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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시진핑 면담:
충돌 위험성 일시 낮춘 듯하지만 근본적 갈등 요인 여전

“대화 폭 넓히는 미중,” “미중 갈등 숨 고르기,” “미중 관계 개선 물꼬.”

미국 국무부 장관 앤터니 블링컨의 방중 결과를 두고 언론들이 뽑은 제목들이다.

그러나 지난 18~19일 블링컨의 베이징 방문은 수년에 걸쳐 누적돼 온 미·중 간 갈등의 궤적을 바꾸지 못했다. 심지어 그럴 의도조차 없었다.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 대니얼 크리튼브링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상대를 다루는 방식에서 일종의 돌파구나 변화를 이루려는 의도로 베이징에 가는 게 아니다.”

블링컨은 베이징 방문 동안 중국 외교의 투 톱인 친강 외교부장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잇따라 만났고 시진핑 주석과도 면담했다.

미국과 중국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 회담의 유일한 결과물은 “고위급 교류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과 중국이 대화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바로 “뉴스”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미·중 관계가 얼마나 악화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회담 결과에 흡족함을 나타냈다. “그[블링컨]가 대단한 일을 했다. 우리는 지금 여기 올바른 길 위에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겠지만 충돌로 비화하지 않게 경쟁을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한다.”

시진핑도 비슷하게 말했다. “양국이 역사·국민·세계를 위해 책임감 있는 태도로 중·미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양국 소통 라인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급망 분리에서 위험 완화로?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미국 국무부 장관의 베이징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이징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미국 국무부 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였다. 폼페이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10월에 베이징을 방문했다.

블링컨은 애초 올해 2월에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직전에 중국산 고고도 기구(풍선)가 미국 영공에서 발견됐다.

중국 정부는 이 풍선이 기상 관측을 위한 민간용 비행 기구이며, 편서풍을 타고 우발적으로 미국 영공에 진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미국 군사 시설을 촬영한 정찰 풍선이라고 주장하며 격추했다. 블링컨은 “방문 여건 부적합”을 사유로 방중 계획을 취소했다.

얼마 뒤 미국은 입장을 바꿨다.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 존 커비는 이렇게 밝혔다. “정보 당국은 비행체들이 상업 또는 연구 단체와 관련된 완전히 ‘무해한 풍선’일 수 있다는 가설을 가장 유력한 설명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관계 악화의 뿌리는 훨씬 깊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2028년께 중국 GDP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1년 현재 중국의 GDP는 미국의 80퍼센트 수준이다.

미국 지배계급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약화가 미국의 지정학적 우위를 뒤집을까 봐 우려한다. 중국이 경제적인 면뿐 아니라 군사적·정치적 면에서도 미국을 대체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기우만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사용해 이런 위험을 예방하고자 한다.

대만과 남중국해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미국 해군과 공군이 그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또, 미국 정부는 군사 용도에 사용될 수 있다며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기술 수출을 사실상 봉쇄했다.

그와 동시에,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디커플링)를 시도했다.

그러나 현재 세계경제의 상호 의존 정도나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기업들이 중국과 발전시켜 온 긴밀한 관계 등을 감안하면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는 실로 어려운 과제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에 공급망 분리에서 중국 공급망에 의존하는 위험 완화(디리스킹)로 방향을 조정하는 중이다. 미국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은 이렇게 말했다. “디커플링은 큰 실수다. … 디리스크는 맞지만, 디커플링은 절대 아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윤석열 정부도 최근 ‘탈중국’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꼭 1년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 최상목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 중 한 브리핑에서 “중국의 대안 시장이 필요하다”고 발언해 ‘탈중국론’을 불붙였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디커플링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정치·외교적으로 그렇게 맞는 표현은 아니다. (이에 대해) 프랑스를 포함해 많은 나라가 공감한다”고 밝혔다.”(〈조선일보〉, 6월 21일 자)

블링컨은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진핑도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두 사람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블링컨과 중국 고위 관리들의 회담이 가까운 미래에 양국의 충돌 위험 수위를 낮추는 데는 얼마간 성공했을지 모른다. 한반도 주변에서 국가들 간 긴장이 격화되는 것보다 완화되는 것이 노동자 투쟁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블링컨이 시진핑을 면담한 이튿날 바이든이 시진핑을 독재자에 빗대는 발언을 했고, 이에 중국 정부가 반발하는 상황은 양국 관계가 앞으로도 험난할 것임을 예상케 한다.

이렇듯 경쟁국 간의 대화 그리고 일시적인 미세 양보가 국제 평화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경쟁, 군국주의, 전쟁은 자본주의의 DNA에 아로새겨져 있다.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 대전, 냉전, “테러와의 전쟁” — 이것들은 대표적 사례일 뿐이다 — 은 역사의 우연이 아니다. 체제의 논리적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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