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김태형, 갈매나무):
‘소확행’에 지친 이들을 위한 해독제
〈노동자 연대〉 구독
《싸우는 심리학》, 《트라우마 한국사회》 등으로 유명한 김태형 심리학자가 새 책을 냈다.
새 책의 제목이 낯익은 독자들은 그가 3년 전에 펴낸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를 떠올릴 듯하다.(본지 236호에 실린 서평을 참고하시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심리학은 어떻게 행복을 왜곡하는가》는 이 책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행복’이라는 주제가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불행에 대한 반응일 뿐만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요구를 대변하는 현상이기도 하다”고 본다.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들은 정신질환으로 인해 GDP의 3~4퍼센트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고 있다. … 정신질환과 불행,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 골칫거리로 등극[했다.]”
그런데 가장 흔한 행복론은 돈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물질주의 행복론’이다.
김태형은 먼저 이런 사실이 현재 한국 사회의 상태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돈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차별하고 무시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에 시달린다.” 그리고 “돈이 많아지는 것은 행복의 증가가 아니라 주로 [이런 심리적] 고통의 감소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주류 심리학은 사회, 역사 등에는 거의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오직 개인만을 들여다본다.”(99~100쪽)
이렇게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주관주의나 상대주의로 빠지기 쉽다.
예컨대 주류 심리학은 “욕망을 포기하라”(금욕주의 행복론)거나 일시적 “쾌감”들로 행복을 대체할 수 있다고(쾌락주의 행복론) 설교한다.
그러나 “욕망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욕망을 버리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 경험을 줄여주기는 하겠지만 이와 동시에 긍정적인 감정 경험도 할 수 없게 만든다.”(69쪽)
주류 심리학자들은 쾌락주의 행복론을 뒷받침하려고 ‘긍정적인 감정의 빈도’를 측정하는 연구를 하는데 김태형은 이런 연구들이 가진 한계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은 행복한 생활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또 주류 심리학은 “행복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개인차에만 관심이 있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 개개인의 행복 수준도 낮아지게 하고 … 불행한 이들을 탓하게 만든다. … [그리고] 행복 경쟁을 부추긴다”.(116~118쪽)
그는 행복론을 설파하는 주류 심리학이 “주관 관념론”(행복하다고 생각하라)으로 빠지거나 현실 왜곡과 도피를 조장하고, 사실상 진정한 행복은 포기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저자는 에리히 프롬과 마르크스에게서 그 답을 찾는다.
다만, 저자가 덴마크 같은 사회의 밝은 면만 언급한 것은 다소 일면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공정하게 말해 그가 복지 자본주의를 최선의 대안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 듯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설사 평등 수준이 높다 하더라도 계산적인 인간관계가 지배하는 사회다.” “나는 국가가 전 국민의 생존을 책임짐으로써 생존 수단과 노동이 완전히 분리되는 사회가 가장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가 복지자본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는 다소 모호하지만 그것은 이 책의 주제를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마르크스가 종교를 단순히 지배 수단으로만 여긴 것처럼 설명한 부분도 아쉽다. 저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표현에서 “아편” 뒤에 “(마약)”이라고 설명까지 덧붙였는데, 마르크스는 종교를 단순히 해로운 마약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 아편은 합법적이었고, 타이레놀처럼 광범하게 사용되는 진통제였지 오늘날의 ‘마약’처럼 여겨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마르크스는 종교 지도자들이 대중을 속여 신앙을 갖게 만든다고 본 당시 계몽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그런 표현을 썼다. 종교의 사회적 원인을 지적하는 것이지 종교를 단순히 경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다른 심리학 저작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짜 행복론과 소확행에 대한 김태형의 비판은 속 시원할 것이고 대안적 삶에 대한 고민의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