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팔레스타인 연대 25차 집회·행진:
“이집트 정권은 라파흐 국경 개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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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s off Rafah now(라파흐 공격 즉각 중단하라)!” “Open Rafah right now(라파흐 국경 즉각 개방하라)!”
3월 9일 오후 이태원 일대에서 ‘제25차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행진’ 참가자들이 외치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주최한 이날 집회는, 이스라엘이 예고한 라파흐 지상전 개시일(3월 10일)을 하루 앞두고 열렸다.
140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라파흐 지역의 넓이는 한국의 울릉도와 비슷하다. 이 좁은 곳에서 피란민들은 수시로 폭격당할 뿐 아니라, 구호품 반입 봉쇄로 물자가 극도로 부족해 목불인견의 참상을 겪고 있다.
이런 라파흐를 이스라엘 지상군이 공격한다면 어마어마한 대학살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집회가 열린 만큼, 참가자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집회 시작 전부터 자리를 지킨 한 중학생은 “이스라엘의 학살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 경기도 하남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이태원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의 정오 예배가 끝나는 오후 1시 30분경, 예배를 마친 무슬림들과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깃발과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성원에서 이태원거리까지 행진했다.
행진 대열의 기세는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근 식당·카페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멈추고 지지의 뜻으로 대열에 손을 흔들었고, 몇몇 상인들도 일손을 놓고 나와 행진 참가자들에 박수를 보냈다. 수많은 행인들이 행진을 핸드폰에 담았고, 팻말을 건네받아 ‘인증샷’을 찍거나 대열에 합류하는 외국인도 여럿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던 브루나이 여성 10여 명은, 지난해 11월에 브루나이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참가했는데 몇 달 만에 머나먼 한국에서 다시 시위를 만나 반갑다며 기꺼이 행진에 동참했다.
이태원거리로 나온 대열은 짧게 집회를 가졌다. 발언자들은 라파흐를 생지옥으로 만든 이스라엘과, 그런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라파흐 국경을 봉쇄해 사실상 이스라엘에 협조하는 이집트의 압둘팟타흐 시시 정권을 맹렬히 규탄했다.
공범
재한 팔레스타인인 나심 씨는 “이집트 정권이 가자지구의 저희 가족과 동포에게 저지르는 억압·배신 행위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배고픔 속에서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구호품마저 반입을 가로막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처사입니다.
“이집트 정권은 요르단·미국·이스라엘과 함께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공중 투하하는 작전을 벌였습니다. 웃기는 일입니다. 라파흐 국경에 발이 묶여 있는 구호품 트럭 수천 대의 가자지구 진입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지금 가자지구 주민들은 총탄과 폭격뿐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구호품 상자에 맞아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이스라엘에 공급하는 식량과 물자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요르단을 거쳐 갑니다. [UAE와 요르단은] 시온주의 정권이 라파흐뿐 아니라 가자지구 전체를 봉쇄하는 것을 돕는 것입니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집트인 알리 씨는 “팔레스타인인의 대의를 굳건히 지지하는 투쟁은 이 세계에 인류의 양심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은 이집트인들에게 우리 심장의 일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희 이집트인들은,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문제를 방관하고 침묵하는 이집트 정권을 규탄합니다. 이 정권은 이집트 민중을 전혀 대변하지 않습니다.
“가자지구에 구호품 반입을 허용하는 일은 이집트 정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침묵하는 전 세계 여러 정부들을 규탄합니다. 이들은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에서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학살을 당하는데도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동포들이 인종 학살을 당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UN 등 국제 기구들, 이른바 ‘국제 사회’도 규탄합니다.
“우리의 투쟁과 저항이 계속돼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민중의 양심적인 목소리야말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실된 목소리입니다.”
노동자연대 김광일 활동가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굳건히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라파흐에서 지상전을 시작한다면,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도 그들에 ‘전면전’으로 맞서야 합니다. 연대 운동을 더 키우고, 굳건히 밀고 나가야 합니다.”
이어서 김광일 활동가는 이스라엘에 “조건 없이” 무기를 지원하는 ‘제노사이드 조’ 바이든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토끼몰이’ 작전을 함께 수행하는” 이집트 정권을 규탄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아랍 지배자들은 모두 타도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집트 마할라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파업이 승리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할라 노동자들은 바로 2011년에 무바라크를 타도한 혁명의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혁명의 물결이 나일강에서 흘러 넘쳐 요르단강까지 흐르길 바랍니다. 팔레스타인 저항 만세! 아랍 혁명 만세!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만세!”
“이집트 정권, 부끄러운 줄 알라”
집회를 마친 대열은 라파흐 국경 봉쇄를 규탄하기 위해 주한 이집트 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대열은 집회 시작 때의 갑절로 불어 있었다.
행진은 사람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행진과 같은 방향으로 걷던 외국인 행인들이 구호를 함께 외치고, 인근 식당에서 일하는 듯한 한국인 여성들이 고무장갑을 벗어들고 구호 박자에 맞춰 팔뚝질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집트인들이 대열 선두에서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선창했다. 구호 소리는 이집트 대사관에 가까워질수록 드높아졌다.
대열이 한남오거리를 거쳐 대사관이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대열 선두의 이집트인들은 아랍어로 맹렬히 구호를 외쳤다.
“이집트 정권, 부끄러운 줄 알라!” “너희도 봉쇄 공범이다!” “이스라엘, 폭격 멈춰라!” “시나이 사막도, 네게브 사막도 안 된다!” 마지막 구호는, 시나이·네게브 사막에 강제 수용소를 만들어 라파흐에서 탈출한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두겠다는 이집트 정권의 계획을 규탄한 것이다.
함께 행진한 여러 국적의 참가자들도 “Open Rafah right now(라파흐 국경 즉각 개방)!” 구호를 연호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3월 16일(토) 오후 2시에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릴 제26차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행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힘찬 함성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그간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행진에 꾸준히 참가해 왔다고 밝힌 한 러시아인은 “오늘 이집트 대사관 앞으로 행진한 것이 매우 뜻깊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스라엘은 인종 학살을 계속 벌일 것입니다. 오늘처럼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학살을 지원하는 아랍 정권들을 압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라파흐에서 무시무시한 대학살이 벌어질 가능성은 실질적이다. 학살 주범 이스라엘과 그 공범들을 규탄하는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구실이 더없이 중요하고, 이 운동이 굳건히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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