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평등(동성혼 법제화) 요구가 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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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소수자 운동에서 혼인 평등(동성혼 법제화)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올해 2월 동성 부부가 제기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에서 이긴 것이 그 계기가 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법률혼뿐 아니라 그보다 느슨한 사실혼 관계에서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은 배우자가 단지 동성이란 이유만으로 동성 부부에게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2심 재판부는 이를 “정당한 사유 없는 차별”로 규정했다. 법원이 동성 커플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거둔 소중한 승리였다. 1심 패소 뒤 거둔 승리라 기쁨이 더 컸다. “사랑이 이겼다!”는 환호가 넘쳤고, 기대도 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혼인평등법(민법 개정안)과 생활동반자법 등 ‘가족구성권 3법’을 발의했다.(다른 하나는 비혼출산지원법이다.) 그 얼마 전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도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그간 논의는 무성했지만 국회 발의는 처음이다. 이 나라 국회가 워낙 보수적이라 발의 요건조차 채우기 어려웠던 탓이다. 이번 발의는 가족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면서 이를 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커져 온 현실을 반영한다.
올해 5월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40퍼센트가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했다. 조사를 시작한 2001년부터 계속 증가 추세다. 젊은 층(20~30대)에서는 찬성이 절반이 넘는다.
배제와 차별
동성 관계의 법적 인정은 성소수자들의 오랜 요구였다.
많은 성소수자가 파트너와 함께 살아가고, 그중 상당수가 파트너와 지속적 관계를 이어간다. 최근에는 동성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도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수리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는 것이다.
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협소하게 규정하고, 혼인도 “남녀의 결합”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배제되는 동성 관계는 체계적으로 차별받아 왔다.
2019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성소수자 1056명은 이렇게 말했다. “동성 커플을 보호하는 어떠한 법적 제도가 존재하지 않아 주거, 연금 등 사회보장 측면은 물론, 파트너가 아프거나 사망했을 때의 법률관계 등 생활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불이익과 어려움은 이렇다: 상속, 장례, 연금 수급, 재산 분할 청구, 의료기관에서의 보호자 인정이나 중환자실 면회,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주거 복지, 배우자의 체류허가(비자), 세제 혜택, 가족수당, 경조휴가 등.
이런 차별 뒤에 있는 동성 커플의 실제 삶은 정말이지 안타깝고 애달픈 일이 많다. ‘보호자’가 되지 못해 응급실에서 발을 동동 구른 사연, 사랑하는 이의 장례식에서 배제된 사연 등.
물론 법적 가족을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결혼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법적 배제는 명백한 차별이다. 결혼이나 결합(또는 이혼이나 분리)은 온전한 개인의 선택이 돼야 한다. 그러러면 동성혼과 시민 결합을 지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악의적 무시
서구에서는 2000년대부터 동성혼이 법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현재 아시아 국가인 대만을 포함해 34개 국가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돼 있다. OECD 국가 중 동성 부부에게 아무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튀르키예, 슬로바키아, 한국뿐이다.
동성혼을 포함해 성소수자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높아져 온 데 반해, 한국 지배자들은 오랫동안 성소수자 권리 요구를 무시해 왔다. 앞장서서 성소수자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세력은 기독교 우파인데, 이들은 잘 조직돼 있고 지배계급 일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동성혼 인정은 고사하고 비혼 동거나 위탁 가정 등 법적 가족의 범위를 약간이라도 확대하는 것조차 반대했다. 국민의힘에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인물들이 득시글하다.
민주당 개혁파는 차별금지법 제정 등 성소수자 권리에 목소리를 함께 내 왔지만 매우 불충분했다. 성소수자 차별적인 민주당 주류 인사들과 제대로 대결하지도 않았고, 선거 때만 되면 우파의 압력을 받아 슬그머니 말을 흐렸다.
주류 정당의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가족제도를 유지·강화하려는 지배계급 일반의 이해관계와 관련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주요 국가들에서도 동성혼 법제화 과정에서 종종 격렬한 논쟁과 투쟁이 있었다. 우파와 파시스트, 보수 기독교는 동성혼을 극렬 반대했다. 그 나라 지배자들이 진보적이어서 동성혼을 지지한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 운동의 50년 넘는 전통과 투쟁, 연대, 여론의 변화 등 덕분이다.
한편, 동성혼을 쟁취한 서구 나라들에서도 여전히 일상생활, 직장, 공공장소 등에서 성소수자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극우가 부상하는 곳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도 강화됐다. 한 번 쟁취된 개혁도 상황에 따라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예컨대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학교에서 동성애 교육을 금지하는 법이 도입됐다.
성소수자 차별의 근원인 자본주의(더 구체적으로는 자본주의 가족제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성소수자가 이성애 부부와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동시에 동성혼과 같은 개혁을 쟁취하는 투쟁이 차별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도전과 맞물려야 함도 주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