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임종석의 ‘두 국가론’은 현실을 말한 것일 뿐이다. 장차 통일을 할지, 안 할지는 남·북한 대중의 선택이다

9월 19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사에서 “통일, 하지 맙시다” 하고 말했다. 이 주장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임종석은 이렇게 말했다.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합시다.”

그러면서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규정한 헌법 3조를 손보는 등 현실에 맞게 모든 것을 “재정비”하고, 통일 논의는 미래 세대에게 맡기고 지금은 평화 공존을 위한 합의에 주력하자고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남북 정부 간 관계가 어떻게 결국 불협화음을 냈는지를 기억해 보면, 문재인의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이 주장하는 평화 공존이 얼마나 실천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통일 포기’ 주장에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한반도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별개의 두 국가가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이후 한반도의 남북을 차지한 미국과 소련은 각자의 대리인 격인 국가를 세웠다. 그렇게 건설된 남·북한의 두 국가는 이후 독립적인 자본 축적의 중심을 각자 세웠고, 자체의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을 형성했다. 이후 남·북한 지배계급 모두 각자의 국가를 강화하는 길을 추구했다.

국제적으로도, 주요국들은 모두 남·북한을 별개의 독립 국가로 간주해 왔다.

냉전 종식과 동시에, 1991년 남한과 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남·북한 정부가 남북 관계를 아무리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라고 규정했었다 해도 유엔 동시 가입은 각자가 별개의 국가임을 사실상 서로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민족은 두 국가로 나뉘어 지내서는 안 된다는 소박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반드시 하나의 국가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설득력이 별로 없다. 하나의 민족임에도 서로 다른 국가들을 세우고 전쟁과 전쟁 위협 없이 공존해 온 사례는 많다.

물론 한반도는 민족 구성원들의 의사를 거스른 채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의해 분단돼, 비극적인 전쟁까지 겪었다. 이후 남·북한 대중들은 제국주의 간의 갈등에 따른 위험과 부담을 오랫동안 짊어져야 했다.

그래서 만약 남북 대중 다수가 재통일을 원한다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는 국제주의자로서 그 선택을 지지해야 한다. 두 나라가 제국주의적 억압국이 아닌 한, 민족자결권이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남·북한 대중에게는 반대의 선택을 할 권리도 있다. 즉, 통일하지 않기로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임종석은 특히 남한 젊은 세대에서 통일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실시하는 통일의식조사에서, 20~30대 청년 세대에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늘어나는 추세다. 현실성 없어 보이는 통일 대신에 남·북한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는 여론이 커져 온 것이다.

다른 한편, 올해 초 북한 정부는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통일 노선을 공식 폐기했다. 10월에 헌법을 개정해 통일 관련 표현을 삭제하고 그에 준하는 영토 조항도 신설할 예정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윤석열 정부와 우익들은 북한 흡수를 상정하고 통일에 긍정적이다. 우익의 통일 주장은 “어떤 형태로든 상대를 복속시키겠다는 공격적 목표”(임종석)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변화

과거 경험에 견줘 보면, 남한 우익들이 통일을 주장하는 반면 북한 지도자가 이를 완강히 거부하는 모습은 격세지감이 느껴질 법한 변화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등 역대 남한 지배자들은 통일을 입에 담는 것조차 불온시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통일이 국시여야 한다”고 말했다가 곧바로 구속되기도 했다(1986년 유성환 당시 야당 의원).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가거나 때가 나쁘면 심지어 사형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익들은 “통일 대박”(박근혜)이니, “자유 통일”(윤석열)이니 떠들어 왔다. 이런 변화는 남·북한 국력이 오래전에 뒤집어져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우월감과, 북한 체제가 내내 불안정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보수적 통일론은 미래에 지정학적 급변 상황이 벌어질 경우 남한 국가가 북한에 개입할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주장이다. 지난 1월 천영우 전 청와대(이명박) 외교안보수석은 〈조선일보〉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북한 안정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때 제3국의 시비를 차단하고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면 … 대량학살 중단과 인도적 참사 수습을 위해 우리가 개입하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에 막혀 손발이 묶일 수 있다.”

임종석의 주장을 비판하는 민주당 인사들 중에는 천영우와 비슷한 이유를 제시하는 정동영 같은 이도 있다. 통일부 장관(노무현 정부) 출신인 정동영은 다음과 같은 결정적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 내부의 이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중국·러시아의 간섭과 개입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겠는가.”

보수적 통일론은 남북 간 긴장 악화에 일조한다. 한반도가 제국주의간 갈등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미래에 남한이 섣불리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정말로 심각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 혁명적 좌파는 민족 문제보다는 계급투쟁과 노동자 권력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남한 국가가 남북 관계를 특수 관계로 규정한다 해도 북한 급변 사태 시 현실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개입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북한 정부가 통일 노선을 폐기한 것은 국가와 사회 체제의 생존을 위한 선택일 것이다. 김정은은 동족 개념 포기를 선언하면서,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남한의 “흉악한 야망”을 언급했다.

과거 동독 정부는 서독과의 경제력 경쟁에서 크게 뒤처지자, 동독에는 서독의 “부르주아 민족”과는 다른 “사회주의 민족”이 있다고 1971년에 공표한 바 있다.

핵무력을 강화하고 러시아 제국주의에 밀착해(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살 길을 찾게 되면서, 북한 관료는 한반도에서 강경한 대결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남한이 미국 제국주의에 굴종하며 민족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북한이 부득이하게 통일 노선을 바꿔야 했다며 북한 입장을 변호하려 한다.

하지만 정작 북한도 러시아 제국주의와의 유대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동족 관계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남북 지배자들 모두 한반도 대중의 삶과 안녕에는 진정으로 관심이 없다.

반면 오늘날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형성돼 있고, 그만큼 그 사회 내부에 계급 분단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앞서 말했듯이, 혁명적 좌파에게 민족 통일은 계급투쟁에 비해 매우 부차적인 문제다.

제국주의에 맞설 힘은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에 있다. 남북 노동계급 모두 제국주의에 반대해야 할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통일을 할지, 안 할지는 남·북한 대중이 스스로 선택할 문제다. 그리고 그들이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하든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는 노동계급의 단결(“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