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 되는 책이 출간됐다.
저자인 메디아 벤저민과 니컬러스 J.S. 데이비스는 미국의 반전·평화 단체 ‘코드핑크’의 주요 활동가다. ‘코드핑크’는 영국의 전쟁 반대 연대체 전쟁저지연합 등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국제 캠페인을 벌여 왔다. 한국에서도 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쟁 반대 집회가 열린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때부터 본지는, 이 전쟁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됐지만 우크라이나를 대리자로 내세운 서방과 러시아 간 대결의 성격이 지배적이라고 분석했다. 이 책의 저자들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며 이런 이중적 성격을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빼앗긴 영토를 모두 되찾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하지만, 이 전쟁의 끝은 이 전쟁으로 최대한 득을 보려는 서방 지배자들과, 섣불리 전쟁을 멈추면 잃을 게 많은 푸틴의 손익 계산에 달려 있다. 그리고 수많은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 병사의 목숨이 이 ‘거대한 체스판’의 제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서방 언론들과 지배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순전히 러시아의 침략 전쟁으로 흔히 묘사한다. 나아가 이 전쟁에 ‘민주주의의 운명이 달렸다’며 군사 동맹 나토 강화와 군비 증강을 정당화한다. 윤석열 정부와 우파 언론들도 ‘우리도 우크라이나처럼 될 수 있다’며 전쟁 지원을 정당화한다.
문제는 서방에 비판적인 일부 좌파들도 (국제적으로는 온건 좌파 전체, 심지어 일부 혁명적 좌파까지) 이를 수용하거나 혼란에 빠져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러시아 제재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들은 모두 ‘누가 먼저 총을 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누가 먼저 총을 쐈’는지 지목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공방이 있을 수는 있어도 결국 어느 한 쪽을 가리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은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맥락을 짚는 것은 훨씬 복잡한 일이다. 그 무대가 우크라이나라는, 역사와 정치가 낯설고 복잡한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만큼 서방·러시아 양측 모두를 반대하는 관점에서 이 전쟁의 배경과 맥락을 짚어 주는 책이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저자들은 서방의 관여에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물음과 반론을 잘 다루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에 달린 것 아닐까?’, ‘무기 지원은 위험하더라도 제재는 필요한 것 아닐까?’ 등등.
저자들은 나토 확장으로 어떻게 이 전쟁이 예비되어 왔는지, 서방이 전쟁 전부터 우크라이나에 어떻게 개입해 왔는지, 민스크 협정 파탄과 개전 직후 중재 노력 좌절에서 서방이 했던 구실이 무엇인지를 꽤 자세하고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서방 정부와 언론의 위선과 나토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다.
동시에 저자들은 서방을 비판하다가 진영 논리로 기우는 적잖은 좌파들과 달리, 러시아의 침공 또한 정당화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저자들의 대안은 평화 협정 촉구로 모아진다. 물론, 이 전쟁은 거대한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이러저러한 협정으로 종결될 것이다.
그러나 항구적 평화를 위한 노력은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려는 노력과 분리될 수 없다. 민스크 협정이 좌절되고, 유엔에서 채택된 핵무기금지조약(TPN)을 어느 주요 핵 보유국도 인정하지 않고, 미국이 오만하고 푸틴이 무모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이 자본주의 체제가 자본 축적 경쟁이 국가의 힘과 결합되는 국제 경쟁 체제라는 사실과 관련 있다.
이 책이 그런 결론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전쟁 반대 운동을 건설하는 데서 매우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