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베네수엘라에서 개헌을 둘러싼 투쟁의 실상

4월 7일 국회의장 우원식의 개헌 제안에 진보당과 정의당이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물론 하루 만에 김재연 진보당 대표는 입장을 철회했다.

진보당·정의당뿐 아니라 한국의 개혁주의 좌파 다수는 (집권해 자본주의 국가를 이용해서 개혁을 수행해야 한다는 전략적 관점에서) 진보적 개헌 논의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개헌을 통해 사회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연립)정부 집권을 도모할 수단으로 봐서였다.

개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투쟁이 개혁 동력이었다 ⓒ출처 베네수엘라 정부

그중 적잖은 경우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추진한 개헌을 사례로 들어 그 견해를 뒷받침해 왔다. 차베스가 집권 전부터 치밀하게 개헌을 준비한 덕에 집권 후에 대중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사회대개혁(“볼리바르 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 개헌은 사회대개혁 강령을 쟁취할 수단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베네수엘라의 개헌은 격렬한 정치적 갈등이 여러 차례의 반동 쿠데타로 분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베네수엘라 대중에게 이로운 개혁을 쟁취한 힘은 헌법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에서 나왔다.

고(故) 우고 차베스는 “국부(國富)를 도둑질하는 자들”을 규탄하며 1999년 대선에서 압승했다. 그는 1989년 정부의 긴축 정책들에 항의해 분출한 대중 항쟁 ‘카라카소’의 염원을 대변했다.

집권한 차베스의 핵심 목표는 세계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베네수엘라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특히, 대외 정책 면에서 산유국 카르텔인 오펙(OPEC) 안에서 영향력을 키우려 애썼다.

차베스는 부패한 기성 권력층을 맹렬히 비난했지만, “시장을 최대한 보장할 것”이라며 자본가들을 안심시키려고도 애썼다.

차베스의 개헌은 바로 이런 모순, 즉 서로 적대적인 사회 계급들을 모두 만족시키려는 노력이었다. 새 헌법에는 노동자 권리와 복지를 옹호하는 내용과, 기업의 이익과 자유 시장 정책을 옹호하는 내용이 동시에 담겼다.

차베스의 개헌안은 국민투표에서 78퍼센트 찬성으로 통과됐다. 기존 헌법이 지독히 비민주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들과 우파는 이 정도의 변화도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여기고 마뜩잖아 했다. 이후 차베스가 몇몇 제한적 개혁을 시도하자 그들은 더는 참지 않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거듭된 쿠데타

2002년 4월 우익 군 장교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했다. 차베스는 새 헌법 법전을 치켜들고 항의하다가 외딴섬에 끌려갔고, 거기서 처형될 터였다.

바로 그때 대중이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빈민 50만 명이 시위를 벌여 쿠데타에 맞섰다. 차베스 자신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이를 예상치 못했다.(베네수엘라 인구 수를 고려하면 이는 우리나라의 100만 명 규모 시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차베스를 제거하려다 대중 봉기에 직면할까 두려워진 우익은 쿠데타를 접어야 했다. 차베스는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우익의 차베스 정부 전복 시도는 계속됐다. 2002년 말 자본가들은 석유 생산을 마비시키고 생필품 유통을 중단시켜, 나라를 통치 불능 상태로 몰아가는 경제 사보타지를 일으켰다.

이를 좌절시킨 것도 헌법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행동이었다. 노동자들은 투쟁 기구를 꾸려 산업을 재가동하고 전국적으로 생필품 분배를 조직해, 3개월 만에 승리를 거뒀다.

이 승리로 세력 균형이 노동자·빈민 대중에게 유리하게 바뀌고 대중 운동이 성장했다.

그때 차베스는 여느 나라 지도자들과 다르고 많은 개혁 운동가들과도 다르게, 대중 운동을 뒤따라 그 자신도 좌경화했다. 차베스는 대중 민주주의를 고무하고, 석유 수출 수익을 이용해 야심찬 복지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국제 원유가 인상이 지속된 덕분에 제한되나마 개혁이 가능했다.

이런 세력 균형 속에서 2004년 우파 야당이 추진한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가 큰 표차로 좌절됐다. 자본가와 우익은 이후 대중 운동의 역동성이 사라질 때까지 반격을 재개하지 못했다.

“21세기 사회주의”

차베스는 그 모든 과정을 “21세기 사회주의”라 불렀지만, 그것은 사회주의는 아니었다. 분배는 개선됐지만 자본주의적 사회 조직 방식(특히, 자본-임금노동 관계)은 그대로였다.

사회주의이려면 노동자 민주주의가 급성장해 노동계급이 경제적·정치적 통제권을 장악해야 한다. 그런 도전은 자본주의 국가를 해체시키고 그것을 노동계급 자신의 권력 기관으로 대체하는 도전을 수반한다. 하지만 차베스하에서 자본주의 국가는 오히려 크게 강화되고 권력이 점점 국가 관료의 수중에 집중됐다.

차베스는 대중 운동을 고무했지만, 그 운동이 자신을 수장으로 하는 기존 자본주의 국가를 보조하기를 바랐다. 대중 운동은 차베스의 하위 파트너가 되면서 그 역동성을 잃었고, 그 운동이 흘낏 보여 줬던 사회 변화의 잠재력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차베스는 체제 안정을 위해 자본가와 심지어 우익과도 타협했다. 쿠데타 주모자들은 모두 사면·복권됐다! 자본가들은 차베스하에서 더 부유해졌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개혁의 재원이 마르자 대중의 생활고가 극심해졌다. 모순은 다시 첨예해지기 시작했다. 차베스의 후임 대통령 마두로는 경제를 살린다며 긴축 정책을 펴고 해외 투자를 유치하려 했다. 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의 제재가 대중의 고통을 심화시켰다.

그러자 자본가와 우익이 반격을 재개했고, 이번에 그 반격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생필품 품귀를 조장하고 소요를 일으키며 통치 불가능 상태를 조성했다. 미국의 후원을 받는 개신교 우익도 공격에 가세했다.

그러한 공격은 2019년 쿠데타 시도로 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를 지킨 것은 대중운동이 아니라 군대였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에서는 2000년대 초에 보인 활력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경제는 파탄 상태이고, 마두로는 군부와 국가 관료와 그들이 주도하는 거대 여당의 조직력에 의존해 정권을 부지하고 있다.

물론 자본가와 우익은 미국의 후원을 받아 마두로 정부를 계속 공격하고 있다. 그들이 승리하면 대중 저항이 되살아날 가능성을 철저히 짓밟으려 혹심한 억압을 펼 것이다.

이런 경험이 주는 진정한 교훈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변화의 진정한 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운동은 체제의 작동 원리 자체에 도전하게끔 발전해야 한다. 이를 보지 않은 채 개헌에만 주목하는 것은 진정한 변화의 동력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