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투고
대정부 투쟁으로 부도 임대아파트 보증금 전액 보장받은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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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세 피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벌써 네 분이나 목숨을 잃었다. 자신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들어간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리며 미래가 보이지 않게 됐는데 정부가 나 몰라라 하면서 생긴 일이다.
나는 2000년대 초반 지방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임차 보증금과 임대료가 주변에 비해 저렴해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TV에서 황당한 뉴스를 보게 됐다. 내가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가 부도 났고 경매에 들어가게 되면 임차 보증금의 일부 혹은 전액을 돌려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다급하게 여기 저기 알아봤지만 돌아온 건 법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이러다가 보증금 못 돌려 받는 것 아닌가?’ ‘왜 잘 알아보지도 않고 이런 곳에 들어와서 이러지?’ 하는 자책을 하기도 했고, 개인이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살던 부도 임대아파트에 보증금을 돌려 받기 위한 회의가 있다는 공고를 보고 참가했다.
그 회의에서 나와 같이 ‘내 탓이요’ 하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또 이런 사태가 우리 아파트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였다는 것, 그리고 이런 문제로 이미 전국적인 대책위가 구성돼 꽤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는 점도 알게 됐다.
이후 나는 내가 살던 부도임대아파트 임차인대표회의 사무국장을 맡게 됐고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서울 광화문 집회, 과천 정부청사, 전국대책위 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지금의 전세 피해의 문제처럼 부도 임대아파트도 정부 정책의 산물이었다.
애초 공공임대아파트는 공공(가령 LH 등 공기업)이 지어서 임대해 주는 영구 임대아파트였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가 민간에게까지 사업 규제를 풀어버렸다. 민간 업체가 임대 사업을 벌일 수 있게 한 것이다.
정확히는 이렇다. 민간 업체가 정부의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아 임대아파트를 건설해 임차인을 받은 후 5년이 지나면 분양 전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정부로서는 임대아파트를 늘린다는 생색을 낼 수 있었고, 민간 건설업자에게는 황금시장이 열렸던 것이다.
민간 건설업자는 자기 돈 한푼 안들이고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정부의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고 은행으로부터 차입해서 아파트를 짓고는 임대료 수입으로 이자 갚다가 분양해서 부채(대출잔액)를 갚고도 돈이 남는 것이었다.
나대지였던 땅에 아파트가 들어섰으니 5년 후에는 아파트 가격이 엄청 뛰었다. 그러니 너나 할 것 없이 이 시장에 뛰어 들었다.
그러다가 국민주택기금을 연체하거나 이자를 못 갚으면서 부도가 나는 업체들이 발생하게 됐다. 그 규모가 2006년 말에는 전국적으로 7만여 가구에 이르렀다. 나도 그 중 일부였다.
엄청난 규모의 가구가 피해를 입었으니 정부와 정치권이 화들짝 놀란 건 당연했다. 주민들이 전국적인 연합체를 구성하고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 아파트에서 옥상 시위, 과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항의 방문 등을 벌였다. 그 결과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2007년에 제정됐다.
그 전에는 임차인 보증금이 채권 변제 순위에서 국민주택기금에 밀려 보증금 일부를 떼일 처지였는데, 이 법으로 LH가 매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면서 보증금 전액을 보전 받게 됐다.
하지만 이 법이 만들어지면서도 지금처럼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법 시행일 이전에 부도가 난 임대아파트에 한정한다거나 부도가 난 이후에 계약한 임차인은 안 된다거나, LH가 경매를 통해 임대아파트를 매입한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그때도 문제가 됐다.
그런 조건들 모두 임차인들을 갈라치고, 정부와 지자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계속 문제 제기와 싸움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 법을 보면, 원칙은 LH가 경매를 통해 부도 임대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이지만 LH와 임차인이 합의한 경우는 경매 없이 매입을 할 수 있는 조항도 있다. 이를 지금에 적용해보면 LH가 임차인과 합의해 매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나는 투쟁을 통해 보증금 전액을 돌려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법이 만들어지고도 제대로 보증금을 돌려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최근 기사를 보면 2021년에서야 이 문제가 일단락됐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속절없이 시간은 지나가지만 자신의 보증금이 묶인 사람들은 정말이지 피가 마르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결국은 이렇게 들어줄 것을 처음에는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제도와 법이 미비돼 있어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등등 온갖 변명을 책임 회피로 일관했었다. 하지만 다 거짓말이었다.
미비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가 피해 보전과 회복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피해자들이 뭉쳐 싸우고서야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강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현재 전세 피해 해법을 두고 원희룡은 전세 피해는 사회적 재난이 아니라고 떠든다. 모든 사기 피해는 동등하다며 막말을 쏟아낸다. 오로지 전 정부 탓만 하며 나몰라라 하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전세 보증금 일부를 선구제 하자는 입장을 내놨다. 과연 이를 대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 한심하다.
당시에도 특별법 제정을 두고 포퓰리즘이니 뭐니 했지만, 우리 모두 정부 정책의 서민층 피해자였고, 건설업자들의 부도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임차인들이 떠안았기에 보증금 전액 보장은 당연하고도 정당한 요구였다.
그때도 가능했고, 지금도 가능하다. 다같이 모여서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해야 한다. 국가 정책의 피해자들인 전세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나서 보증금 전액 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