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흑해로, 모스크바로 전선이 확대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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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이 속도를 내지 못하자 서방 언론들은 벌써부터 내년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지적으로 멋부리는 《이코노미스트》 지는 이렇게 전망한다.
“인내심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 전쟁에서 능히 가능한 양상은, 우크라이나가 마을 단위로 성과를 내지만 극적인 변화는 이루지 못하는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결국 가을 진흙과 새로운 겨울 탓에 기갑 부대가 이동하기 무척 어려워지는 시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방어, 대전차 참호, 지뢰밭, 콘크리트 장애물은 가공할 만하다. 2024년은 또 다른 전투의 해가 될 듯하다.”(2023년 8월 4일 자)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의 진격 속도는 매우 더디다. 우크라이나 군 장성들이 매일 탈환한 마을들을 발표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수복한 영토는 대략 200제곱킬로미터다. 이는 서울 전체 면적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탈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토는 남한 면적(10만 제곱킬로미터)보다 조금 더 큰 12만 5000제곱킬로미터이다. 여기에는 2014년에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와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러시아의 지원으로 차지한 돈바스 지역이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1차세계대전 당시 지루한 참호전 속에 벌어진 ‘고기 분쇄기’ 전투처럼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100미터 전진할 때마다 병사 4~5명이 죽는다는 우크라이나 매체의 보도도 있다.
전선이 교착상태에 있다는 바로 그 이유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미사일과 드론으로 상대 후방에 대한 타격을 확대하고 있다. 상대방의 집중력을 후방으로 분산시키고 방공망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다.
후방
8월 초 우크라이나군의 무인기가 모스크바 번화가 고층 건물을 공격한 데 이어 무인 보트가 크림반도 인근의 케르치 해협에서 러시아 유조선을 타격했다. 러시아의 석유 수출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한 것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도시들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고 있다. 흑해 연안 항구인 오데사,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르비우와 볼린 지역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오판을 하거나 무기가 오작동하면(전쟁에서는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이런 후방 공격은 훨씬 치명적이고 광범한 전쟁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흑해곡물협정의 파기다.
나토 국가 정부들은 푸틴이 흑해곡물협정을 종료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친우크라이나 성향의 폴란드 정부는 값싼 우크라이나산 곡물 때문에 현지 곡물 가격이 내려가 피해를 봤다며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을 차단했다.
흑해곡물협정이 파기된 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상대의 곡물 수출 중심지를 타격하고 있다.
러시아는 오데사를 잇달아 공격한 뒤 다뉴브강(우크라이나어로 두나이강)의 항구 도시 레니를 타격했다. 다뉴브강은 우크라이나의 흑해 대체 수출로이다.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철저하게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곡물 수출 중심지를 타격했다. 우크라이나군의 해상 드론이 러시아의 흑해 주요 수출항인 노보로시스크를 공격했다. 노보로시스크항은 흑해함대 기지이자 러시아의 주요 산물인 석유와 곡물을 수출하는 허브이다.
그 결과 세계 식량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빈국들의 기아가 악화될 우려가 크다. 물론 서방 지배자들이 빈국의 기아를 걱정하는 것은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
흑해곡물협정에 따라 수출한 곡물 생산 총량은 3300만 톤이다. 협정 체결 후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에티오피아·아프가니스탄·예멘 등 최빈국에 전달한 식량은 겨우 72만 5000톤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인 1800만 톤은 서유럽으로 수출됐다.
제다 회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8월 5~6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우크라이나 평화 회의가 열렸다. 미국·중국·인도·아프리카연합 등 40여 개국이 참가했다. 러시아는 불참했다.
서방 언론들은 우크라이나가 참석한 회의에 중국·인도·아프리카연합이 참석한 것은 젤렌스키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제다 회의는 현재의 국가 간 세력 관계를 재확인한 무대였을 뿐이다.
제다 회의가 2020년 도하 회의를 연상시킨다 해서 미국 지배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제다 회의 참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한 미국은 2020년 2월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고 철군을 약속했다.(미국은 2021년 8월 30일에 최종 철군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하기로 결정할 때부터 도하 협정의 실패가 시작됐다. 러시아를 패퇴시키는 데 필요한 지지를 제공하지 않고 중국·아프리카연합 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재하는 평화 협상에 우크라이나를 밀어넣는 것은 전쟁을 얻고 평화를 잃을 위험이 있다.”(《포린 폴리시》 2023년 8월 3일 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앞에서 인용한 《이코노미스트》는 더 많은 살육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고 서방 지배자들에게 주문했다.
“우크라이나의 전진이 느리다는 비판을 앞세우지 말고 ―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푸틴을 기쁘게 할 뿐이다 ― 그들의 강인함을 칭찬해야 한다.
“그다음에 더 많은 보급품을 제공해야 한다. 하이마스(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와 더 좋기로는 성능이 향상된 에이태큼스(육군전술미사일시스템)을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 포탄, 드론, 지뢰 제거 장비, 집속탄, 총알을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
“전차와 전투기도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계속 공습하기 때문에 방공 로켓이 필수적이다. 의료 기구들도 필요하다. …
“이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의 서방 후원국들이 현재까지 제공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의 총계는 약 2000억 달러다. 이것은 분명 엄청난 액수이지만 그 나라들의 경제 규모에 비춰 보면 감내할 만할 것이고, 푸틴의 승리가 훨씬 더 큰 위험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지난해 GDP는 2조 달러였고, 우크라이나의 후원국들은 약 55조 달러였다. 푸틴을 어떻게든 처리할 때까지 서방은 이런 종류의 돈을 지출하는 데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8월 17일 바이든 정부는 전쟁이 통제 불능으로 확대될까 봐 그동안 제공을 꺼렸던 F-16 전투기 제공을 승인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정신 나간 전쟁 노력과 윤석열 정부의 지원을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