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학생-교사 간 갈등만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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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6일 서울시의회가 서울시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 60명만 참석한 본회의에서 폐지안이 가결됐다. 국힘은 앞서 4월 23일에도 충남학생인권조례를 폐지시켰다.
국힘과 우파들은 총선 대패를 만회하려고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 우파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경기, 광주 등 타 시도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잇달아 폐지되자 성 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과 혐오, 성적 보수주의를 부추겨 온 우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학생인권조례를 ‘교실 붕괴’,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지목해 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폐지 환영 입장을 냈고, 더 나아가 강민정 의원이 발의한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하 학생인권법)을 공격했다.
국힘은 “교권 보호”를 명분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학생 통제를 강화하는 ‘교권 보호’ 대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다 2023년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거대한 교사 운동이 벌어지자, 우파들은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는 기회로 삼았다. 윤석열은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주문했고, 교육부장관 이주호도 ‘교육활동 침해’ 내용 생활기록부 기재 방침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2023년 교사 운동에 참가한 교사들에게 전혀 먹혀 들지 않았다. 교사들은 교권과 학생 인권을 이간질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했다.
지난해 9월 4일 10만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가한 한 초등학교 교사는 “정치권은 엉뚱한 학생인권조례 탓을 하더니, 이제는 생기부에 주홍글씨를 새기겠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자의 양심으로 학생 인권은 더욱 신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일침을 날려 참가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교권 침해의 주된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학생인권조례와 교권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들은 ‘학생 인권이 존중될 수록 교권 존중 수준 또한 높다’는 결과를 보여 준다.
사실, 학생인권조례는 상징적 수준에 머물러 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낸 성명을 보면, 지난 5년간(2018~2022년) 인권위에서 다룬 학교 내 인권 침해 진정 사건 중, 두발‧용모‧복장 등의 제한에 관한 경우(1170건, 43.1퍼센트)와 폭언 등 언어적 폭력에 관련된 사건(821건, 30.2퍼센트)이 여전히 많았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소식에 많은 학생들과 청소년인권단체, 진보적 교사들이 분노한 까닭이다. 규탄 기자회견에서 서울의 한 중학생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시대적인 흐름을 외면하고 저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하고 비판했다. 교사 1500명도 학생인권조례 폐지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충남과 서울 교육감들은 교육감 권한으로 대법원 제소와 재의 요구를 검토 중이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입장을 밝히고 72시간 농성을 하며 항의하기도 했다. 단지 법적 대응뿐 아니라 일찌감치 대중적 운동을 건설하는 데 나섰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학생 통제와 억압을 강화하며 학생 인권을 위축시키는 조치는 교권 침해의 진정한 원인을 가리고 학생-교사 간 갈등과 긴장을 키울 뿐이다.
일부 보수적 교사들에 부화뇌동하는 교사노조들
한편, 우파들이 거듭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자, 전교조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도한 국힘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교사노동조합총연맹 등 다른 교사노조들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추진한 우파들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사노조연맹 소속 초등교사노조는 학생인권조례가 연달아 폐지되고 있는 시점인 4월 30일에 학생인권법 제정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강민정 의원은 ‘학생인권조례 무력화와 폐지 시도에 맞서’기 위해 학생인권법을 발의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말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전교조 초등위원회도 “교사를 폭넓게 보호할 수 있는 법 개정 없이 무작정 학생인권특별법을 발의한 것에 유감”이라며 학생인권법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교조 본부는 초등위의 입장을 바로잡지 않았다. “학생 인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대립시키고 있는 현재 상황”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으면서 말이다.
일부 교사 활동가들은 학생인권법 대신 학교인권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억압과 천대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면, ‘모두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우파들이 물타기 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다.
이런 물타기는 현재 우파들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기 위해 취하는 방식이다. 당장, 보수 성향의 임태희 경기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기 위해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지난해 대규모 교사 운동에서 ‘학생 인권과 교권은 대립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보적 교사 활동가라면 교사와 학생의 단결을 위해 학생인권법을 옹호하면서, 학생 인권과 교권 보호 모두를 위한 정부의 대안 마련을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