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병든 사회가 병든 사랑의 근원임을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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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성공은 누구나 할 수 없더라도 사랑만큼은 누구나 이룰 수 있다고 여겨진다. SNS부터 드라마까지 모든 곳이 사랑에 대한 얘기로 넘쳐난다. 아름다운 가족애 얘기부터 천생연분의 짝 얘기까지. 그러나 오늘날 사랑만큼 얻기 힘든 것도 없다. 또한 교제(데이트) 폭력, 아동 학대,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처럼 사랑만큼 그 이름이 폭력으로 얼룩진 것도 없다.
왜 이렇게 우리는 사랑에 목을 매고, 사랑하더라도 불행할까?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등의 저서로 유명한 김태형 씨가 최근 사랑에 관한 신간을 냈다. 신간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갈매나무)는 ‘진짜 사랑’을 잊어버린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인해 ‘가짜 사랑’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고 지적한다.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고립의 심화로 정신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을 파괴하면서도 사랑에 더 매달리도록 유혹하고 부추긴다.
“사람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사랑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인간에게 사랑이 너무나 중요함에도 사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가 자존감, 행복 등에 과거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부모, 애인 등의 잘못된 ‘사랑’에 대해서 비판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기 때문’이라며 자녀를 경쟁에 더 깊이 밀어 넣거나, ‘사랑하기 때문’이라며 애인에 대한 과도한 질투나 폭력을 정당화한다.
특히 ‘금쪽 상담소’나 ‘결혼지옥’ 등 요즘 한국에서 인기 있는 심리 클리닉 프로그램들을 보면, 모든 문제를 어린 시절 경험이나 개인의 심리, 부모의 양육 방식 문제 등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자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말을 인용해 부모 탓하기의 한계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한다. “사회가 부부의 어깨 위에 짊어 지워 놓은 사적인 고투와 고통이라는 점이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가 느끼는 생존 불안이 너무 커서 이런 불안이 자식 압박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결혼 시장
저자는 우리가 가짜 사랑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에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이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치 상품 교환처럼 사랑도 준 만큼 돌려받아야 하는 등가교환 논리가 작동한다. ‘결혼 시장’이라는 말이 보여 주듯, 사람끼리의 만남도 시장에서 상품 거래하듯 되곤 한다. 그 시장은 남성의 돈과 여성의 외모가 교환되는 장소이다. 또한 부모도 자식을 상품으로 간주하고, 자식도 부모를 현금지급기로서 인간 상품으로 간주하곤 한다.
신자유주의가 불평등을 키우고 사람들의 생존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 데다, 건강한 사랑과 지지를 보내 줄 공동체도 거의 무너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정신 건강 악화에 시달린다.
개인 간 경쟁이 심해지고, 서열 다툼이 치열해지는 상황은 연인 간 관계에도 스며든다.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비해 자신이 상대를 덜 사랑해야 더 큰 권력,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는 메커니즘이 반영된다.
이처럼 생존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괴로운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심리 상담이나 자기계발 같은 것이 인기를 끌지만, 근본적 해결이 안 되고 미봉책일 뿐이다.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행복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공통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 관계나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심리학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사회 개혁을 요구한다. 인간이 돈보다 중요한 사회를 만들고 공동체를 재건하는 것만이 진짜 사랑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물론 이 책에 아쉬운 점도 있다.
동성 간 사랑이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현실에서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지 ‘이성애’만을 전제하고 쓴 것은 아쉽다.
또한 저자가 (비록 이 국가들의 복지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북유럽 복지 국가나 국가 개입을 대안으로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물론 이 나라들이 한국보다 나은 면들이 있지만, 이런 나라들도 신자유주의 정책이 대거 도입된 결과 불평등이 심화되며 정신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근본에서 인간 관계의 소외는 자본주의 자체에서 비롯한 현상이다.
그러나 저자가 ‘진짜 사랑’의 회복을 위해 지적하는 바들은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