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안토니오 네그리(1933~2023) 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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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네그리가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네그리는 1960~1970년대 사회적
당시 투쟁은 포르투갈 혁명을 제외하면 이탈리아에서 가장 수위가 높았다. 학생 반란이 1969년
네그리는 이런 사태 전개에 큰 기대를 가진 청년 좌파 지식인 집단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올해 여름에 사망한 마리오 트론티가
트론티는 영향력 있는 저작 《노동자와 자본》
네그리는 학자였지만 베니스 인근 포르토 마르게라의 화학 공단에서 노동자주의적 실천을 했다. 그는 혁명가 단체 몇 곳이 생겨나는 데에 기여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탈리아 지배계급은 상황을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집권당 기독민주당과 야당 공산당 사이의
네그리는 조직 노동계급을 혁명의 장애물로 여기고 대응한 극좌파의 한 명이었다. 다른 이들은 테러리즘을 받아들였다. 그 테러리즘은 1978년 이탈리아 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
그즈음 네그리는 전 세계에 청중을 두고 있었다. 옥중에서 네그리는 미국의 비판적 사상가 마이클 하트와 함께 《제국》을 집필했다. 그 책은 1990년대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모종의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제공했다. 《제국》은 2000년에 출판됐는데, 그때는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
《제국》은 급성장한 그 운동에 뛰어든 활동가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그 운동은, 2003년 2월 15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 거대한 세계적 시위가 벌어지며 절정에 이르렀다.
《제국》의 가치는, 그런 새로운 투쟁들을 1960~1970년대에 발전한 마르크스주의로 표현하려 한 그 방식에 있었다. 또, 그 책은 유명한 마지막 구절에서 드러난 차분한 낙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구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마르크스의 사상이 죽은 개 취급받던 시기에 그 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밝히 보여 준 공로는 온전히 하트와 네그리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제국》과 그 속편 《다중》
첫째, 하트와 네그리는
둘째, 하트와 네그리는 노동계급이 더 무정형의
네그리가 풀려난 직후인 2003년 10월 파리 유럽사회포럼에서 그와 나는 이 주제로 열정적인 대규모 청중 앞에서 토론했다. 그는 대단한 연설가이면서도 대화할 때는 온화하고 정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온화함 뒤에는 그가 옥살이를 견디며 마르크스주의가 21세기에도 살아남도록 일조하게 이끌어 준 정치적 강인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