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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 폐지 흐름에 맞서 학생인권법 제정을 지지해야

6월 20일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학생인권보장특별법’이 발의됐다.(한창민 의원 대표 발의)

경기, 서울, 광주, 전북, 충남, 제주 등 6개 시도에만 존재해 온 학생인권조례는 최근 잇따라 폐지되고 있다. 2024년 4월 24일 충남, 4월 26일 서울에서 폐지가 의결됐다. 경기도교육감도 ‘경기교육청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을 제안하며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 한다.

학생인권법은 이런 학생인권조례 폐지 흐름에 맞서기 위해 발의된 것이다. 학생인권은 여전히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낸 성명을 보면, 지난 5년간(2018~2022년) 인권위가 다룬 학교 내 인권 침해 진정 사건에는, 두발‧용모‧복장 등의 제한에 관한 경우(1170건, 43.1퍼센트)와 폭언 등 언어적 폭력에 관련된 사건(821건, 30.2퍼센트) 등이 많았다. 각 학교의 학칙 자체가 버젓이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위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편, 악성 민원에 고통받는 교사들을 방치해 온 정부는 지난해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교사들의 운동이 터져 나오자, ‘교권 수호자’인 양 행세하며 교권 추락이 마치 학생인권조례 때문인 것처럼 공격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각 지역의 우익들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윤석열 정부는 교권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서이초 교사 운동이 한창일 때 정부는 교사들을 보호한다며 학생생활지도 고시안을 발표했지만, 이는 허울 좋은 말 잔치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전교조의 설문 결과를 보면, 정부의 고시안은 교사들에게 생활지도의 명분과 책임만 제시했을 뿐, 분리 조치나 민원대응팀 구성·운영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응답이 많았다.

분리 조치나 민원대응팀 구성·운영을 위한 예산과 인력 지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원 업무를 누가 맡아야 하는지를 두고 구성원 간 갈등만 낳고 있어 부정적인 여론이 크다. 문제는 학생 통제를 강화하고 그 책임을 교사에 떠넘기려는 윤석열 정부의 학생생활지도 고시안이지, 학생인권법이 아닌 것이다!

지난해 교사 운동에서 정부와 우파들의 학생 인권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집회 연단에서는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은 서로 맞서는 게 아니다,” “교육자의 양심으로 학생 인권은 더욱 신장돼야 한다”는 발언들이 나왔고 참가한 교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바라는 많은 교사들이 학생 인권을 억압하면서까지 가르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교육이야말로 진정으로 살아있는 교육일 것이다.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은 서로 맞서는 게 아니다” 지난해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 ⓒ조승진

창립 정신인 ‘참교육’마저 지키지 않는 전교조

그런데 우파들뿐 아니라, 교원단체들도 학생인권법이 정당한 교육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참교육을 창립 정신으로 내세우며 학생 인권 보호에 힘써 온 전교조가 학생인권법에 반대한 것은 우려스려운 일이다. 전교조는 교권과 학생 인권 모두를 요구하며 이를 가로막는 제도와 관행에 맞서 투쟁해 온 역사가 있다.

전교조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지지했고, 최근에도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해 왔다. 그런데 같은 맥락에서 추진 중인 학생인권법 제정에 반대하고 있으니 모순적이기도 하다.

물론 조례가 아닌 학생인권법이 제정되면 강제성이 높아지고, 이를 악용한 악성 민원이 늘어 교권과 충돌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악성 민원이 학생인권 관련 법이나 조례 때문에 늘어난 게 아니다. 경쟁 교육 심화 속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겪는 불안감·무력감 증대, 교육 불평등 심화, 돌봄과 안전의 문제가 오롯이 가정에 떠넘겨지는 문제 등이 악성 민원 증가의 원인이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법을 막는다고 해도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악성 민원 문제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설사 학생인권법을 오남용한 악성 민원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민원이 악성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악성 민원이 교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처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지, 학생인권법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일 수 없다.

진정으로 교권을 보호하려면 충분한 예산과 인력 지원으로 학생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민원 대응이나 학교폭력 처리와 같은 학교 내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공간을 확보하도록 요구하며 투쟁해야 한다.

반대로, 학생 인권 전반을 보장하는 선언적 법까지 반대하고 나서면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의 갈등만 오히려 심해질 것이다. 이런 갈등 심화는 노동계급의 단결을 해치기 쉽고, 이는 교권 보호를 위한 투쟁에도 도움이 안 된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대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걸맞게 행동하려면 학생인권법 제정을 지지하면서도, 교권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