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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을 둘러싼 의견들

양비론의 실천적 결론을 잘 보여 준 환경운동연합

북한 핵실험을 두고 주류 NGO들은 대부분 양비론을 취했다. 그 중 환경운동연합은 미국 위협 비판보다 우선해 "북한 핵을 규탄"하면서 진보진영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입장을 채택했다.

환경운동연합 이상훈 정책실장은 "북핵 위기 때마다 일부 단체들은 미국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핵실험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다르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햇볕정책에 따른 지원이 북의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우려가 있다면 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까지 했다.

이런 입장 때문에 환경운동연합은 미국의 대북 제재 움직임이 한창이던 지난 12일 시청 앞에서 북핵 반대 퍼포먼스를 열었다. 사실상 우익과 한 목소리를 낸 셈이다.

또, 지난 18일에는 NGO들의 대부격인 박원순 등의 인사들이 모여 북한에게 "핵실험과 같은 위험한 방법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대화를 통해 체제 안정을 도모하라"고 충고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화를 거부하고 합의사항을 파기해 온 장본인은 미국이다. 이들의 양비론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이 한반도 불안정의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흐리는 구실을 한다.

이것은 기존 국가 권력과 협력하거나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매우 온건한 종류의 개량주의 정치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NGO의 단일쟁점주의가 개량주의를 더욱 강화하기도 하는데 이번 환경운동연합의 태도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한편 급진 좌파의 일부가 이런 개량주의적 압력을 추수하는 경우도 있다. 민주노동당내 좌파인 '전진'이 그렇다. 최백순 '전진'기관지 편집위원과 홍성준 '전진'집행위원장은 각기 다른 토론에서 모두 일부 "생태주의자들의 입장"을 들어 미국의 대북 압박보다는 '북핵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강조점을 뒀다.

또, 비록 '전진'은 미국 책임이 1차적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강조점이 "반핵 원칙을 멋대로 유린하려는 세력"[자주통일 운동가들을 가리킴]과의 "철저한 사상투쟁"과 그들을 "척결"('북 핵실험 국면, 민중운동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토론회 발제문 중)하는 것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실천에서 대북 제재 반대와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과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핵 옹호론의 난점

한편, 진보진영 안에는 북한의 핵실험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민경우 한미FTA범국본 정책기획팀장은 현재 중동에서 미국이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어 공세를 취하기 어렵고, 이를 간파한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으니 조만간 미국의 대북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그 동안 자민통 계열 활동가들은 중동 지역을 시야에 넣지 않은 채 북한의 '선군정치'가 미국을 굴복시켜 왔다며 헛다리를 짚어 왔다.

그러나 이제 미국 패권이 수렁에 빠져 있는 곳이 중동임을 인정한다면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근본적 힘은 북한 핵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런 모순은 북한 핵 자체가 미국의 진정한 관심사가 아님을 보여 준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제패 전략의 핵심은 중국과 일본을 통제하는 것이고, 북한은 이를 위한 빌미일 뿐이다.

민경우 씨는 북한이 한미일 동맹에 맞서기 위한 과도한 군비 지출로 고통받아 왔고 따라서 핵무기처럼 비용에 비해 효과가 높은 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의 과도한 군비 지출은 미국의 압박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 체제 자체의 고유 논리이기도 했다. 북한 관료들은 인민의 복지보다는 자신의 지배 체제 보전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즉, 북한 체제는 외부 세계의 자본주의적 축적·경쟁 동역학을 따라 작동해 왔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보유했음에도 국방비를 감축하지 않았다. 지난 6년 동안 북한의 국방비는 3배나 증가했다. 북한 핵실험은 남한·일본의 군비 경쟁을 한층 강화시켜 부메랑이 돼 돌아갈 것이다.

민경우 씨는 또, 어차피 미국이 남한·일본·대만 등의 핵무장을 막을 테니 핵 도미노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미국은 남한·일본·대만 등으로 핵 개발이 확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미국은 이번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남한에 '확장된 억제력'을 통해 핵우산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이를 공공연히 표명하는 것을 꺼렸는데,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확장된 억제력'은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 핵무기 배치는 물론 심지어 전략 핵무기의 사용도 가능케 한다. 전략 핵무기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기도 해서 중국을 자극할 것이고, 이것은 다시 일본으로 하여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들게 할 것이다. 결국 핵우산 제공이 핵 경쟁을 강화하는 역설로 작용하는 것이다.

민경우 씨는 '모든 핵무기는 안 된다'는 주장은 북한의 자위 수단을 박탈하는 것으로 결국 미국을 옹호하는 입장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에게는 미국 제국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요소로 대중 운동이 결정적으로 빠져 있다. 이것은 북한 지배자들의 눈으로 보는 관점이지 남한의 아래로부터의 관점은 아니다.

북한 핵을 통해 미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남한 운동은 북한이 더 많은 핵실험을 하길 기대하거나 그것을 옹호하고 북미간 협상을 촉구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 핵실험은 제국주의 질서를 근본에서 폐지할 수 있는 진정한 힘 ― 대중의 정치적 각성과 운동의 확대 ― 을 약화시킬 뿐이다.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 김종철 전 서울시장 후보

북 핵실험에 대한 양비론적 태도와 무비판적 북핵 옹호는 모두 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비론은 반제 운동을 마비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고, 북핵 옹호론은 스스로를 대중에서 유리시키고 운동을 협소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김종철 전 서울시장 후보의 주장은 귀감이 될 만하다. 그는 "파렴치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북한을 희생양으로 삼아 오늘에 이른 것"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북한과 미국에 동일한 책임을 묻는 것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와 동시에, "책임이 1차적으로 미국에게 있다 하더라도 진보정당이 반핵 정신과 남한 민중의 소박한 염원에 따라 [핵실험에]우려와 반대를 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유일한 해법은 미국의 한반도 위기 고조 책동을 중단시키고 미국이 한반도 평화가 대세라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반전평화의 역사적인 실천"을 촉구했다.

그의 입장은 그가 속한 민주노동당 내 의견그룹 '전진'의 주된 견해와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