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한반도 주변 정세 전망:
세계 정치의 불안정 때문에 상황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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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신간 《재난의 시대 21세기》에서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세계 정치의 가장 유력한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은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는 곳 중 하나다. 그리고 이를 따라 현지 국가들 간 갈등과 분열상도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예멘, 남중국해, 대만해협 등 곳곳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도전에 직면해 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경쟁자들은 미국의 이런 곤란한 처지를 파고들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우크라이나의 공세를 저지했을 뿐만 아니라 전세를 유리하게 바꿔 놨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학살을 비호해 정치적 타격을 입는 가운데, 중국은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국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은 미국이 주름잡던 ‘단극 질서’가 종말하고 다극 세계의 신질서가 열린다고 선언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도 비슷한 자신감을 드러내 왔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세력 관계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지는 해로, 중국은 뜨는 해로 보면서 미국을 안팎의 중첩된 위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쇠퇴만 하는 세력이라고 일면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다. 국제 금융 관리 능력, 군사력, 동맹 시스템 등 경쟁자들에 견줘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다. 우리가 지금 중동에서 목도하듯이 미국은 패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군사력 같은 자국의 강점을 활용해 위험한 일을 능히 꾀하는 세력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많은 좌파들도 다극화를 긍정적으로 여긴다. 가령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사계절)에서 신질서를 주창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외 정책을 높게 평가한다. 글로벌 사우스의 주요 신흥국들과 함께 “국제 관계의 민주화”를 제기하고 미국과 나토의 무분별한 개입주의를 억지할 동력이 돼 진보적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미국 제국주의를 분명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패권 대 반패권’의 대결이 아니라 제국주의간 쟁투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나름의 제국주의적 목표를 추구하며 미국과 맞서고 있다. 이들이 미국의 헤게모니를 밀어내고 이른바 ‘호혜와 평등의 새로운 국제 질서’를 열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간의 쟁투는 세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인도-태평양의 위험 증대
바이든 정부는 대중국 관세를 유지하거나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등 대중국 정책에서 트럼프의 정책을 이어받은 측면이 있다.
이와 동시에 인도-태평양에서 동맹 체계를 재정비했다. 오커스(AUKUS) 동맹이 대표적이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는 것을 나토가 지원하도록 하는 데서도 성과를 냈다.
지난해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도 중요한 자리였다. 〈뉴욕 타임스〉는 캠프 데이비드 회담을 두고 미국 외교의 꿈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캠프 데이비드 회담을 통해 한미일의 군사 협력이 다자 동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체계화됐다. 무엇보다 한미일은 지역적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즉시 협의하기로 했다. 이 약속으로 한국이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분쟁 발생 시 미국·일본과 공동 대응하는 길이 열렸다.
바이든 정부는 첨단 산업의 공급망 재편을 계속 시도했다. ‘반도체 및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도체, 배터리 등에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을 위해 한국, 일본, 대만 등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내부적으로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미국이 지배하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물론 지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세계화 추세가 역전되고 지정학적 단층선을 따라 경제적 분절이 뚜렷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상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다른 국가한테도 어느 한쪽을 편들게 촉구할수록 양극화의 위험은 커질 것이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갈등 심화로 인도-태평양에는 위험이 증대해 왔다. 한반도뿐 아니라, 동·남중국해와 인도-중국 국경 등 여러 곳에서 그랬다.
그중에 대만해협은 특히 위험이 고조된 지역으로 꼽힌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유사시 대만을 군사적으로 방어할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대만에 군사 개입을 공언하는 쪽으로 바뀌어 왔다. 지난해 미국은 필리핀 내 기지 4곳을 추가로 이용하기로 필리핀 정부와 합의했는데, 그중 3곳이 대만과 인접해 있다.
중국 지배자들에게 대만은 국가 통합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지정학적 이해관계도 크다. 중국이 대만을 장악하면 미국이나 일본이 통제하는 해협을 거치지 않고 곧장 태평양 먼 바다로 진출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중국군은 항모까지 동원해 대만을 6곳에서 포위하는 훈련을 벌였다. 이런 훈련으로 중국은 유사시 대만뿐 아니라 그 인근의 중요한 해상 교통로의 목줄을 쥘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대만해협이든, 한반도든 또는 인도-중국 국경이든 어느 한 곳에서 큰 충돌이 벌어진다면 이는 다른 지역의 위기로 연쇄적으로 번질 공산이 있다.
미국과 중국 두 정부는 양측이 정면 충돌하지 않도록 위험을 관리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양국의 적대를 키우는 구조적 요인들이 변함없어서 갈등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올 연말 트럼프가 재집권할 가능성도 양국 관계의 변수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그는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적대를 계승하고 강화할 것이다. 물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바이든이 인도-태평양에서 애써 정비한 동맹 정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지만 말이다.
또한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박탈과 고율 관세 인상 등 바이든보다 더 나아간 무역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처럼 극우 기반을 가진 정치인의 부상은 인도-태평양에서 제국주의와 전쟁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한반도 긴장 심화와 북한의 ‘두 국가’론
이처럼 제국주의간 경쟁과 적대가 커진 가운데, 한반도의 두 국가는 서로를 향한 적의를 키우면서 경쟁하는 제국주의 강대국 중 한쪽으로 각각 기울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힘을 싣는 선택을 해 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캠프 데이비드 회담 등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정은은 중국·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 2018~2019년에 북·미 정상회담에 기대했다가 낭패를 본 후, 미국과 중국 등의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 속에서 대외 정책 방향을 바꾼 듯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도 이런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갈등이 심화되는 틈바구니에서 북한은 국가 생존의 길을 찾고 있다. 가령 북한은 제국주의간 갈등 속에서 대북 제재를 우회할 길을 찾을 수 있다. 북한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80~90퍼센트에 이르러 중국의 협조 없이 대북 제재는 별 효과가 없다. 게다가 지금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 도입을 계속 반대하고 있다.
최근 들어 특히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발전이 두드러진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 몇 안 되는 국가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선에 필요한 무기를 획득할 필요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협력 강화를 경계하며 북한에 접근하는 듯하다.
또한 북한은 핵무력을 강화해 나아가면서 자신감을 얻고 있다. 전술핵, 순항 미사일 등 핵무력을 다종화하고 수량도 늘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는 《핵의 변곡점》(창비)에서 올해 북한의 핵탄두가 65기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증대, 러시아와의 밀착, 핵무력 강화 등을 배경으로 북한은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며 한반도에서 훨씬 강경한 대결 태세를 취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오랫동안 북한의 이미지는 미국에 의해 봉쇄된 약소국이었다. 그러나 이제 북한은 제국주의적 갈등의 한 축(특히 러시아)에 적극 편승하고 있고, 유사시 남한에 선제 핵공격을 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북한의 ‘반제국주의’ 주장이 허상임이 어느 때보다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제국주의간 쟁투 격화를 배경으로 남북 두 정권이 상대방을 향한 강경한 태세를 취하고 있어 한반도에서 긴장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예기치 않은 위험이 불거질 공산도 전보다 커졌다.
한반도 주변 정세를 둘러싼 국내 진보·좌파들의 입장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상황이 빠르게 변하면서 한국의 진보·좌파들도 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진보·좌파들은 대체로 ‘미국 대 중·러’의 대결을 한반도 주변 정세 불안정의 핵심 배경으로 보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역내에서 하는 일들에 비판적이다. 그렇지만 제국주의 질서를 잘못 이해하며,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와 그 주변의 지정학적 문제에서 정세현·문정인 등의 이데올로그들은 민주당뿐 아니라 정의당 인사 등 여러 개혁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왔다. 그들은 한반도가 ‘신냉전’의 진영 대결에 빠져들지 않아야 하며, 한국이 적극적인 균형자 구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이 지나친 대미 편향을 하지 말고 중국·러시아 등과의 관계도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남북 관계를 평화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래야 한미동맹 의존도를 낮추고 한반도가 미·중 대결의 최전선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선은 미·중 관계가 나쁘지 않았을 때나 가능한 전략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금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한쪽 편에 서라는 압력에 직면해 있고, 그에 따라 균형 외교론의 모순도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였던 문정인은 그런 어려움을 인정하지만, 한국이 중견국들의 협력을 적극 모아 미·중 진영 대결이 아닌 새로운 다자 협력 질서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제안했다(《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청림출판)).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위계적인 국제 질서 속에서 강대국들의 경쟁을 장기적으로 제어할 다자 협력은 가능하지 않다. 공상이다. 중견국들도 중간적 플레이어들로서 자국 자본 축적의 필요성 때문에 군사적·경제적 경쟁에 뛰어들어 불안정 고조에 일조하고 있다.
균형 외교론
이정미와 배진교 등 정의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워싱턴 선언, 캠프 데이비드 회담 등 윤석열 정부의 친미 일변도 외교를 계속 비판해 왔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집권 당시 미국의 한미동맹 강화 요구에 지나치게 타협하고, 극심한 군비 증강으로 군비 경쟁에 일조했다고 비판한다.
정의당이 내놓은 대안은 균형 외교다. 평화를 위해 한국이 독일, 캐나다, 스웨덴 같은 중견국들과 협력하는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균형 외교 비전은 우크라이나 전쟁 앞에서 그 무력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정의당이 중견국 외교의 협력 대상으로 여긴 독일, 캐나다, 스웨덴 등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모두 미국과 나토에 더 밀착하는 선택을 했다. 사실, 정의당 자신도 (비록 소극적이나마) 우크라이나를 지지함으로써 제국주의 대리전 성격의 이 전쟁에서 미국과 나토 쪽으로 기운 셈이다.
정의당 지도부가 국제적 이슈들을 주로 ‘국익’의 관점에서 다룬다는 것도 문제다. 윤석열 정부의 친미 외교를 비판할 때도 그로 인한 대중국 경제 관계의 훼손을 중요한 근거의 하나로 꼭 든다.
정의당 같은 개혁주의 정당한테 국민 경제 성장은 개혁의 원천이고, 그래서 ‘국익’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런 국익론은 국민 구성원들에게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거기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적 이익도 중요하게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국익’ 중시는 정의당이 제국주의 문제에서 기성 질서에 타협하게 만들 수 있다.
민족대단결
반미 친북 경향인 NL계는 최근 국제 정세의 변화를 보며 나름 자신감을 얻고 있는 듯하다. 미국이 약화되고 있는 반면에 중국과 러시아가 결합한 “글로벌 사우스”가 성장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북한이 핵무력을 강화하고 경제가 조금 회복되고 있는 점도 이들의 자신감에 영향을 준 듯하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러시아 제국주의와 밀착하고 핵무장을 강화하면서, 남한과의 “동족 관계”마저 부정하는 상황은 NL계에 당혹감을 줄 만한 일이다.
민족 자주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던 북한이 강대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고 러시아에 밀착해 살길을 찾으려는 것은 누가 봐도 ‘반제 국가’답지 않다.
하기야 북한은 몇 년 전인 2018~19년에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매달렸으니 러시아와의 밀착이 그다지 새롭지도 않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친서 27통을 주고받았을 만큼 트럼프를 각별하게 여겼다.
당시 남한 NL계 지도자들은 두 사람의 담판으로 한반도 정세에 돌파구가 열린다고 봤다. 그러나 당시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의 대결을 본격화하며 역내 불안정을 한껏 심화시키는 상황에서, 한반도만이 국가 간 협상으로 그 예외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은 애당초 공상이었다.
여전히 일부 NL계 논자들은 북한의 핵무력과 트럼프의 재집권이 맞물리면 동아시아 질서가 재편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듯하다. NL계 연구소인 통일시대연구원의 한성 연구위원은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이 “트럼프가 미 주류세력들의 반발과 역공세를 이기지 못한 결과”라며, “트럼프가 올 11월에 재선에 성공한다면 … 곧바로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뤄낼 것이다” 하고 주장했다. 명색이 반미 좌파가 미국 극우 정치인의 귀환을 고대하는 셈이다.
또, 북한 김정은 정부가 “민족대단결” 주장을 폐기한 것도 많은 NL계 활동가들이 당혹스러워할 만한 일이다.
NL계 활동가들은 좌파 민족주의자들로서 한반도 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이를 위해 계급 협력을 추진해 왔다. 그들은 북한 김정은 정부도 통일을 지향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김정은이 갑자기 남북은 “적대적” 교전 관계라고 천명한 것이다.
그러자 많은 NL계 논자들은 북한의 노선 변화가 이해할 만하다고 설명하면서, 이를 NL의 기존 전략과 조화시키려고 하는 듯하다.
가령 이정훈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과 한국 정부의 미국 추종 정책” 때문에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북한이 대남 정책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이 “민족 개념을 버린 것이 아니라”며, 평화협정 체결만이 “전쟁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정태흥 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장도 지난 1월 국회 토론회에서 남북 관계를 “적대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면서도, 북한이 노선을 바꾼 “직접적 원인”은 미국과 윤석열의 대북 적대 정책이라고 지목했다.
물론 남한 좌파들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남한 정부의 친제국주의·군국주의 방침을 반대하는 데 우선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러시아 제국주의와 결탁한 북한의 무력시위와 ‘말폭탄’도 긴장 고조에 일조하고 있다. 따라서 좌파들은 부차적이지만 긴장을 증대시키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방침에도 반대해야 한다.
북한의 대외 정책에 발맞춰 온 NL계로서는 북한의 급작스런 태도 돌변으로 내부 균열과 모순이 커질 수 있다.
그동안 NL계 활동가들은 북한의 민족대단결 주장을 남쪽에서 호응하고자 애쓰면서, 전략적으로 민주당에 협력하는 게 통일과 자주화에 필요하다고 여겨 왔다. 그런데 북한은 이제 민주당을 국민의힘과 함께 “괴이한 족속”이라고 하면서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NL계 다수는 민주당을 민족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거나 “견인”할 대상으로 보며, 전략적 협력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민중전선은 동맹 세력이 놀라지 않게 제국주의 문제에서 요구와 방법 등의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압력을 NL계에 가한다. 예컨대 야권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 ‘시민사회’ 추천 후보들이 한미연합훈련 반대 등의 ‘반미’ 전력 때문에 비례의원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또 북한 핵무기가 강화되는 상황도 NL 운동에 모순을 강화한다. NL계 핵심 간부들은 북한 핵전력 강화를 ‘공포의 균형’ 또는 협상의 지렛대로 보며 고무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에 선제 핵공격을 할 수 있다고 공언하면서 이를 일반 대중에게 납득시키기는 대단히 어려워졌다.
이정훈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남한 인민과 남한 정부를 분리해 보고 있다. 북[한]이 부정하는 것은 남한 인민이 아니다” 하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한을 겨냥한 북한 전술핵 앞에 그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유사시 서울 등지에 떨어질 수도 있는 전술핵이 윤석열과 평범한 시민들을 구별해서 죽일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마치며
제국주의 국가들 간 갈등이 자아내는 위기는 이미 전쟁들을 낳고 있다. 그리고 미국 지배자들은 자국이 중동과 유럽의 전쟁들에 신경을 쓰더라도 인도-태평양의 패권 유지에 소홀하지 않음을 보여 주려고 부심하고 있다.
그만큼 오늘날 세계 정치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어서, 앞으로 한반도와 그 주변의 상황이 전에 우리가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할 수 있다.
따라서 혁명적 좌파는 한반도 주변 정세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때에 따라 관련 문제로 운동을 건설해야 할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