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 해결책 제안들은 표현의 자유를 경시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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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범죄의 해결책으로 시청·소지죄 신설, 텔레그램 (임시) 차단, 허위조작정보 유통 규제 등이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광범한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많은 진보 단체와 일부 페미니스트가 “강력한 수사와 처벌”을 강조하면서 별 단서 없이 이런 제안들(그중 일부)을 명시적·암묵적으로 지지한다.
예컨대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텔레그램을 임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의 공범” 플랫폼 기업에게 본때를 보여 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한 토론회에서 “표현의 자유 같은 이슈로 이것을[딥페이크 성범죄] 이야기하는 것은 진보 정치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노동운동과 좌파가 오랜 수감 등 신체의 자유 구속에도 지켜 온 권리이고, 지금도 매우 중요하다. 보안법 등으로 체포·수감되고 있는 비폭력적 좌파 활동가들이 여전히 있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방어한다고 해서 모든 표현을 다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남의 사진을 포르노와 합성해 유포하고 조롱하는 행위는 제약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시청·소지죄, 텔레그램 차단, 허위조작정보 규제 등은 가해자의 구체적 행위에 대한 처벌을 넘어서는 문제다. 이런 조처는 자본주의 국가·기업의 검열 권한만 강화하고, 성범죄를 줄이는 데에는 정작 효과가 없다.
시청·소지죄는 경찰에게 사람들의 컴퓨터와 핸드폰을 일일이 들여다 볼 감시 권한을 쥐어 준다. 텔레그램 차단은 국가가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플랫폼만 허용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사실 텔레그램은 국가의 감시를 피하려고 각국의 좌파가 애용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허위조작정보 규제는 정부의 ‘가짜 뉴스’ 단속과 연결돼 있다. 정부는 MBC ‘바이든 날리면’ 보도, 〈뉴스타파〉의 대선 검증 보도, 후쿠시마 핵 폐수 비판 등 정부 비판을 모조리 ‘가짜 뉴스’라며 공격해 왔다.
한국은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상당히 제약하는 나라 중 하나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가장 최근에는 민중민주당이 그 제물이 됐다.)
국가는 선의의 중립적 실체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 기관에 검열 권한을 부여하면, 그 국가는 그 권한을 이용해 자신이 ‘불온’하다고 여기는 표현도 금지할 것이다.
예컨대 유럽에서 스토킹처벌법은 환경운동가를 상대로 사용됐고, 공중질서법은 원래 파시스트 집회를 금지하기 위한 법안이었으나 정부에 항의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데 빈번히 사용됐다. 독일의 혐오표현 규제법은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 독립]” 표현을 금지한다.
국가에게 많은 권한을 줘 가해자를 수사·처벌하더라도 성차별적이고 성의 소외가 만연한 사회 체제가 성범죄 양산의 토양이므로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성차별적이고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대중 자신이 지배계급의 기만과 협박, 그리고 일상에서 통제받고 좌절하는 경험(소외)를 극복하고 집단적으로 행동(표현 자유의 핵심)해야 한다.
그렇게 대중 행동을 건설하고 전진시키는 데서 서로의 생각과 이견을 맘껏 교류하고 논쟁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다른 사람들의 자체 활동, 이것이 표현의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