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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를 멈추게 할 정치 사상과 행동은 무엇인가?

이 글은 11월 11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 내용을 옮긴 것이다. 이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마틴 엠슨은 영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책으로는 《기후변화: 왜 핵발전은 대안이 아닌가?》(2011), 《마르크스와 반자본주의 생태학》(2021), 《COP26  — 환경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2021), 《기후 위기, 불평등, 재앙: 마르크스주의적 대안》(2021, 공저)이 있다.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환경 위기와 그에 대한 지배자들의 대응을 목도하고 있다.

홍수와 폭풍, 산불이 빈발하는 가운데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인류의 미래에 적색경보가 켜졌다고 경고했다. 이번 주에는 향후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4도 오를 것이라고 관측하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기후 위기는 대량 멸종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 줄 것이다. 한 가지 사례만 들면, 올여름 마다가스카르 섬에서는 기후 변화가 초래한 가뭄으로 어마어마한 기근이 발생해 최대 100만 명이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2021년 여름 기후 변화가 초래한 가뭄으로 마다가스카르에서 100만 명이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출처 WFP/Tsiory Andriantsoarana

이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편으로, 회담장 바깥에서 거대한 시위가 벌어졌다. 10만 명이 글래스고에서 행진했다. 그 전날에는 그레타 툰베리가 이끄는 기후 시위대와 노동조합들이 함께 글래스고에서 5만 명 규모의 행진을 벌이며,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표했다.

시위는 글래스고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COP26 대응 행동을 위해 영국에서 결성된 연대체 ‘COP26연합’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모두가 글래스고에 모이지 못하더라도] 모든 도시에서 시위를 벌이라고 촉구했다. 런던에서 2만 명, 브리스틀에서 7000명, 리버풀에서 3000명, 옥스퍼드에서 3000명이 시위를 벌였다. 내가 사는 맨체스터에서도 1500명이 행진을 벌였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에 모인 각국 정상들에 항의하는 시위에 10만 명이 참가했다 ⓒ출처 Gareth Morris

그러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이 시위들의 의의는 단지 규모에 그치지 않는다. 시위대의 정치도 의의가 있다. COP26연합은 NGO, 노동조합, 인종차별 반대 연대체, 사회주의자들, 난민 지지 단체 등이 모인 광범한 연대체이면서도 꽤 급진적이다. COP26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일말의 기대를 갖는 활동가는 거의 없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영향으로 이 기후 연대체는 인종차별 반대,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연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국제적 부정의에 맞서 가난한 나라들에 연대하는 문제를 운동의 주요 쟁점으로 삼았다.

이 연대체는 강력한 운동을 벌였다. 실질적인 기후 변화 대응책과 그것의 실행 그리고 기후 정의를 요구했다.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라는 구호가 이 운동에서 인기를 끌었다.

실패를 거듭해 온 COP

지금까지는 현재 그림의 한쪽 면만을 얘기했다. 다른 한쪽은 COP26 회담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COP26은 지배계급이 위기 대응에 26년째 실패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1990년대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 시작된 COP는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환경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이 시도는 실패해 왔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자본주의는 끝없는 성장과 부의 축적을 바탕으로 하는 체제다. 둘째, COP는 자유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 한다.

이것의 극명한 사례 하나가 지난주 마크 카니의 연설이다. 마크 카니는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자로, 지금은 ‘유엔 기후대책·금융특사’를 지내고 있다. 마크 카니는 450여 개 주요 금융 기관들이 탄소 배출 넷제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자산을 운용하게 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금융은 의욕적인 기후 대책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통로가 될 것이다.” 이것은 적나라한 자본주의적 해결책이다. 카니는 대형 은행과 증권거래소 같은 금융 기관들로 이루어진 연합체‘넷제로를 위한 글래스고 금융 연합’(GFANZ)의 대표다. 이들은 결코 노동계급 편이라 할 수 없는 집단이다.

자유 시장 기후 정책,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온실가스 상쇄, 넷제로 등이 COP에서 사회적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이런 대책은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는다.

이것이 이번 COP26과 그 이전의 COP 회의들에서 다뤄진 대기업들의 의제다.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려 하지 않고, 속임수와 자유 시장을 이용해 ‘상쇄’하려 하는 것이다.

글래스고 COP26 회담장에서도 바로 이런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큰 대표단은 503명의 석유·가스·석탄 기업 로비스트들이다. 이들은 100개가 넘는 화석 연료 기업들을 대표한다. 이들의 규모를 보여 주는 사례를 하나만 들면, 이들의 머릿수는 선주민 권리를 옹호하러 회담에 참가한 활동가들을 2대 1의 비율로 압도한다. 그러니 COP26 선언문 초안에 화석 연료 사용에 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과 COP26에 참석한 대표단, 정치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근본적 대책을 요구한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연단에 올려, 시위대를 환영하고 청년들의 행동을 찬양하며 “우리가 더 분발해야 한다”는 연설을 하게 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가?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 임기 동안 이전 기후 회담을 실패로 이끈 주역이었고, 화석 연료 생산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줬다.

앞에서 언급한 마크 카니도 연단에서 시위대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COP26이 “어쩌고저쩌고 헛소리만 늘어놓는다”는 그레타 툰베리의 비판에 이렇게 답했다. “어쩌고저쩌고 헛소리가 아닙니다. 진지한 논의가 오가고 있어요.” 회담장 바깥의 시위대와 급진적 요구를 매우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배계급의 문제는 그들이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녹색 자본주의’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애초에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없는 체제다. 왜 그런지 이해하기 위해 카를 마르크스와 그를 계승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를 살펴보겠다.

ⓒ출처 노동자연대TV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마르크스 사상의 중심에 있다. 마르크스는 모든 인간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래서 어느 역사적 시기의 사회에서든 모든 인간은 자연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 마르크스는 이 관계를 자연과 인간 사회의 “신진대사”라고 일컬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인간 사회와 자연의 관계가 특정한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양식은 인간들이 그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조직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래서 수렵·채집 사회가 자연과 맺는 관계는 중세 사회가 자연과 맺는 관계와 달랐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연과의 관계가 완전히 변화했다. 처음으로 자연은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에 종속됐다. 그리고 경제적 생산이 맹목적인 시장 경쟁에 의해 추동된 결과, 다시 말해 축적을 위한 축적이 이뤄지고 이윤 그 자체가 목표가 된 결과, 인간 사회와 자연의 관계는 파괴된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연이 생산을 위해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된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그래서 COP26에 참가한 자본가들은 배출권 거래제 같은 해결책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들은 환경 오염을 경제적 과정의 일부로 이해한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연이 이런 식으로 생산 과정의 일부가 된다. 자본가에게 자연은 오로지 이윤 추구와 관련해서만 관심사가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로는 자본주의와 자연과의 관계가 초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후 변화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위기의 극명한 사례다.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발전 경로 때문에, 역사의 한 시점에서 자본가들은 화석 연료를 자본 증식의 주요 동력이자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았다. 내가 살고 있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바로 그런 과정이 시작됐다.

초기부터 화석 연료는 자본주의 체제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됐고, 그 체제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국제적인 화석 연료 체제가 자리잡게 됐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거의 3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거의 줄이지 못한 것이다. 화석 연료 자본가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 구조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수록 많은 기후 활동가들이 급진적 구호를 받아들이고 있다. 자본주의와 환경 파괴 사이의 연관성과, 체제를 개조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부정의

한편, 자본주의는 국제적인 부정의를 낳는다.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발전 과정에서 북반구[선진국들]는 남반구[빈국들]의 환경을 체계적으로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것을 바탕으로 부를 쌓았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나머지 세계에 역사적 부채를 지고 있다. 선진국들은 석탄, 석유, 가스를 태우면서 부를 쌓았는데, 이런 화석 연료 사용이 일으킨 문제가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하는 구실을 둘러싸고 회담장에서 날카로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후 문제 해결책의 일환으로 개발도상국들에 1000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제공하는 것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 돈을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빈국들은 환경 위기와 관련해 도움을 받고, 스스로를 지키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발전하기 위한 원조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환경 운동에서 기후 정의가 중요한 쟁점이 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체제 변화”가 뜻하는 바를 모호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은 체제 변화를 단지 좌파적인 압력을 가해서 지금의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친환경적인 자본주의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많은 운동들이 그린 뉴딜 등을 요구한다. 미국 민주당 좌파나 영국 노동당 등이 그런 사례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도 그린 뉴딜을 원한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국가 차원의 조처들을 원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자본주의는 지속 불가능한 체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그린 뉴딜과 같은 개혁이 더 폭넓은 변화를 이루기 위해 노동계급 운동의 전투성을 키우는 과정의 일환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기후 운동과 노동계급의 힘

우리는 기후 변화뿐 아니라 불평등과 빈곤, 기아, 인종차별 등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려면 자본주의에 의한 환경 파괴의 대안으로 노동자 권력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더 광범한 운동의 여느 일부와는 다른 집단이라고 본다. 노동자들은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는 구실 때문에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

노동자들이 사회 체제 전반에 맞서 투쟁을 벌일 때가 있다. 파리 코뮌, 러시아 혁명, 현재의 수단 혁명에 이르기까지 그런 사례들이 숱하게 있다. 그런 투쟁을 벌일 때 노동자들은 혁명을 이끌고 사회를 조직하는 자신들의 조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기구들에 지속 가능 세계를 실현할 잠재력이 있다. 이런 노동자 권력은 지구상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경제적 생산을 민주적으로 계획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환경 파괴에 맞설 구체적인 대안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환경 운동에 참가하고, 당면 개혁 과제를 요구하고, 차별받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지하면서도, 자본주의는 지속 불가능한 체제이며 지속 가능한 새로운 사회주의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언제나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것은 환경 운동의 요구를 위해서도 매우 호소력 있는 목표다. 사회주의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환경 파괴를 저지할 유일한 방법임을 분명하게 강조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주의 사회를 쟁취하는 투쟁을 이끌 사회주의자들과 활동가들이 전 세계 모든 나라에 필요하다.


발제자의 정리

많은 질문들이 있었고 일부는 정말 만만찮은 것들이다.

우선, 자본주의 체제가 환경 위기뿐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원자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개인을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면 채식을 하거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한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많다.

환경 위기에 대한 대응의 또 다른 형태는 환경을 파괴하는 특정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예컨대 교통이나 전력 생산, 군대, 농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시도에 공감을 나타내야 하지만, 그것이 위기를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해야 한다.

우리는 기후 운동을 건설하면서도, 노동계급 운동을 끌어들이고 노동계급 운동의 자신감을 높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은 정의를 요구하는 것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한 발언자가 지적했듯이, 노동자들은 더는 생활수준 악화를 감내할 수 없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는 더 많은 일자리, 양질의 일자리, 더 나은 노동조건, 더 나은 먹거리 등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지난 주말 영국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인상적인 점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합을 통해 기후 시위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 정의를 둘러싼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해서 이런 과정을 더 북돋울 수 있다.

한 발언자가 에너지 공공성 강화를 언급했는데, 전기세나 난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 국유화를 통해 환경 파괴도 줄이고 삶의 질도 높이자고 제안할 수 있다. 이런 요구를 통해 운동을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경제적 요구뿐 아니라 정치적 요구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빈국들에 대한 보상 문제로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그런 요구가 꽤 지지를 얻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요구는 자선이 아니라 연대로서 제시돼야 하며, 자본주의의 발전이 선진국에서도 극소수만을 부유하게 만들었다는 문제와 연결돼야 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지배계급은 COP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운동을 보며 걱정하고 있다. 어제 미국과 중국이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서로 협력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COP26 회담에서 한 주 내내 서로의 역할을 두고 말다툼을 벌였다. 그런 기자회견이 열리는 것은 COP26에서 뭔가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회담장 바깥에서 오는 압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누가 지배적인 경제 대국이 될 것인지를 둘러싼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두 정부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그래서 COP26이 열리기 몇 주 전 중국 정부는 화석 연료[석탄] 생산을 늘리고, 미국 정부는 G20 회담 자리를 이용해 [산유국들에게 석유 증산을 촉구해서] 석유 가격을 떨어뜨리려 했다. 한 발언자가 말했듯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노동자들이 그 과정의 희생자가 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바이든도 모순을 잘 알고 있다. 바이든은 여러 연설에서 미국의 경제적 필요와, 기후 변화가 가져올 미래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의 필요와 그것이 낳을 미래 그 어느 것도 중국이든, 미국이든, 세계 어느 곳이든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환경 운동은 사회주의적 지향을 갖고 갈수록 광범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요구들을 포괄해야 한다.

그러려면 빌 게이츠 같은 자들이 제시하는 수소 에너지나 핵 발전 같은 거짓 해결책을 거부해야 한다. 이런 해결책은 정의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기술은 이미 있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 체제의 성격이 그런 기술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없애버릴 만큼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20세기 초 독일의 위대한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인류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후 변화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야만을 몰고오고 있다. 21세기에 인류가 마주한 갈림길은 “사회주의냐 멸종이냐”다.

모두를 위한 미래를 쟁취할 사회주의 운동을 최대한 강력하게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출처: 노동자연대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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