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로 중환자 느는데 간호 인력은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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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위드 코로나’ 정책 시행과 함께 코로나 환자가 늘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치명률과 중증화율을 낮췄다지만 감염자 수 자체가 크게 늘면서 사망자와 중환자도 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위드 코로나 시행 1주차에 사망자 수는 122명으로 그 전 한 주 사망자 85명에 견줘 크게 늘었다. 일평균 위중증 환자 수도 13.9퍼센트 늘어 중환자실이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
이 추세는 앞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부도 확진자 수가 5000명을 넘길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민간 병원들에 병상 확보 행정 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이 필요한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의료진의 번아웃(탈진)’을 꼽았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면 환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고해 왔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늘어나는 환자를 돌볼 인력 충원을 차일피일 미뤄 왔다. 그 결과 지금 위드 코로나가 병원 노동자들의 부담을 줄이기는커녕 최악의 상황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팬데믹 이전에도 한국의 병원은 만성적으로 인력이 부족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병상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지만,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4.2명으로 OECD 평균(7.9명)의 절반밖에 안 된다.
인력 부족의 핵심 원인은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민간 병원 중심의 의료 체계와 정부의 재정 지원 부족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물론 건강보험제도가 있고 그 지출액이 매년 수십조 원에 이른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쪽은 민간 병원들이다. 대다수 종합병원의 의료 수입에서 건강보험 수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65퍼센트에 이른다.
반면 정부는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관한 규제를 느슨하게 해 그 수익의 대부분을 사용자들이 챙길 수 있게 해 줬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기업주들 전체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그 지출 증가폭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서민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시키려 해 왔다.
이직률
병원 노동자들은 개별 병원들의 이윤 추구와 정부의 재정 지출 절감 노력이라는 이중의 압박 속에서 혹사를 강요당했다.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이를 견디다 못해 몇 해 만에 병원을 떠난다. 보건의료노조의 발표를 보면 입사한 지 1년 이내 이직률이 40퍼센트를 넘는다. 아무리 간호대학을 늘려도 그만큼 현직 간호사가 늘지 않는 이유다.
특히 정부의 의료 산업화 정책 속에서 공공병원 노동자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갈수록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 홍준표 같은 자들은 몇 안 되는 공공병원을 아예 폐쇄하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체계가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데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 줬다. 심지어 정부가 ‘확보’했다는 중환자실에 공간과 설비만 있고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력은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늘어난 가용 병상에도 돌려막기 식으로 노동자들을 투입해 노동자들과 환자 모두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팬데믹은 병원 노동자들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해 왔는지도 보여 줬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 팬데믹이 2년 가까이 지속된 지금까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병원 노동자들의 항의가 계속 이어진 이유다.
병원 노동자들의 항의와 투쟁은 이들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 정부가 이처럼 필수적인 부문에 대한 투자에 얼마나 인색한지 들춰내 보여 줬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면 노동자들의 투쟁이 필요함도 보여 줬다.
올해 9월 네 번째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보건의료노조는 파업을 예고하며 정부를 압박해 요지부동이던 정부로부터 일정한 약속을 얻어내는 성과를 얻었다. 의료연대본부 소속의 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 노동자들도 위드 코로나 상황에서 파업을 예고해 일부 인력 충원 등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여전히 필요한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는 데다, 보건의료노조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정부의 약속도 “이행이 관건”이다.
예컨대 정부는 9월 28일 보건의료노조와의 합의에 따라 ‘코로나 병상 간호사 배치기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10월부터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이는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는 병상에만 적용되는 것인데, 충분치 않은 이 기준을 충족하려 해도 적잖은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가이드라인 발표 후 40일이 넘도록 일선 병원에 이를 강제하지 않았다. 최근 의료연대본부 등이 문제를 제기하자 가이드라인의 이름을 은근슬쩍 ‘코로나19 병상 중등도별 간호인력 배치기준(안)’으로 바꾸고, “의료기관 실태 모니터링”을 거쳐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때까지는 “권고” 기준이라고 못 박았다.
11월부터 실태 모니터링을 하겠다지만 정부는 모니터링의 완료 시점을 밝히지도 않았다. 또 시간만 질질 끌다가 흐지부지될 수 있는 것이다.
흐지부지
정부가 순순히 약속을 지키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이 필요한 또 다른 핵심 이유로 “민생경제의 부담”을 들었는데, 이는 소상공인들의 불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소상공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 조처는 그 지원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여당은 영업정지(제한) 조처로 생긴 소상공인의 피해를 보상해 주는 손실보상법을 제정한 바 있는데, 그 법의 발효 시기를 백신 접종이 거의 완료되는 시점인 10월로 맞췄다. 그리고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도 보름 가까이 앞당겨 보상을 최소화했다.
요컨대, 확진자가 늘고 일선 병원의 부담이 커질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정부가 위드 코로나 정책을 추진한 진정한 목적은 재정 지출을 아끼기 위해서다. 각종 원자재 수급 불안으로 인한 물가 인상과 금리 인상 가속화 등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기업주들 전체에 운신의 폭을 넓혀 주려는 시도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병원 인력 확충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기는커녕 팬데믹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이윤을 우선시해 왔다. 2년 전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기지개도 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홍명옥 보건의료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국고 지원율은 14퍼센트대로 이명박(16.4퍼센트), 박근혜(15.3퍼센트)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인력 충원 등 정부의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려면 좀더 실질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한양대병원·고려대병원 노동자들은 실제 파업에 나서 병원 측으로부터 인력 충원과 임금 인상 등 추가적인 양보를 쟁취할 수 있었다.
생명안전수당과 간호 인력 확충 방안 등 정부가 약속한 다른 조처들도 상당한 재정 투입이 필요한 데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에 역행하는 것들이다. 그런 만큼 실제 이행되도록 하려면 만만찮은 투쟁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인력 충원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당할 뿐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필요함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