간호조무사 제도를 숙련된 간호 인력 확충을 기피하는 데 이용해 온 것에 반감을 가지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간호조무사들이 그런 정책을 만든 주체는 아니다. 간호조무사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교육 훈련 기회 부족 등에 불만이 많다.

2년제 전문대 간호조무학과 설치는 간호조무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특히, 기존 양성기관(특성화고, 학원, 평생교육기관)에서 배출된 간호조무사들은 전문대 간호조무학과가 신설되면 앞으로 간호조무사 내에도 등급이 나뉠 것을 우려한다.

전문대학 간호조무학과 신설로 일부 간호조무사의 지위가 개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호 인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간호조무사 전반의 낮은 지위와 당장의 불만(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제대로 된 교육 훈련 기회 부족 등)을 해소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에 대한 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간무협이 간호조무사들을 저임금으로 부려먹는 사용자들과 함께하며 간호조무사 차별의 근원이 간호사나 간호법에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간호조무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정부와 사측으로부터 독립해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교육훈련 기회 확대 등을 위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도 이전 정부처럼 보건의료와 돌봄에 충분한 재정 지원을 회피하며 간호조무사들을 값싼 대체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간호조무사 편인 양 말하는 것은 위선적인 이간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