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영화평] 〈나의 올드 오크〉:
용기, 연대, 저항을 북돋는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나의 올드 오크〉 켄 로치 감독, 2024년, 113분

켄 로치 감독이 단짝 동료 폴 래버티(각본)와 함께 영화 〈나의 올드 오크〉로 돌아왔다.

거의 네 번째 은퇴작이다. 은퇴를 계속 번복하는 건, 식을 줄 모르는 예술적 열정과 정치적 끈기 덕분일 것이다.

〈나의 올드 오크〉〈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와 함께 “잉글랜드 북동부 노동계급 3부작”이라 불린다.

〈나의 올드 오크〉의 배경은 광산이 몰락하고 긴축 정책으로 불행과 가난의 고통에 시달리는 낙후된 노동계급 거주지다.(〈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이기도 한 더럼 카운티에서 촬영했다.)

그곳으로 이주하는 시리아 난민의 흑백 사진을 통해 영화가 시작된다.

시리아 난민과 영국 노동계급

버스에서 내리는 난민들을 맞이하는 것은 뉴캐슬 유나이티드 축구팀(잉글랜드 북동부 축구팀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빈살만 왕세자가 소유했다) 유니폼을 입은 남성의 욕설과 괴롭힘이다.

이 어려운 상황을 ‘올드 오크’ 펍의 운영자 TJ가 중재하려고 한다.

난민들은, 2011년 ‘아랍의 봄’의 일부였던 시리아에서 혁명을 분쇄하려는 정부의 탄압과 공격, 제국주의 국가들의 술책과 폭격 때문에 가족과 집을 잃고 쫓겨 왔다.

이들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영국의 가난한 노동계급 사람들도 보수당과 노동당 정부 모두에게서 수십 년간 일자리, 교육, 연금, 복지를 빼앗겨 온 사람들이다.

잔인함, 박탈감, 굶주림, 트라우마가 양쪽 모두를 괴롭힌다.

하지만 일부는 이주민과 무슬림을 문제이자 문제의 원인으로 여긴다.

다른 가능성과 전통도 있다. 연대, 동지, 용기, 협력, 저항.

켄 로치 영화답게 스타 시스템을 거부하고 아마추어 연기자들로 가득하다.

켄 로치는 배역과 비슷한 경험이 있는 보통 사람들 속에서 적합한 인물을 찾아 배역을 맡기는 데 탁월하다.

난민 구호 활동가 로라 역은 비슷한 이력의 활동가가 연기했고 난민 역은 북동부 지역에 이주해 사는 실제 난민들이 연기했다.

TJ를 연기한 데이브 터너도 전문 배우가 아니다. 30년 경력의 소방관이자 노조원이었고, 은퇴한 후 펍에서 일했다.

TJ의 친구이자 동지가 되는 시리아 난민 야라 역을 연기한 에블라 마리는 실제 난민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이 1967년 이후 점령 중인) 골란고원에서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시리아인이다.

영국 노동계급과 시리아 난민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 주는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의 한 장면 ⓒ출처 영화사 진진

영상과 사운드, 줄거리와 이야기 구조 역시 간결하고 담백하다. 세 번의 흑백 사진 몽타주, 작은 규모의 이야기와 반전 하나둘, 강렬하지만 짧은 대화 시퀀스 몇 개를 가지고 예리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특히 켄 로치의 극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거의 꼭 그랬듯 이번에도 왜 어떻게 노동계급이 자기편에게 “배신”당하는지 직시한다.

요컨대, 우리 안의 편견과 분열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끝도 없이 편견과 분열을 조장한다. 혐오와 차별과 분열을 우리 안의 본성(유전자에 내재된 것)이라 여기길 원한다.

반면, 개인과 집단의 생각을 가장 극적으로 바꾸는 것은 투쟁의 경험이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야라와 TJ에게 분열 대신 연대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도 1984~85년 광부 파업의 기억이다.

당시 대처 정부는 패배의 코앞까지 내몰렸다. 절벽 끝에서 정부를 구한 것은 연대를 거부하고 대가를 거래한 노조 지도자들이었다. 파업 30년 뒤 공개된 대처 정부의 비밀문서들에서도 확인된 바다.

패배했지만 위대했던 광부 파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영화가 보여 주듯이 그런 영향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주류 영화는 흔히 과거를 닫혀 있는 것으로 다룬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과거는 닫혀 있거나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다.

과거는 현재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자극함으로써 계속 반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켄 로치의 영화들은 흔히 불명확한 결말을 반복한다. 이것은 일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 영화 안에서 가공의 만족을 찾지 말고 영화 밖에서 현실의 행동을 하라.

중첩된 위기(전쟁·기후·경제·생계 위기) 속에서 주류에서 비주류까지 우파들은 한층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고 좌파들은 한층 더 무기력해졌다. 그 결과 최근 몇 년 동안 주요 국가에서 극우가 성장했다.

그렇지만 세계는 단일하게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지 않다. 양극화한다. 양극화에는 다른 한 쪽 길이 있다. 이스라엘의 학살과 점령에 반대하는 국제적 운동의 성장을 보라.

영국 노동계급과 시리아 난민의 연대 가능성과 필요성을 보여 주는 이 영화는 그래서 지금 더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