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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미국의 중동 개입의 역사

중동 문제를 접근하는 법

미국의 중동 개입의 역사를 다룰 때는 큰 그림 없이 접근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중동에는 많은 현지 국가들이 있고 열강이 경쟁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제국주의론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 특히 레닌과 부하린이 발전시킨 제국주의론은 강대국들의 약소국 침략과 지배가 개별 지배자들의 야욕이나 ‘민족성’보다는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 경쟁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을 중동에 적용하면, 미국이 중동에 개입하는 행위는 유럽,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자신의 세계적 경쟁자들을 의식한 것이라는 점을 봐야 한다. 이를 보여 주는 세 가지 사례가 있다.

미국은 다른 강대국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2005년 3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부 바빌 주를 순찰하는 미군 병사들 ⓒ출처 미 해군

첫째, 흔히들 미국이 석유 때문에 중동에 개입한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자신은 국내 소비를 위해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면 미국은 왜 개입하는 것일까?

중동 석유가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경쟁자들, 즉 유럽·중국·일본 등이 거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중동 석유를 통제하는 국가가 경쟁국의 발전소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미국 석유·군수 분야 개별 기업들의 이윤보다 더 중요하다.

한때 미국은 중동 석유 증산량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2022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바이든 정부의 거센 압력을 거스르고 석유 생산량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더군다나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러시아와 손잡고 말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를 두고 “세계 세력균형 변화를 잘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더는 달러만이 아니라 위안화 등으로도 석유를 팔고 싶다며 브릭스(BRICS)에도 가입했다.

이렇듯 중동 석유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그 경쟁자들인 러시아와 중국이 그 자리를 메우려 하고 있다.

둘째, 중동은 교통의 요충지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북미, 유럽, 동아시아에 세 개의 주요 거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중동은 그 중 두 곳인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특히 러시아를 통하지 않고 가는 유일한 경로에 있다. 이 때문에도 중동은 미·중 경쟁의 주요 무대이다.

예컨대 지난해 9월 미국이 인도, 유럽연합을 끌어들여 발표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인도 뭄바이에서 중동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남유럽까지 이어지는 무역로를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이 비슷하게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을 견제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최근 경제적으로 빠르게 부상하는 인도를 미국에 좀 더 가깝게 끌어당기려는 성격도 있다.

인도는 오랫동안 친서방도 반(反)서방도 아니라고 표방해 왔다. 미국은 이런 인도를 향해, 자신이 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의 협력을 이끌어 내 유럽 시장으로의 무역로를 제공할 능력이 있음을 보이고 싶어 한다.

반대로 중동이 안정화되지 못하거나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능력을 미국이 제대로 보이지 못하면 유럽과 인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상처가 생길 것이다.

셋째, 중동은 미국이 유럽이라는 핵심 동맹을 관리하는 데서도 중요하다. 미국 민주당의 전략가 브레진스키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유럽이 없어도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세계적으로 전능하지는 않을 것이며, 미국이 없으면 유럽은 부유하지만 무기력할 것이다.”

실제로 유럽이 중동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다. 반면 미국은 중동에 수많은 군사 기지를 갖고 있고 유럽은 거기에 기대야 한다.

2015년 유럽 난민 위기는 이 점을 잘 보여 줬다. 중동에서 시리아 내전 등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는데, 그중 일부 난민(훨씬 더 많은 수는 레바논과 튀르키예로 갔다)이 유럽으로 건너왔고 그것이 정치 위기를 낳았다.

미국은 난민 위기의 근본 원인인 중동 불안정을 막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적극적인 군사적, 정치적 개입을 꺼렸다. 난민 위기는 유럽 지배자들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킨 한 계기였다.

이처럼 중동은 열강 간 경쟁의 주요한 무대다. 미국이나 다른 어느 강대국이 중동에 개입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는 이 점을 중심에 놓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엽적이거나 엉뚱한 이유로 빠지기 십상이고, 서로 경쟁하는 제국주의 강대국 중 어느 한쪽을 편드는 오류로 빠질 수 있다.

미국이 구축한 중동 지배 질서

세 개의 전쟁이 미국의 중동 질서를 구축하는 데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세 전쟁은 이스라엘 건국부터, 한때 아랍의 맹주 국가였던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굴복하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

1948년 1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이 건국 직후에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려고 벌인 전쟁이다. 갓 건국된 이스라엘이 아랍 연합군에 맞서 싸워 이겼다는 ‘영웅’ 서사가 흔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당시 아랍 지배자들은 이스라엘에 맞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수방관했고, 그나마 개입했을 때조차 자신들이 그 땅을 차지하려고 움직인 것에 더 가까웠다. 레바논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시문 아사프는 1948년 전쟁은 아랍 지배자들이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지 않은 전쟁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2차 중동 전쟁은 1956년에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 연합군이 이집트를 침공한 것이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가말 나세르가 영국을 따랐던 왕조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다. 평범한 이집트인들은 19세기부터 이어졌던 영국·프랑스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영·프·이 연합군은 예상 밖으로 고전했다.

그런데 이때 미국이 끼어들어 영국과 프랑스에 군대를 물리도록 압박했다. 이 사건은 중동의 지배력이 구 유럽에서 신흥 강자인 미국으로 넘어갔음을 세계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됐다.

동시에 이집트의 나세르는 침공 방어에 성공하면서 아랍 세계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부상했다. 이런 나세르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제3세계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비동맹운동의 주요 인물이 된다.

3차 중동 전쟁은 1967년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시리아를 기습 공격해 엄청난 영토를 장악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단기간에 승리해 ‘6일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그리고 시리아의 골란고원이 점령당한 것도 이때다.

미국 자신이 베트남에서 온갖 좌절을 겪고 있을 때라서 이스라엘의 승리는 더 돋보였다. 그뿐 아니라 이 전쟁은 나세르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안기며 그가 이전까지 누렸던 정치적 영향력을 빼앗았다.

3차 중동 전쟁은 미국이 중동에서 자신의 패권을 지키려면 이스라엘만 한 경비견이 없겠다고 판단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집트는 (한 차례 전쟁을 더 치른 후) 이스라엘과 군사적으로 경쟁하는 것을 단념하고, 미국의 주선 아래 1978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수교한다. 당시만 해도 아랍 국가들 중에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 선례가 없었던 만큼 이집트의 행위는 완전한 배신이었다.

반면, 미국 입장에서는 최대 성과였다. 이집트는 아랍 국가 중 인구도 가장 많고, 문화적·정치적으로 “아랍 세계의 심장”이었다.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라고 불린다. 이집트의 급진적 활동가들은 이집트 군대를 조롱할 때 “캠프 데이비드 군대” 부르는데 ‘이스라엘에 굴복한 군대’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미국 지배 질서가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이 이내 벌어진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아주 오랫동안 서방에 굴종하던 왕정이 타도된 것이다.

미국은 한때 자신의 핵심 중동 거점 중 하나였던 이란을 그렇게 잃었다. 그리고 주변국 눈치를 보지 않고 대중 저항으로 내부에서 무너질 염려 없이 미국의 뜻을 관철시켜 줄 세력의 필요성을 더더욱 절감한다. 이란 혁명 후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중동 질서가 마련된다. 그러나 그 질서는 중동 민중의 아래로부터 저항에 언제나 취약했다.

시문 아사프는 “1948년 전쟁 이후 약 40년간 혁명의 물결이 이어졌다”고 했다. 이집트 혁명, (이 글에서는 못 다룬) 1958년 이라크 혁명, 1979년 이란 혁명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요르단 왕정에 맞선 혁명이 될 수 있었던 1970년 ‘검은 9월,’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 난민과 현지 좌파가 함께 봉기한 것, 1987년 팔레스타인 본토에서 벌어진 1차 인티파다도 지배자들을 위협한 사건들이었다.

지금 중동 지배자들이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침묵을 지키고 또 거드는 것을 보며 아랍권에서는 아래로부터 분노가 꾸준히 쌓이고 있다. 그 분노가 반란으로 터져 나와 지배자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전망은 이런 역사적 선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오늘날 중동과 제국주의 경쟁

오늘날 미국의 중동 패권의 위기는 미국의 세계적 패권의 위기라는 더 커다란 그림의 일부다.

1991년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했지만, 과거 세계 경제에서 누렸던 압도적 위상이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처음에는 독일과 일본, 그리고 지금은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도전자로 부상했다.

미국은 이런 경쟁 강대국들이 자신의 패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군사력(여전히 미국이 압도적이다)을 과시할 기회를 찾았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미국의 명분은 순전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진정한 목적은 이라크 점령으로 중동 패권을 천명해 어떤 강대국도 감히 미국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능력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명분 없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일었다. 20여 년 전 이라크 반전 운동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운동 못지 않게 거대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침공은 이내 이라크인들의 현지 저항에 부딪혔다.

이라크 침공은 정치적으로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 중동 전역의 대중은 자국 지배자들이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을 거든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큰 분노를 자아냈고, 특히 이집트에서는 독재자에 맞서는 운동이 힘을 키우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둘째, 미국의 적성국 이란이 뜻하지 않게 승자로 부상했다. 미국이 이라크인들의 저항을 억누르지 못하면서 이란의 손을 빌려야 했던 것이다. 이란 역시 (반제국주의 수사와 달리) 이라크에서 미국을 완전히 패퇴시키기보다는 미국과 협상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쪽을 택했다.

이렇듯 이라크 전쟁이라는 미국의 도박은 오히려 미국의 중동 패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구축한 중동 통제 질서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혁명의 불길이 국경을 넘어 아랍 세계 전체를 뒤흔든 것이다. 이를 ‘아랍 혁명’ 또는 ‘아랍의 봄’이라고 한다.

2010년 말 튀니지를 시작으로 2011년 1월 이집트, 이후 리비아와 시리아, 예멘, 바레인 등지에서 혁명이 잇달아 터졌다. 미국은 친미 국가 이집트에서 독재자가 18일 만에 타도되는 동안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다.

이집트에서 개입 기회를 놓친 미국은 뒤이어 시작된 리비아 혁명에는 적극 개입했다. 나토 군대를 투입해 혁명을 편든답시고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를 살해한 것이다. 시리아에서도 미국은 독재자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면서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진정한 혁명 운동을 납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본지는 처음부터 미국 등이 “혁명 지지” 운운하며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서방의 군대는 반혁명 세력에게 외세 개입 반대라는 탄압 명분을 주고, 혁명을 분열시키고 진정한 혁명 세력들을 주변화시켜 오히려 혁명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행히도 그 예상은 적중했다. 두 나라 모두에서 외세 개입을 등에 업은 세력들이 주도권 다툼을 벌였고, 아래로부터 운동을 이끌던 혁명가들은 주변화됐다.

리비아에서는 나토의 지원을 받아 승리한 군벌들끼리 서로 권력을 놓고 내전을 벌였다. 혁명적 세력이 아래로부터 힘을 키워 독재자를 타도할 기회를 서방의 군사적 개입으로 빼앗긴 탓에 내전이 계속됐다.

시리아에서도 미국의 개입은 러시아 개입의 명분이 됐고, 인근 중동 국가들까지 저마다 개입하며 종파 갈등을 부추겼다. 잠재력을 보였던 아래로부터 운동은 짓밟혔다.

한편 좌파 내 일부는 서방이 군대를 보내 ‘지지’했다는 이유로 리비아와 시리아 혁명 자체가 미국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며 지지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는 시리아와 리비아인들의 반란이 더 광범한 아랍 혁명의 일부로 벌어졌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시리아에서 독재 정부를 편들고 혁명가들을 살해하기까지 했다. 시리아와 레바논인들이 이스라엘에 맞서 단결할 가능성을 크게 해친 잘못된 결정이었다.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아랍 혁명이 서방 군대의 개입으로 난관에 부딪힌 상황에서 2013년 이집트에서 반동적 쿠데타가 승리를 거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한 쿠데타가 성공하고 미국은 이를 승인했다.

아랍 혁명은 이처럼 정체했지만, 여러 나라에서 지배자들의 통치력도 온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 곳곳에서 내전과 권력 공백 상태가 이어졌고, 이집트는 중동의 맹주에서 빈자로 전락했다.

중동 지배자들, 특히 친미 지배자들은 미국이 확고한 반혁명 지지로 ‘질서’를 회복시켜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동에서 발을 빼는 것에 더 급급했다. 비록 리비아에 나토 군대도 투입하고, 이집트 반혁명도 지원하고, 이라크와 시리아에 군대도 보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미국 지배자들은 내부적으로 분열돼 있다.

이란 문제가 대표적이다. 2015년 당시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이란과 일정하게 타협해 중동을 안정시키려 했다. 그래서 이란과 핵 합의를 타결했다.

그러나 미국 지배계급의 또 다른 일부는 이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트럼프는 이란 핵 합의를 2018년에 파기했다. 그 대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호전적 지도자들을 지원하며 이란과의 대결 구도를 분명히 하는 것을 택했다.

미국 지배자들의 핵심 난점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남중국해 같은 다른 제국주의 전선에 집중하면서 중동에도 집중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중동에서도 갈수록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방정식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모두 중국이 석유 수출 최대 고객이다. 중국은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2023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를 주선할 수 있었다. 이는 중동에서도 중국이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로 부상했음을 보여 줬다.

이렇듯 미국 지배자들의 중동 전략은 통일돼 있지 않다. 그리고 그 덕분에 중동의 지역 강국들에게는 호전적 야심을 펼칠 운신의 폭이 주어졌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거듭 “레드라인” 운운했지만 한 번도 이스라엘을 제재하지 않은 것은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호전적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이 예멘을 침공한 것, 튀르키예의 독재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이라크의 쿠르드인들을 공격한 것도 그렇다.

이라크의 쿠르드인들이 터키에 공격당한 것은 특별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소수민족인 쿠르드인들은 튀르키에,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라크 쿠르드족 지도자들은 미국을 도우면 독립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1990년대와 2003년 모두)에 협력했었다. 그러면서 다수 이라크인들과 크게 척지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미국은 이라크 쿠르드인들이 2017년 독립투표를 벌이려 하자 이를 가로막았고, 더 나아가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이라크의 쿠르드인들을 공격하는 것을 못 본 척한 것이다. 이라크의 쿠르드인들은 제국주의자들에게 그야말로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것이다.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역시 미국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시리아 혁명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군대를 보내 자국민 수십만 명을 살해한 독재자 아사드를 지원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믿을 만한 세력이 못 된다. 러시아는 이스라엘에 가장 많은 석탄을 수출하는 나라다.

중국은 이스라엘의 반도체를 대량 수입하고 있고, 이번 전쟁 발발 이후에도 이스라엘 항구를 통해 꾸준히 교역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에 부역하는 파타의 화해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런 세력들에게 기대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독립 염원도, 중동의 평화도 이뤄질 수 없다.

그 대안을 찾는 데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이 중요하다. 제국주의론이 없으면, 국민국가들 사이의 쟁투만이 우리 눈에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열강의 중동 개입이 본질적으로 제국주의 개입임을 이해하면 전쟁을 둘러싸고 작용하는 계급 적대를 포착할 수 있다.

바로 중동 전역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에 대한 태도도 그에 따라 갈라져 있다. 그런 계급 분단선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 민중의 반란을 도모할 때, 제국주의에 맞서 단결하고 진정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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